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글이 되다 II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모두가 비슷하겠지만 떠나간 시간은 야속 한대 내 안을 들여다보면 많이 허전하다. 시간을 쪼개어 사용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낸 듯한데, 그동안 내 손에 쥔 것은 무엇인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정말 바삐 돌아가는 한국사회 따라가느라 허겁지겁한 것 때문일까? 중심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했기 때문일까? 여하튼 사회는 바삐 움직여 만들어 내는 게 있는 듯한데, 내겐 뚜렷하게 남는 게 없다. 단지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석연치 않은 현상들에 매일 놀라는 것은 남은 듯..
‘인샬라’, 중동 국가 사람들이 평소에 무척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알라의 뜻대로’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기쁘고, 슬플 때, 힘들고, 즐거울 때, 황당하거나 어이가 없을 때도 사용하는 단어. 그런데 한국에도 이 단어에 버금가는 단어가 있음을 알았다. 바로 ‘다아나믹 코리아'.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이 얼마나 다이내믹한지 알 수 있다. 그 사건 사고의 내용을 보면 상식에서 꽤 벗어난 수준의 것들도 많으니 정말 다이내믹하다는 말 외는 딱히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잘못을 저질러도 큰소리치는, 사고를 쳐도 바꿔치기해서 모면하는, 돈 때문에 배우자의 목숨도 거두는, 성공한 타인의 과거를 캐어 협박으로 갈취하는, 그 협박한 인간을 협박한 인간이 버젓이 큰소리치는, 대다수의 신음하는 젊은이가 방황하는, 가진 자가 나누지 않는, 힘으로 권력으로 짓누르려는, 도둑임을 알면서도 체포를 못하는, 도로 위에서 보복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대낮에 칼을 들고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학폭으로 괴롭히던 아이가 잘되는, 그리고 이런 일들 하루에 다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어찌 다이내믹하지 않은가?
하루를 시작하는 뉴스를 보면 긍정적인 내용은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제, 간밤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우리 사회를 밝혀주는 등불 같은 뉴스는 없는가? 좋은 일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일은 뉴스가 되지 못하는 걸까? 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면 뉴스가 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어떤 사회든 폭력을 비롯한 입에 담기도 힘든 사건사고들이 많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란 것도 안다. 어쩌면 우리 정도는 치안면에서는 살기 좋은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극단적인 일들이 OECD 국가 중 가장 교육열이 높은데도 대졸니트족이 가장 많은 것처럼 이상한 불균형을 초래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아는데 삶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 불균형, 글로벌기업이나 부자도 많은데 서민대출이 많아 서민이 살기 힘든 불균형, 너무 열심히 앞으로만 달리면서 살지만 결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세대들의 불균형 등이 우리에겐 많아 보인다.
최근 올림픽 경기가 있었다. 이번 올림픽은 유럽에서 진행이 되어 한국 시간으로 오후부터는 충분 즐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시청자들이 1% 수준이었다고 한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에는 흥미를 잃은 듯하다. 어쩌면 흥미를 잃은 게 아니라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또 한편으론 금메달의 의미, 성취, 그리고 이면의 피나는 노력에는 관심이 낮다. 대신, 불화, 갈등과 같은 자극적인 얘기에는 관심이 높다. 선수와 협회, 선수와 선수간의 갈등, 센강의 수질 등에는 관심이 많아 벌떼처럼 모여들어 이러쿵저러쿵 말을 뱉어 낸다.
우리 사회의 단면인 듯하다. 관심 영역이 달라졌다. 선한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극이 없는 영역에도 관심이 없다. 일례로, 이웃이 죽으면 같이 애도했는데 이제는 이웃이 죽어도 자극이 되는 스토리가 없으면 관심이 없다. ‘어젯밤에 내 이웃집에 괴한이 침입하여 이웃이 맞서 싸우다 칼에 질려 죽었다’ 정도의 스토리가 되어야 관심을 가지니 말이다.
지난 7개월간 본 우리 사회의 모습에 다소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가진 기성세대는 내 것을 놓지 않고, 힘들어하는 젊은 세대는 신음만 계속하고,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미래를 멀리하고, 지금은 힘드니 회피할 자극만 찾고, 선함과 가치보다는 돈을 쫓고, 행복보다는 쾌락을 좋아하는 모습에서 당황만 하게 된다. 선한 뉴스를 찾으려 파 헤집어도 그리 쉽지 않은 대중과의 소통 구조에 익숙해질까 겁이 난다. 불과 7개월인데, 자극이 없으면 심심하고 재미없어 뉴스를 넘기는 내 모습에 실망을 한다.
‘다이내믹 코리아’, 1980~1990년대 한국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세계로 나아갈 때, 우리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 사용하였다.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듯, 에너지가 넘쳐 춤사위가 절로나 듯, 흥에 겨워 노랫소리가 절로 나오듯, 우리 사회의 넘치는 열정을 묘사하던 단어였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의미가 언제부터인지 달라졌고,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이며, 우리 사회를 비꼬는 듯한 단어로 된 듯하다.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가 우리 스스로를 하대하는 단어로 변질됨이 서글프게 만든다.
우리 다 같이 ‘다이내믹 코리아’의 참 의미를 살렸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 흥을 다시 돋웠으면 한다. 자극보다는 참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참 가치에 공감했으면 한다. 대중과의 소통 내용은 긍정으로 돌려놓았으면 한다. 신음하는 세대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섰으면 한다. 가졌으면 나누었으면 한다. 즐겼으면 도왔으면 한다. 누렸으면 내려놓았으면 한다. 잘못했으면 부끄러워했으면 한다. 사기를 쳤으면 죄 값을 치렀으면 한다.
그리고 긍정의 사회,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지금 웃을 수 있는 사회로 바꿨으면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선한 영향력을 모두가 미칠 수 있다면 가능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