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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l 23. 2024

이제는 그럴 때가 된 듯하다

자신의 의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덮어두었던 깨달음을 갈구하는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아침에 읽었다. 그 필자는 우연히 접한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처음 느꼈고, 감사함의 중요성도 깨달아 자신과 이웃의 인생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길 바랐고, 최근에는 연민도 감사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웃을 위해 베푸는 모든 말과 행위의 바탕에는 사랑 이전에 이웃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했다. 


난 아직 마음의 평화가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모른다. 감사함을 아는 마음이 어떤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모른다. 사람에 대한 연민이 감사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감으로는 알지만 가슴에 가까이 와닿지 않는다. 마음의 평화도, 감사의 마음도, 사랑 이전에 연민의 마음도 단편으로, 토막토막, 상황 상황으로 느끼기는 하지만 깨달음을 통해 나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지 못했다.


반백을 훨씬 넘긴 나이를 살아오며 내면의 성장도, 열린 마음의 베풂도 있었지만 아직 나는 그 근본에 닿지 못한 채 여전히 내면의 평화를 갈구하고 감사한 마음을 진하게 느끼며 내 가족과 이웃을 사랑과 연민으로 대하길 바란다. 왜 못하는지 대한 답을 못 찾으니 갈구함을 그냥 덮어버렸고 가슴 없는 머리로만 살아가고 있다. 




감정에서도 나의 메마름은 극심한 가뭄에 논두렁이 갈라 비틀어지는 것 이상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분간을 못하고 표현할 줄, 아니 설명조차 할 줄 모른다. 내게 느껴지는 감정이 슬픔인지 불행인지 두려움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니 말이다


타인의 슬픔을 내 것처럼,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타인의 기쁨을 내 것처럼 느껴, 같이 공감하고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에 가슴을 쥐어뜯고, 울부짖는 절규를 내 것처럼 느끼고 싶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의 메마른 감정, 형식뿐인 감정은 아무것과도 공감을 할 수 없고, 모든 것에 겉돌고, 많은 것들에서 멀찍이 거리를 둔 채 멍하다.


어디서부터 이리되었는지 단정 지을 수 없다. 생각이나 마음씀의 구조가 달라서인가? 오랜 조직생활로 타성화된 관념이나 습관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선천적으로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어 선가? 분명 뇌가 잘못된 것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척박하게 머리와 가슴이 따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하게 아는 것은 이런 내가 지속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봄비의 상큼함을, 여름 장마의 우중충함을, 가을비의 쓸쓸함을, 겨울비의 을씨년스러움을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다. 사람들의 좌절, 성공, 기쁨, 슬픔도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다. 마음의 평화도, 감사의 마음도, 연민의 마음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다.   


분명 내게도 깨달음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 깨달음으로 평화도, 감사도, 연민도, 그리고 감정들도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계기가 찾아와 주어 나의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으면 한다. 명상을 통해, 기도를 통해, 책을 통해, 대화를 통해, 경험을 통해, 깨달음은 어느 순간에 불현듯 찾아와 감정 창고의 문을 열고, 마음 서재를 열어, 평화로운 도원의 세계에서 삶의 깊이를 더해가면 좋겠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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