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손님들의 긴급회의
이 마음버스 운행의 첫 번째 목적은 '성인자아'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태우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보라돌이 상담사에게 톡을 한다. 표면은 침착하게 내가 마음버스 운행하며 궁금했던 것을 질문한다. 표면의 모습은 그렇지만 나와의 끈이 유지되고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를 잊지 않도록.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걸까?
오늘은 조금 더 솔직한 글을 쓰려고 한다. 진짜 버스에 태워야 할 것을 태우기 위한 작업이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의 찌질한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등장한 손님들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두려움이나 슬퍼하는 아이들을 표현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다음의 감정들을 마주하기가 어려워 쓱 지나가려고 한다. 쓱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긴장감, 민감해지는 피부의 감촉,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은 한순간에 세트로 온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파트들의 대화를 적어 보았다. 폭풍 같기도 하고 쓰나미 같기도 한 몇 시간 동안 등장한 나의 파트들.
주인공은 찌질이... 아.. 너를 어쩌면 좋을까?
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
답답이: 딱 여기까지 하고 싶은 거야? 찌질이가 등장했잖아. 다들 알고 있잖아! 다들 모른척 하고 있을거야?
억울이: 무슨 말이야? 뭘 모른척한다는거야?내가 뭘 어쨌다고..
답답이: 여기까지 하는 건 이미 해 본 거잖아? 그걸 반복하고 싶은 거야? 진짜 작업은 안 해?
운전자: 무슨 말이야.. 지금도 하고 있는데 진짜 작업이라니!
단속이: 왜들 이래. 여기까지만 해. 우린 더 하긴 지금 어려워.
과감이: 중간에 그만두는 게 어딨어. 무조건 고! 다 괜찮을 거야. 그래도 해 봐야지...
겁쟁이: 그게 혼자 가능한 거면 벌써 했겠지. 조심 좀 해. 그리고 보라돌이를 조금 있으면 만날 거잖아.
심플이: 처음 목적이 상처받은 아이를 만나는 거였잖아. 벌써 여섯 아이들이 탔어. 몇 명을 태운다는 목표는 없었잖아. 지금 몸의 감각으로 봤을 때 이건 우리가 안 해본 거야. 얘는 간단한게 아니야.. 상담은 상담사에게!
꿍쾅이: 나 오랜만에 너무 심장이 뛰어. 다들 어떻게 좀 해 봐. 너네 때문이야!
침착이: 아, 또 그러네... 침착해!!! 다들 왜 이렇게 난리야. 호흡아~ 어딨어..
호흡이: 우선 숨을 쉬어야 해. 호흡이 짧아지고 있잖아. 모두 같이 해. 5초 들이마시고 5,4,3,2,1 잠시 멈추고.. 다시 내쉬는 거야 5,4,3,2,1 잘했어. 다시 3-4번 각자 해 봐. 들이마시고 멈추고 다시 천천히 내쉬는 거야.
운전사: 좀 진정이 되었어? 우리 사이의 리듬은 너무 중요해. 갑자기 한 번에 등장해 버리면 꼴까닥 넘어간다고 했지. 얘 폭발하고 소방관이 등장하면 안 된다고.. 다시 수치심을 느끼면 새로운 경험으로 변형하는 데 힘들어진다고. 꽁꽁 숨어버린다고.. 그건 우리가 같이 막아야 해.
호흡이: 맞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리듬이야. '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 내가 등장하면 모두 멈춰야 해 알겠지. 그리고 천천히 하나씩 얘기를 들을 거야. 이건 우리끼리의 약속이야. 다 알고 있지? 꿍꽝이는 좀 어때?
꿍쾅이: 역시 심장호흡은 언제나 효과가 있어. 심장만 진정된 것이 아니라 어깨의 긴장도 내려갔어. 울렁이는 어때?
울렁이: 아, 미세한 떨림이 계속 있긴 해. 그래도 호흡이 덕분에 나아지고 있어.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마워. 다행이야.
운전사: 그럼, 분석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고 우리가 같이 정해 보자. 어때?
분석이: 어제 글을 쓰고 나서 문뜩 '여기까지는 했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어. 늘 여기까지였던 거지. 그리고 정말 우리가 태워야 하는 것, 만나야 하는 것은 찌질이잖아 또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마음. 이 마음은 한없이 나를 작아지게 하잖아. 보라돌이에게 톡을 보내고 기다리면서 이럴땐 정말....ㅠㅠ.. 단지 답장이 늦었을 뿐인데 오만가지 상상을 하고 나를 하잖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지.. 결국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고 있잖아. 어쩌면 지금까지 겉도는 말들로 유인하고 있었는지 몰라. 적당히 만나고 수용하는 거지. 나 이만큼 노력했다고 정당화시키는 거지...
흥분이: 뭐! 정당화,.. 여섯 아이들이 그런 수단이라고!
운전사: 아니야, 그런 거 아닌 거 알잖아. 분석이 말은 이 버스 운행의 목적을 말한 거야. 어렵게 말하고 있잖아. 잘 들어보자..
구질이, 분노, 수치심, 무력이 :......
운전사: 진정해. 그렇게 흥분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우리 사이의 리듬은 너무 중요하다고..
조심이: 얘들아, 조심해!! 내가 너무 조마조마 하잖아. 천천히 해도 돼..
흥분이: 알겠어. 천천히 들어볼게. 나도 우리 사이의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고.
