뇌는 부정을 모르니, 잊고 싶은 기억부터 자세히 적어보려 한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자꾸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수록 더 선명해지는 건,
어쩌면 뇌가 ‘부정’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잊어야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기억은 더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이제는—
차라리 자세히 써보기로 했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숨겼는지,
얼마나 웃는 척했는지.
기억이 덜 아프게 남기를 바라며,
기억을 조금 더 아프게 꺼내는 중이다.
왜 그렇게 싫었을까.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결국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땐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때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를 이렇게 현재로 데려올 수 있다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후련해졌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기억이 없다.
분노했을지언정,
사람을 증오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평화주의자와 박애주의자,
그 사이 어디쯤.
그렇게 나는,
늘 이해하려 했고,
쉽게 마음을 주었고,
때로는 너무 많은 걸 사랑했다.
그래서일까.
사랑에 해픈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 말들이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감정의 밀도를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진심을,
종이에라도 남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날이었다.
그 사람의 ‘영원’을 가지고 싶었던 욕심에,
조금 과하게 굴었던, 그런 날.
조금 더 멋져 보이고 싶어서.
나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억지로 애쓰다 보니, 자꾸만 삐걱거렸다.
그리고,
사고는 항상 그렇게 일어난다.
마음이 앞서는 날.
진심이 조급해지는 날.
늘 그런 식이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결국, 아무에게도 특별할 수 없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매력도, 재미도 없는 남자로 남았다.
그리고—
영원히, 그랬다.
지금은 안다.
사랑은 결국, 이기적인 거라는 걸.
그 사람의 마음을 원하면서도
그 사람의 여백은 헤아리지 못했다.
내가 건넨 마음은 사랑이었지만,
그 사람에겐 결국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걸 몰랐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때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조금 서툴게,
조금 이기적으로.
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정작, 그 사람을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순간을 영원히 가지고 싶던 나는,
결국
그 순간을 평생 내 안에 안고 살아가게 된 거다.
이런 마음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그날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그 기억을
조금 덜 아프게 남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