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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세상

by Laura Lee

2019년, 나의 인생에서 또 다른 인생에 발을 디딘 두 번째 인생이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아직 어리디 어렸던 2019년의 나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인생 최초 혼자 비행기를 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새로운 정착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미국 JFK 공항의 첫발, 첫 공기는 내 코끝에 들어오는 순간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그쪽 동네는 뭐 다르겠니" 아니다, 너무 달랐다. 비행기를 타고 가며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나의 그림들과는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남들보다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았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나의 인생에서 최고의 경험을 하고 있는 20대의 삶이다. 모든 것을 이제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무서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어리고 철없던 나는 다른 나라의 환경에 좋아라 하며 버스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출발했다. 어느 정도 지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헤매지 않고 잘 도착한 나는 큰 캐리어 두 개를 힘겹게 끌며 학교로 들어갔다. 내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뱉은 말은 "Let's start my new chapter in here, States".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매일매일 끊이지 않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곳에 오니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을 보고 황홀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다 똑같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들의 움직임, 생활 모든 것이 다 같았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엔 꿈과 희망이 넘쳤고, 남들 눈치는 전혀 보지 않은 채 그들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와 따듯함이 묻어나 있었다. 사람들이 나와 맞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때 한 젊은 남자가 같은 벤치의 끝에 앉아 사진기를 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첫 얘기를 꺼냈다. "Hey, would you mind i take a picture of you?" 생전 처음 보는 남의 카메라에 나의 모습이 담긴다는 게 처음엔 조금 불편해 "Sorry, but you can take a picture of my book"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해버린 나는 그때 깨달았다. 처음 미국에 와 말을 나눈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Pride and Prejudice by Jane Austen.'이었다. 그렇게 우린 3시간을 앉아 서로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어떤 사람들로 가득 차 살아가며,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물어보기 바빴다. 그리고 그는 나의 이메일 주소를 물어봐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의 미국 생활의 첫날이 지나갔다.


아직도 어리다면 어릴 수 있지만 그때는 그 사람과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 귀한 인연을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 그 사람을 만난 건 귀한 인연이지만 거기서 끝날 사람은 가라고 놓아주는 것이 맞다. 미국 와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이것이다. 모든 만남에 의의를 두지 않는 것, 보내야 할 사람은 보내고, 흘러가는 사람을 잡지 않는 것. 왜냐하면 우린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은 돌고 돌아서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고, 아닌 사람은 바람처럼 날아가는 것. 나의 가장 첫날에, 그리고 지금까지 배우고 있는 것이다. 놓아주기.




글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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