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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작은 마음 May 04. 2021

머리와 마음

사람들은 말한다. "내 마음이 내가 생각한 대로 되었으면 좋겠어, 왜 항상 내 마음은 머리와 따로 노는 거야, 한심해 죽겠어". 진정한 사랑과 이별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이었다. 예전의 나는 "그냥 머리가 생각한 대로 따라가면 괜찮을 것을 뭐 이렇게 복잡하고 마음고생을 하는지"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게 쉽고 가능한 줄 알았었다.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그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 갑작스럽지만 만났던 그날, 그날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에 설레는 대상이 한 명 더 생기게 되었다. 나는 사실 한국에 살지 않는다.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나의 상황에 슬퍼하며 떠났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매일 그 사람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마침 친구와 그 사람이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 있기에 친구에게 질리도록 물어보고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미국으로 떠나고 3월, 코로나가 미국에 조금씩 생기고 있을 때, 학교에서는 날 한국으로 다시 보냈고, 지금까지 한국에서 있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감정들도, 많은 걱정들도, 행복들도, 설렘들도 느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그는 나와 마주치고 부딪혀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젊다면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의 나이지만 소극적이고 걱정도 많은 성격이기에 먼저 인사하고 카톡 하기가 너무 떨렸다. 뭐든 시작 전에 많은 생각들과 걱정들로 가득 찼지만 좋은 기회로 그 사람과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매번 먼저 연락하고 먼저 물어보았다. 사람을 이렇게 오래 마음에 두고 있는 일이 처음이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들과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그 어떤 시간들과 비교해도 행복하고 설레었던 시간들이었고, 그렇게 봄이 되고, 여름이 되었다. 그 사람은 눈치가 있어도 내 앞에서는 눈치가 없는 척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그 사람이 정말 눈치가 없는 줄 알고 한창 더울 때 태어난 나의 생일에 무엇을 받고 싶은지 티를 내고 얘기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분이 있다. '퍼엉'이라는 작가분의 그림과 내용을 정말 좋아해서 그분의 책을 갖고 싶다고 얘기는 안 했지만 간접적으로 티 내려고 노력했었다. 그분은 눈치가 있어도 없는척하느라 힘들었었을 거다. 그렇게 나는 그분을 '곰'이라고 부르며 놀렸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렇게 나는 잊을 수 없는 2020년의 생일을 보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날은 정말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네 글자 '좋아해요'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본 그림이었지만 그 순간엔 너무 떨려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콩깍지가 이렇게 무섭다. 뭐든 고마웠고, 뭐든 좋았고, 뭐든 행복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직업은 많은 연습량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바쁘고 힘들었지만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들어주는 것조차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좋았지만 너무 바빴다. 둘은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꿈을 좇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난 이해하고 기다리며 조금은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그래도 좋아하고 나에게는 듬직한 사람이었기에 기다림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만날 수 있는 날에 문자를 했는데 오늘은 못 볼 거 같다고, 쉬고 싶다고 말하는 그였기 때문에 나는 "힘들 수 있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쉬라" 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보통은 보고 싶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기다려줘서 고맙다, 먼저 달려와야 하는 사람은 상대방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였으면 기다려주고 있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끝나자마자 당장 달려가서 얼굴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그에게 소중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던 거구나,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구나" 그렇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흐지부지 된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확실이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이게 아니고 어린아이가 장난감 상자를 열어 넓러 뜨린 후 정리하지 않고 방 한편에 방치해두어 잊어버린 상황 같은 관계에 머물러있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게 보고, 인사한다. "그냥 답답하다고 말해버려"라는 머릿속의 외침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마음의 선택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끄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나의 마음은 내가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은 그렇게 잠수의 이별을 맞이한 나에게 미안하지도 않은지 아직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용서가 되고, 용서가 하고 싶고, 그래도 좋고, 그래도 밉고 그렇지만 밉지 않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조건 없는 사랑이 되었고, 부모님이 어떠한 사랑들로 가득 차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알았다. 사람에게 마음이 다쳐 아물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수백 번 머릿속으로 다짐해도 그렇지 못할 마음을 아니, 이젠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첫사랑은 어떻게, 무엇이 첫사랑이라고 하냐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난 가장 많이 배우고, 아팠고, 유치했던 사랑이라고 한다.


글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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