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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제나 May 28. 2021

언제나 실패로 돌아가는 시도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1

  2020년도 2월 방송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당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VR 기술을 이용하여 이미 세상에 없는 딸 나연이를 다시 한 번 만난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았다. ‘너를 만났다’를 본 많은 시청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폭발적 반응을 보내왔다. 나 역시 VR로 구현된 나연이가 나오기도 전에 훌쩍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저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였다고 끝내기엔 아쉬울 따름이다. 하여 주관적인 감상을 포함하여 이 다큐멘터리가 내포하고 있는 지향점에 대해서 짚어보고자 한다.


  <너를 만났다>의 분량은 채 1시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촬영기간은 자그만치 6개월. 1년의 절반을 촬영하여 최고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이 VR이라는 기술로 감동적인 순간을 준비한다. 아마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이 기술을 구현하는 데에 들었을 테지만 카메라의 앵글은 VR을 만드는 제작진이나 그 과정이 아닌 나연이 가족의 일상을 조명하고 있다.


  사랑하는 셋째 나연이를 떠나보낸 가족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남매끼리 유치하게 싸우고 울고, 엄마는 저녁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가끔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드는 일이 있을지언정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생활 곳곳에 나연이가 배어있다.


평소에 너무 쉽게 눈물을 표현하는 게 싫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진동까지도 드러내고 싶었다.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한 시도가 그냥 기술 시연이 아니라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했다. _제작후기 중에서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성. 그 사람의 손짓, 말투, 향, 감촉, 표정, 행동, 버릇 등 너무나 많은 것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끔 느끼게 해준다. 사실 VR로 구현된 나현이가 완벽한 사람의 형태로 재현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사람과 너무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을 보이며, 그로 인해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를 느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작 후기에 따르면 촬영 당일 버그가 생겨 원래 준비하던 바의 30% 정도만 구현되었다고 한다. 물론 VR로 구현된 나연이가 완벽히 사람의 형태를 띠었다면 시청자와 사연자의 반응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연이가 얼마나 사람의 형태로 잘 구현되었는지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연자는 그것이 진짜 나연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VR로 만들어진 나연이가 진짜 나연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들은 물론 시청하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나연이라고 칭한다. 그 근원은 VR을 만든 제작진도, 그것을 시청하는 시청자도 아닌, VR에 나연이를 투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연자임에 틀림없다.


  사연자는 문신, 목걸이 등 딸을 추억하고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을 만들고 그것을 보며 나연이를 떠올린다. VR에 비친 인간의 형상에 딸을 투영시키는 것은 물건으로 나연이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쉽다. VR의 인물은 나연이를 닮았고 나연이의 고유한 몸짓을 하고, 나연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나연이의 방식으로 먹는다. 그리고 사연자는 그 모습에서 나연이를 발견한다. 나연이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은 VR로 나연이를 재현한 제작진이 아니다. 바로, 사연자이다.


  지금까지 VR은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더욱 발전되어 왔다. ‘진짜 같은’ 방식이 가장 잘 활용되고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VR은 게임과 교육 같은 생생함이 필요한 분야에 특화되어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되어왔다. 하지만 VR이 게임에 한정되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너를 만났다>의 맹점은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이제 기술을 이용하여 만날 수 있다는 데에 있지 않다. 사연자에게 조금 더 생생하게 나연이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고, 조금 더 미세한 행위까지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이 드러난다. VR을 내세우고 있으나 <너를 만났다>의 메인 키워드는 ‘애도’인 것이다. VR의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다큐멘터리는 방점은 ‘휴먼’에 찍혀 있다.


  가상현실로 만든 나연이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청자는 그녀가 결코 나연이를 만날 수 없다는 불가능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 바로 그 사실이 슬픔을 증폭시킨다. 사연자의 그리움에 공감하며 슬픔을 느끼지만 결국 우리는 시청자이다. 우리는 한 발짝 떨어져서 허공에서 딸을 껴안고 싶어하는 엄마를 본다. 나연이를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연이를 한 번 더 안아보고 싶어 하는 엄마를 본다. 그렇기에 오히려 VR의 나연이가 현실의 인간과 괴리가 클수록 시청자들의 슬픔은 증폭된다. 언제나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도인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그것을 놓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김종우, <너를 만났다> 제작후기, 방송문화, (421), 2020.6, 166-179

http://program.imbc.com/Enews/Detail/meetyou?idx=27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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