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은 축복이자 고통이야

여덟 번째 손님., 무기력에게

by 제롬

일상은 자극 천지이다. 고통의 자극제로 치자면 부족하지 않고 자동화된 몸의 반응은 심장을 조여오며 나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조심해!'


1차 자극제가 일상이었다면, 몸의 반응으로 심장이 조여 오고 명치끝이 아파오는 감각은 이제 2차 자극제가 되어 불안을 증폭시킨다. 당장 심장호흡을 하거나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한다. 그리고 '빨리 뭐든 해!'라고 말한다.


1, 2차 자극으로 인한 몸의 감각과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한순간 애쓰다 보며 이내 잠잠해진다. 다루어지는 파트는 사라지기도 하고 얼렁뚱땅 들어가게 되는 파트도 있고, 감당이 어렵다면 회피하게 되는 파트도 있고, 명치끝의 통증처럼 사라지지 않고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 하는 부분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훌륭한 대처로 잘 마루리 되지 않은 많은 순간들이 남긴 것은 무기력이다. 허무하다는 생각, 공허하다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힘들지?, 이렇게 사는 게 맞아... 해도 해도 끝이 없어...'라는 생각은 무기력이 보내는 메세지이다.


자세만 봐도 알아요. 선생님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보라돌이는 말했다. 허리를 꽃꽂이 세워 앉은 모습을 보고 한 말 같다. 보라돌이는 '자세만 봐도 압니다. 아무 문제없으니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사시면 돼요. 뭐가 문제겠어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다 문제 같았다. 모든 게 문제 같았고 인생을 개조해야 할 것 같았다.


나: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아요. 살았던 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아요.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제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거잖아요.

보라돌이: 문제가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허함은요?

보라돌이: 좋잖아요! 공허함. 비어있다는 건데. 그건 우리가 긍극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길 아닌가요?


보라돌이는 상담에서 '관계지식 반영'을 한다. 나의 말을 듣고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세상의 관계를 반영해 주는 말을 한다. 상담중에는 나와 나의 관계가 많이 나온다. 그의 말로 반영된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 원래부터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이제 나에게 남은 숙제는 그의 말처럼 나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숙제는 어렵다.





운전사 : 무기력이 왔구나?! 감정들의 대모인가? 대부인가? 무기력은 마지막에 등장하더라.


무력이 : ....


운전사 : 무력이는 말할 의욕이 없을 듯해. 무력이는 혼자 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부정적 생각이 꼭 선행되지 '왜 맨날 이래, 왜 나아지지 않아.... 나는 안 되나 봐..' 뭐 이런 생각들...

그건 오래된 바람 같은 거잖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자유롭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게 좌절되었다고 생각될 때 무능감, 무력감을 느끼는 거지. 사실 본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고 싶은 거잖아.


무력이 : ....(몸이 무겁다. 몸의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운전사 : 무겁구나. 의욕이 없을 때 몸이 쳐지지.. 우린 어쩌면 '인생은 축복과 고통이다'라는 대전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인지 몰라. 그래서 오랜 시간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 이제와 보니 이건 노력해도 안 되는 거였어.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이 불교의 전제라는데. 나만 다를 리 없는데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옥죄여 오는 그물에 걸린 격이야..


무력이 : ....


운전사 : 이 게임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던 거였어. 이제 인생이라는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자. 고통이 기본값이라는 것을. 저항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공허함을 가벼움으로 느낄 수도 있을 거야.


무력이 : ...(솜 같은 느낌에서 살갛이 가벼운 느낌이 스친다)


운전사 : 보라돌이도 그랬잖아. 공허한 이유를 알면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냐고? 나는 그렇다고 했지. 그런데 공허함의 이유를 알아도 외로울 거라고 했지. 인생은 원래 외롭기 때문이라고..


무력이 : ....


운전사 : 저항을 내려놓자.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감정을 느껴도 그 자체로 인생인 거니. 바꾸려 들고 좋아지려고 하지 말자. 그대로 '그렇구나...' 해보자... 아니, 내가 그렇게 해 볼게. 무기력이 와도 설득하고 괜찮은지 살피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무력이 왔구나 할게..


무력이 : ....(명치 끝이 조금 더 시원해진다)


운전사 : 느낌으로 알 수 있어. 네가 조금 더 가벼워졌다는 것을... 이건 내 몫이니 너는 편하게 이 버스에 앉아 있어. 네가 좋아하는 자리에.

어렸을 때 두려워지거나 슬퍼질 때 그런 건 자연스러운 거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배웠더라면, 느꼈더라면 우리에게도 감정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보내줄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다른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은 지금의 우리이기도 해.

보라돌이의 언어처럼 수용과 허용의 관계로 내 안의 파트들을 바라보려고 해. 다 괜찮고, 잘했고, 최선이었다고...


따뜻한 조명을 한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keyword
이전 08화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