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살아간다
어릴 적엔 참 눈치를 많이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들이 너무 잘 눈치를 줬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담긴 메시지를 알아채느라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싫었다.
그래서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썼고,
오히려 그들을 편하게 해주려다 보니 나 자신을 자주 밀어냈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또 희생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게 ‘착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이 말이 얼마나 매력 없는 말인지, 이제는 안다.
그땐 그게 다정한 말인 줄 알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고, 배려하는 방식이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의견 없음’의 다른 표현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시간들.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언젠간 진짜 나를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싫어하는 사람인지
무엇 앞에서 웃고, 어떤 말에 상처받는 사람인지
너무 모르고 있었다.
최근에 러닝에 푹 빠졌던 이유가 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러닝은 참 이상한 운동이다.
각자의 속도로 뛰는데,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고,
누구는 쉬고, 누구는 계속 달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간다.
혼자 달릴 땐 몰랐던 것들.
누군가와 함께 달릴 때,
나는 좀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서로의 존재가 자극이 되고,
격려가 되고,
때론 경쟁이 되기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오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타인을 오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이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믿어보려 한다.
그렇게 나를 존중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타인도 더 아름답게 보였다.
나처럼, 그들도 각자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찾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진심으로.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