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엮는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까?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모른다. 그들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그들의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들이 겪은 일들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빠에게 한가지바라는 한 가지 소원 아닌 부탁이 있다. 아빠의 인생을 전부 담은 자서전을 읽어보고 싶다. 내가 모르는 작은 부분까지 전부 다 적은 아빠의 자서전.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도 일 때문에 너무 바빠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도 엄마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있던 병원에서 엄마를 미혼모로 착각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삶은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고, 집안의 가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일찍이 내 꿈을 위해 열심히 서포트해준 아빠는 내 산전수전을 다 같이 겪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옆에서 지켜보았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내가 엄청 어렸을 때 아빠가 일을 가기 전에 내 방에 와서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고 가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도 물론 평범하고 행복만 했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하지 못한다. 그때는 내가 왜 악기를 하는지, 해야 하는지, 내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음악인지 생각조차 할 시간 없이 살아왔다. 지금도 22살인 나를 위해 아침 새벽마다 새벽기도를 하는 아빠는 내 사람들 중에 가장 성실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3살부터 17살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연습실에서 하루종일 살았던 나는 매일 하는 게 좁은 방에서 연습하는 것이다 보니 성격도, 마음도 조금씩 작아져갔고 닫혀갔다.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마음의 여유도 없이 아침에 연습실에 가 새벽 늦게 집에 돌아오는 3년이었다. 그렇게 너무 힘들었던 나에게 다그치는 아빠가 너무 싫었다. 한번 아빠와 말다툼을 하고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나도 몇 달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아빠는 나랑 성격이 똑같다. 절대 먼저 얘기하거나 따듯한 말로 표현하는걸 잘 못한다. 어렸던 나는 아빠의 마음을 모르고 거기에 상처를 받아 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그렇게 대학에 와 유학의 경험을 하니 처음에는 잔소리 없는 내 삶이 너무 좋았고 부모의 간섭이 없는 완전한 어른이 된 거 같아 마냥 좋았지만 이제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 아빠의 침묵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연습실에서 항상 늦게 들어오는 나를 뜬눈으로 기다리고 내가 집에 들어온 걸 본 후에야 조용히 잠에 들었던 아빠는 그 침묵 속에 너무 많은 사랑과 애정이 들어있었다. 아빠의 침묵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옆에서 지켜줄 마음도, 내가 무엇을 하던 항상 도와주고 함께해 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항상 말은 하지 않지만 뒤에서 항상 지켜줄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빠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알았다. 친할머니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미국에 있었고 아빠는 코로나에 걸린 상황이라 할머니의 장례에 가지 못하셨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누군가의 떠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혼자 눈물을 흘린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아빠도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나와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자신을 책임진 어른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었고, 한 생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아빠였을텐데 나는 아빠가 주는 사랑과 도움을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지 않았나,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 있었던 아빠의 사랑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지금에서야 아빠의 그 무거운 침묵에는 사랑이 가득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항상 하고 싶었다. 나는 분명히 인내심을 갖고 새로 산 컴퓨터작동을 알려줄 수 있었고, 새로 산 핸드폰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쳐드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빠가 옆에 있을 때 아빠 잔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빠에게 조금 더 살가운 딸이 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빠 손을 잡고 한 번이라도 친근하고 사랑한다고 기도해 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빠가 먼 한국에 있으니 이런 게 지금에서야 보인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잊어버릴 때까지 기다리고 잡아두지 않고 할 수 있을 때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