호흡이: 아! 정말.. 다시 호흡.. 제일 중요한 거야. 호흡을 잃지 않는 것. 다시 5-2-5 심장호흡을 해.
모두 호흡한다.
들여마시고 54321
멈추고 하나 둘,
다시 천천히 내쉬어 54321
운전사: 잘했어. 내가 정리해 볼게. 분석이 말은 지금까지 태운 6명의 손님은 이미 우리가 만나봤던 파트라는 거잖아. 그리고 이 마음버스에서 만나야 할 것은... 나도 말하기가 어렵네.. 우리 모두 조심했고 만나 본 적이 거의 없기도 하네. 소방관은 진정하고 있어. 우선 우리는 만난다는 것이 아니고, 만날 지를 결정하는 자리니까.
소방관: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거 알지?
운전사: 알고 있으니 진정하고 들어봐. 우리는 소방관이 다시 활동하는 걸 원치 않고 있어. 너는 너의 자리를 제발 지켜. 흥분하지 말고. 네가 쉽게 등장해 버리면 우리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말 그대로 초토화되어 버려. 너의 등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단 말이야. 알겠지? 이건 우리의 결정이야 쉽게 생각하지 마!..
소방관: 아~ 알고 있어. 누가 쉽게 한데... 그냥 나는 내일을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내가 지켜온 건 너무 간과하는 거 아니야?
땡깡이: 어, 소방관도 생떼를 부리려고 하네.. 왜 이래.. 그건 내가 하는 역할이라고!
소방관: 그래, 귀엽다.. 그런 건 네가 해야 어울리지. 나는 내 자리에. 오케이. 더 말해봐. 운전사.
운전사: 든든하네. 소방관 고마워. 분석이가 볼 때 정말 해야 할 작업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은 우리가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다는 거지. 이 버스를 운행한 이유는 만나지 못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만나는 거였으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끼리 가능할지. 아니면 보라돌이를 만날 때까지 기다릴지. 어떻게 할까?
기록이: 잘 기록하고 있어. 그런데 누굴 우리가 못 만났었어?
모두: ... ... ...
운전사: 오케이. 느꼈어. 알아 들었어. 우리 모두의 침묵이 말해주고 있어. 우선, 보라돌이를 만나서 이 작업은 해 보자. 모두 우리끼리 할 필요는 없어. 상담은 누구에게?
모든 파트: 상담사에게!
운전사: 우리가 만나지 않아서 잘 몰랐던 거지. 사실 그렇게 큰 건 아닐 거야. 보라돌이가 말했잖아. 모두 우리가 창조한 거라고.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거니까.. 감정이 크다는 것은 본심도 크다는 거고.. 큰 본심을 품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크다는 거지. 염려 말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작업을 해 보자.
실망이: 그래도 이건 실패한 거 아니야? 우리는 너무 부족해. 실망이야!
토닥이: 왜 이러셔~ 이 만큼 한 게 어딘데... 알잖아.. 상담이라는 걸 몰랐을 때도 우린 힘을 합해서 호흡을 하면서 10년을 버틴 거... 생각 안 나?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뛰는데 어쩌지 못할 때 좋은 것을 상상하며 심호흡을 했었잖아. 그리고 10년간 노력했었잖아. 서른 쯤에 아무 일 없을 때 심장이 뛰지 않는 걸 느꼈을 때 엄청 기뻤었잖아.
기록이: 맞아 그랬어. 우리가 20살에 10년간 심호흡과 좋은 상상을 하며 호흡했고 그 결과 30살에는 일상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지 않은 걸 확인했지. 그래서 성공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리고 그때 상상했던 일들은 현실로도 이루어졌어. 그걸 하트매스연구소에서 '심장집중호흡, 평정심기술'이라고 회복탄력성의 기술로 연구되어 있음.
실망이: 역시 기록이. 맞아, 그랬어. 우린 실패한 게 아니야!
기록이: 우리에게 실패는 없었어. 모두 과정이 있었지. 과정 없이 결과는 없는 거잖아. 내 기록장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어. 내 기록장과 마이클 싱어의 책 '삶이 나를 더 잘 안다'는 비슷하다고. 이건 나의 자부심이야.
운전사: 그래, 확인시켜 줘서 고마워. 모두 좀 진정이 된 것 같아. 흥분이 도 오늘은 잘 참아 주었어.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무엇보다 오늘 고마운 건, 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을 지켜준 거야.
긴급회의를 마쳤다. 우리는 직진보다 우회하기로 했고, 우회하면서 내면을 더 다져보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논의하였고 우리의 결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많은 파트의 등장이 쏟아져 나오는 듯 했지만 "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을 지키며 회의를 마쳤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만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새로운 경험 속에서 자신을 알아차림하는 것은 축복과 같은 거죠.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보라돌이-
오늘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나의 파트들과의 대화도 그렇고, 우리 사이의 소중한 리듬을 유지했던 경험도 그렇다. 내가 이 새로운 경험에서 알아차린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씨앗이다. 누군가가 대신해주지 않아도 내가 내 삶을 운전할 수 있다는,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씨앗이다. 보라돌이의 말처럼, 오늘은 축복의 날이다.
고통과 축복. 고통속에서 축복이 있었던 날이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는 말이 좀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은 어렵다. 이 말이 보라돌이의 마음처럼 나에도 진심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한편에 여전히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고, 이런 과정이 좋기도 하면서 외롭기도 하다... 가고 있지만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 말끔하지 않다.. 꼭 말끔할 필요는 없으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