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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닥 Oct 03. 2021

점 하나, 둘, 셋...

난설헌의 모닥


  지독하게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누군가 굶주렸는지 하늘의 별이란 별은 다 먹어치워 보름달만이 덩그러니 떠있다. 정처 없이 거리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디작게 들려왔다. “ㅁㄱㅁㄱ~~!” 뒤를 돌아보자 희미한 형체가 멀리서 보였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의 온도가 나를 휘감았다. 그리고는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고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찰나에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지구 상에서 가장 가벼운 고체 ‘에어로젤’, 99%의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뜬금없다.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지만 내 마음을 대변해줄 수 있는 이만한 비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에어로젤 무게 정도의 가볍디가벼운 마음으로 기후 악당들이 모인다는 간담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할 수도 있겠으나, 나의 경우에는 장엄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출발 전, 짧은 탄식만이 있었다. ‘아! 간당간당하게 도착하겠네.’       


  가장 긴장되는 순간. 액션 장소를 안내받았지만 오른쪽, 왼쪽 도무지 헷갈린다. 길치와 방향치인 나에게 특정 장소를 찾아오라는 건 엄청난 미션이다. 길을 따라 네모난 상자 같은 커다란 건물 앞에 섰다. 회색빛의 나를 압도해온다. 이 거대한 건물 하나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을 삼켰듯 그 공간을 살아온 기억들 또한 모조리 삼켜버린 듯했다. 건물이 있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을 오가던 기억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숲, 나무, 생명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여곡절 끝에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그냥 정문으로 들어왔음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지나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오니 1층 곳곳에 경비분들이 보였다. 그렇게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혼자만의 눈치게임. 아마도 상대는 “쟤 왜 저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해봤다. 그래도 충실히 게임을 수행했다. 커피숍을 찾지 못해 헤매는 방문객, 이것이 나의 컨셉이었다.     


  시간이 됐다. 우리는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며 회의장 입구를 막았다. 누군가는 뭐지 싶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누군가는 막아야 한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입구를 막은 현수막을 지키기 위한 가을 운동회가 벌어졌다. 밀고 당기기! 현수막을 지켜내는 통에 에너지를 많이 썼고, 잊지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점심을 먹지 않았다. 배가 너무 고팠다. 복식이 아닌 흉식으로 구호를 외쳤다. 단전의 힘을 쓰지 않기 위한 안간힘.     


  공간을 메우는 먼지, 빛, 냄새, 온도, 백색소음 그리고 여러 목소리들이 중층(重層)되어 파도처럼 나에게로 밀려들어왔다. 이렇듯, 수많은 정보가 공간에 있지만 그곳에서는 공적/사적 경계가 구분 지어져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이뤄지는 역설적인 공간. “기후 악당 출입 금지”라는 말에 회의장 앞에서 가로막힌 이들은 각자 자기 증명을 시작했다. 외설적 초아자를 억누르지 못한 채 이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불법”, “사유지 무단점거”, “충분했다”, “이해했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취소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 기억을 되돌려 기억 속에 자리한 현장의 기억 하나를 비틀어 잘라보았다. 투박한 절단면. 잘린 면 안에는 무수한 점들이 보였다. 수많은 점들이 제각기 방향대로 움직였다. 어느 순간은 선이 되었고 또 어느 순간은 면이 되었다. 그러다 다시 점이 되어 돌아왔다. 그 공간에서 ‘나’로 그리고 ‘우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점의 시간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우아하게 불의의 시공간을 건너왔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똑같은 장면. ‘이번에는 기필코 그 말을 들으리라!‘ 

“마...마ㄱ”

“네? 하시고 싶은 말을 하세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감입니다.”

“뭐가 마감이라는 거죠?”

“원고 마감일이라고요! 글 제출하세요.”

비명과 함께 다시 깨어났다. 그랬다. 마감!! 마감일을 한참 지나 제출하는 저를 부디 용서하소서. 





모닥 불씨 | 난설헌

안녕하세요. 지구의 방랑자 난설헌입니다. 저에게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바로, 자기소개입니다. 아직 저도 제가 누군지 잘 몰라서 소개는 늘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안을 찾아 이곳저곳 방랑하는 지구시민 정도로 소개할 수 있을 듯합니다. 

며칠 전, 저는 노동 공간의 비민주적 운영 방식에 괴로워하다 대안을 찾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 바로 다음 날, 재밌는 액션이 있기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죠! 퇴사 후 우울했던 마음이 액션 이후 회복되었는데요! 덕분에 희망뽕을 주머니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밥 먹을 때마다 MSG 넣듯 희망뽕을 밥에 뿌려 먹으며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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