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손님. 멈추라고 말하는 소방관
하나의 part에는 하나의 감정, 생각, 감각이 있다. 감각 안에는 오감과 몸의 감각을 포함한다. 이를 테면 울렁거리는 느낌, 명치가 아픈 느낌, 소름 끼치는 느낌 같은 것이다. 이런 몸의 느낌은 친숙한 것들이다. 내면가족체계치료(IFS)를 공부하면서 이것이 소방관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런 느낌이 싫었다.
그런 경험을 했는데 어쩌겠어요. 그렇게 느낄 수밖에.
라고 보라돌이 상담사는 말했었다. 그때는 수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 말이 오늘 생각이 났다. 왜냐하면 소방관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소방관은 몸을 불편하게 만들어 비상임을 알려준다. 소방관이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가면 안돼. 위험해.' 급한 불을 끄듯 내 안에서 소방관이 재빠른 진화를 위해 노력한다. 나에게 더 이상 알려고 더 가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내가 '버려진 아이'를 만나러 가 볼까 라는 생각- 즉 하나의 파트를 만나려는 생각을 하자- 속이 울렁이고 숨이 가빠지고 토할 것 같은 상태로 나를 만든다. IFS의 소방관의 역할이다.
이런 몸의 반응으로 우선 멈출 수밖에 없다. 더 가면 위험해지고 공황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효과적으로 나를 멈추게 한다. 생각보다 빨리 등장한 나의 소방관을 먼저 만나 본다..
운전사: 소방관! 너는 뭐가 걱정되고 두려워서 나타난 거니?
소방관: 나 또한 너를 위해 존재해 왔고 지켜왔어. 위험해 나는 알고 있어 더 가지 마! '버려진 아이'를 느끼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아픈 거야.
운전사: 어떤 게 더 위험한 건데.. 이미 나를 이렇게 긴장시키고 숨을 가쁘게 만들고, 명치를 아파게 하면서...
소방관: 더 나아질 수 없어. 이런 건 그냥 고통일 뿐이야. 그만 알려고 해!
운전사: 싫어. 그럴 수 없어. 너도 알지! 내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은 모르는 공허함에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이 힘든지 알잖아. 멈출 수 없어. 그보다 어떤 것도 더 힘들 순 없거든! 나는 갈 거야. 이번엔 말리지 마!
소방관: 단호하고 무섭군. 굳은 결심을 했나 보네.. 나도 물러나지 않아!!! 나는 이 방식으로 항상 너를 지켜왔어.
운전사: 노력한 것 알고 있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화가 나거나 두려울 때 나를 해소하게 해 주었지. 몸에서 터져버릴 것 같은 것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 나는 그것을 비난하진 않아.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면 내가 온전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기 싫어. 그러고 나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줄 알아! 이젠 다르게 살 거야. 너도 안심해도 돼.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
소방관: 이제 와서 나를 버리겠다는 거야! 이건 배신이야. 나는 너를 지금까지 지켜왔다고..
운전사: 그렇지 않아. 네가 준 영향과 힘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리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 가끔 후회되고 아프지만 나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내 몸에서 너를 기억하고 있고 너를 통해 나는 나아가려고 해. 더 편안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소방관: 나 역시, 이 버스가 운행될 때부터 있었어. 너는 잘 모르는 것 같더라. 너에게 울렁임과 긴장, 머리 아픔으로 나의 존재를 드러냈었는데 약해서 그랬는지 너는 운전을 멈추지 않더라... 하나하나 만나가더라. 그런데 오늘 내가 나온 것은 이제부터는 정말 위험하기 때문이야! 너는 고통스러울 거야! 하지 마.
운전사: 그렇지 않아. 무턱대고 믿는 게 아니라, 너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듯이 이 정도는 믿어 보는 거야. 내가 나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갈 수 있고, 다른 누군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어 보려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건 너무 허전하고 슬프잖아. 내가 보라돌이 상담사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는 받아주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도 알잖아! 나를 제발 막지 마!! 이 울렁거림, 숨 가쁨을 이제 멈춰줘.
소방관: 정말 할 수 있겠어? 상처만 받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걸 확인하고 또 괴로워할 거 아니야? 초라하고 비참한 너를 재확인하고 너는 또 이불 속에 들어가서 울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내가 그걸 보는 게 쉬운 줄 알아! 네가 그런 경험을 하게 둘 수 없다는 거야!
운전사: 그렇구나. 너는 그게 보는 게 어려웠구나.. 내가 좌절하고 슬퍼하는 걸 막아준 거구나... 고마운 일이야. 마치 아빠같이 안전하게 나를 보호했구나. 내가 다시 그럴 수도 있어. 나도 모르는 거니까. 나도 이렇게 내가 성큼성큼 가는 게 놀라워. 미쳤나 싶어.. 하지만 정말 중요 한건 나를 타인에 맡겨두지 않겠다는 거야. 이제 절대로.. 그냥 나를 방치하지 않을 거야! 그건 너도 바라는 거잖아!
소방관: 너는 멈추지 않겠구나. 이렇게 단호한 건 처음 본다. 그래.
운전사: 고마워. 정말 숨이 편안해지고 명치의 아픈 느낌이 나아졌어. 몸에서 네가 나를 받아준 게 느껴져.. 고마워...
소방관의 등장으로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멈추지 않겠다고. 지금껏 소방관이 나의 보호자로 등장했을 때 나는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나는 그 뒤에 숨어 있었다. 내 책임이 아닌 것처럼 맡겼다.
나는 수많은 경험 속에서 알게 되었다.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 듯한 공허함이 삶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운전대를 꽉 잡았다. 이제 놓지 않겠다. 이젠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도 않을 것이다.
...
p.s 다시 읽어보니 운전자는 성인자아가 아니고, 나를 믿어보자는 part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