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1300의 노래와 춤의 음악
그레고리안 찬트는 존경받는 전통으로, 표기법으로 보존되었고,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쳤고, 논문에서도 논의되었다. 교회 밖에서는 중세시대에는 음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을 제외하고는 세속적인 음악은 거의 적거나 쓰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악은 순수하게 자연스러웠고, 그들이 듣고, 부르고, 연주하는 세속적이고 비문학적인 음악의 대부분은 사라졌다. 살아남은 것과 수백 곡의 monophonic (모노포닉) 곡들, 지금은 멜로디에 맞춰 노래된 많은 시들, 몇 곡의 댄스 곡들,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한 묘사,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사진들, 그리고 몇 개의 실제 악기들이 있다. 이것들로부터 우리는 음악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배울 수 있고, 프랑스 및 독일의 Minnesingers (미네 싱어), 이탈리아 Lauda (라오드)와 스페인 Cantiga (칸티나), 댄스 음악을 포함한 몇 가지 중요한 레퍼토리들을 식별할 수 있다. 이러한 노래와 춤에서 우리는 의학 사회의 반영을 볼 수 있고 그 이후로 유럽 음악에서 공통적인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 유럽 사회, 800-1300
중세 음악은 넓은 사회의 종류에 의해 형성되었다: 정치 발전, 언어적 지역, 경제 성장, 사회 계층, 그리고 학문과 예술에 대한 지원. 9세기까지 세 명의 주요 후계자는 소아시아와 동남유럽의 Byzantine (비잔틴) 제국이었다. 가장 강하고 활기찬 곳은 아랍세계로, 610년경 Muhammad (무함마드) 570~632년경)에 의해 이슬람 종교가 창건된 때부터 현대 파키스탄에서 중동, 북아프리카, 스페인을 거쳐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급속히 팽창했다. 그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분열된 것은 서유럽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800년 로마에서 Charlemagne (샤를마뉴)가 황제로 즉위한 것은 로마의 과거와의 연속성, Byzantine의 동양으로부터의 독립, 서유럽의 문명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주장하였다. 유럽 문화는 세 제국 모두에게 많은 덕을 보고 있다. Byzantine 은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 건축, 문화를 보존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글들은 오직 Byzantine의 낙서들이 그것들을 복제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아랍인들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확장하고, 유행과 산업을 육성했으며, 의학, 화학, 기술, 수학에 기여했다. 아랍의 지배자들은 문학, 건축, 예술적 성취의 후원자였다. 그는 교육을 향상했고, 그의 나라 전역에 있는 수도원과 성당 마을의 초등학교를 장려했다. 학식과 예술을 후원함으로써, Charlemagne (샤를마뉴)와 그의 아들 Louis the Pious (루이스 더 피오스)는 그들의 궁정을 지적 그리고 문화적인 삶을 위한 중심지로 만들었고, 천년 동안 지속된 서구 규칙들의 패턴을 설정했다.
- 라틴과 고유의 노래
라틴어 노래의 한 종류인 versus는 보통 신성시되었고 때로는 전례에 첨부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주제로는 예수의 탄생, 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성모 탄생과 화신의 기적 등이 있다. 그 시는 운율이 맞았고 보통 억양의 규칙적인 패턴을 따랐다. 모노포닉 대는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작곡되었으며, 특히 Aquitaine (아키텐)에서 작곡되었으며, 같은 지역의 다른 두 레퍼토리인 troubadour (트루바두르) 곡과 Aquitanian (아키 타니아) 다곡에 영향을 주었다. 관련 유형인 conductus (콘도 루스)는 12세기에 북프랑스에서 라틴어 노래로 시작되었는데, 리듬이 있고 리드미컬한 텍스트와 함께 신성한 주제나 세속적인 주제에 대한 진지한 라틴어 노래로, 이는 서열과 유사하지만 쌍으로 된 구절들이 없다.
- Epics
살아남은 언어 시의 한 종류는 서사시, 긴 영웅담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기 전에 말로 전달되었다. Chanson de geste 샹송 데치는 프랑스 북부의 서사시로서 국가 영웅들의 행적을 재연하고 단순한 멜로디 공식으로 노래했다. 가장 유명한 샹송 De geste (데 게스 테)는 스페인의 이슬람교도들과 싸운 Charlemagne’s (샤를마뉴)의 이야기를 다룬 Song of Roland (롤랑)의 노래이다. 약 100개의 다른 찬송가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12세기부터 존재하지만, 그 음악은 거의 보존되지 않았다. 고대 영어 Beowulf (벌프), Norse eddas (노르 시다스) , Nibelungs (니벨룽)의 독일 노래와 같은 다른 나라의 에픽도 불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음악은 결코 적히지 않았다.
- Troubadour and trouvera
중세 국악의 가장 중요한 본체는 귀족의 후원으로 궁정과 도시에서 재배된 서정 전통이었다. 이 전통은 12세기에 남부 프랑스의 시인 작곡가인 시인의 Troubadour에서 시작되었고, 북부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그 언어는 고대 프랑스어였다. 그리고 이 시대 때 멜로디, 리듬, 반주, 가 생겨났다.
- Dance music (춤음악)
중세 춤은 노래나 기악을 곁들였는데, 대개 적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서 공연되어 멜로디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서면 서술과 그림으로 판단하자면,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교춤은 보통 한 명 이상의 무용수들이 부르는 노래와 함께 하는 carole 춤이었다. 그 무용수들은 때때로 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했다. Carole 춤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약 20곡의 멜로디만이 현존한다.
조금씩 음악의 발전이 시작된 중세시대에는 음악의 기호들과 악보는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이 세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속과 기억 속에는 그들이 불렀던, 들었던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비롭고, 음악의 위대함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글: 이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