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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중요한 건 발란스

서핑의 두 번째 관문

by 제롬

또, 저 멀리서 크리스가 소리를 지른다.


"마마, 발란스!"


밀려오는 파도에 맞춰 일어서는 것이 가능해질 때 다음 난관은 보드 위에서 발란스를 잡는 것이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발란스, 발란스...

내 삶의 균형은 작은 물결에도 흔들렸는데 이 작은 보드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에 두 발의 간격이 모아지거나 자신만만 두 발의 간격이 멀어질 때 바다로 곧두박질 쳤다. 여지가 없다.


크리스가 밀려오는 물결을 보며 나에게 소리치다.


"레디!"


나는 속으로 되뇐다. "나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중요한 건 발란스, 발란스"


마치, 지난 경험에서 느낀 좌절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겨내야 할 것만 같았다. 서핑으로 대치되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작은 보드 위에 서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내 삶에서 좌절하는 순간, 쓰러질 것 같던 순간의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있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뇌과학자 장동선은 어린 시절 큰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를 지니고 자살시도를 3번 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데리고 같이 죽자고 했던 어머니의 영향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상처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캡슐을 삼키고 사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성공한 과학자로서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것은 화려해 보이는 누군가의 삶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상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모두가 잘 살아가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세상이기에 아픔과 슬픔이 행복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 날들에도 살갗이 아려 올 때가 있다. 혼자 쓸쓸했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연관도 없는 상황에서 생생하게 들춰지는 건 익숙하지만 외로움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행히, 이제 나에게 말해준다. "나는 그런 경험들을 했었는데 어쩌겠어."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드라운 엄마 품이 그리울 때조차 그리움을 지워버렸다. 안 될 일을 꿈꾼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기에 아주 어린 나이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니, 나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건 필연적이다. '그런 경험을 했는데 어쩌겠어'라고 나에게 말해주기 까지 오래걸렸다. 이 생각이 가슴에 자리 잡고 나서 내 삶은 한결 편안해졌다.


보드 위에서 일어서면서 동시에 발란스를 잡기 위해 왼발을 어깨너비 보다 넓게 벌려 중심을 잡는다. 발은 보드 위에 가로로 놓아야 중심이 잡힌다. 발란스를 잡기 위한 시간은 길어야 3초 정도이다. 그 시간에 파도를 타거나 바다에 빠진다.


처음에 3초라는 시간 안에 해야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쉽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왼발을 넓게 가로로 놓는 일이나 동시에 팔을 벌려 중심을 잡는 일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첫날 긴장한 탓인지 이 과정을 몸에 익히고 5번 이상 넘어지지 않고 파도를 탔다. 다음 날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중요한 자세를 잊게 했고 발란스보다 더 멋진 파도를 타고 싶다는 자만이 들 때 어김없이 넘어졌다.


다시 되뇌었다. 일어서고, 왼발을 가로로 놓고, 팔을 벌려 발란스를 잡는다.


하나 둘 셋.


천천히 하나씩 말하며 나는 발란스를 잡기 위해 집중한다. 보드 위에서만이 아니다. 삶의 순간 순간 발란스를 잡기 위해 집중한다.


그리고 나직하게 나에게 말한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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