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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l 28. 2024

집에 영혼을 두고 회사로?

해외 비즈니스 이야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 본 적이 있는지? 정도의 차이, 아픔의 차이는 있겠지만 발등은 한 번씩은 찍혀 본 적이 있을 듯하다. ‘믿는 도끼’란 가까운 사람을, ‘발등 찍히다’는 바로 앞에서, 예상을 못한 상태에서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황당한 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단어로 표현을 하자면, 배신, 사기, 기만, 가식, 외면 등이 연결될 듯하다. 


과연 어떤 관계길래 믿었다가 발등을 찍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주 종종 가족관계에서 이런 경우를 흔하게 접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가까운 친인척에게. 보증 섰다가 잘못되는 경우도 흔히 봐왔고 심지어 사기도 가족사이에 흔하다. 그저 피를 나눈 혈육이라 사실확인 없이 일단 믿고 보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으로 많은 경우가 이웃사촌이나 친구사이가 아닐까 한다. 적당한 거리감도 있지만 수년간 가깝게 지내오면서 '사실'보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더 우선이 된 관계. '친구사이에 못 믿어?' 이 말 한마디에 왠지 믿지 못하는 것이 죄인 듯이 여겨지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동일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런 이유로 가족이나 친구사이엔 돈거래하지 말라, 동업은 절대 안 되는 불문율과 같은 관계의 룰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가장 밀접한 이에게 당한 배신은 어쩌면 '이미 사랑하게 된 다음에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한 뒤에 사랑해야(주 1)'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한 자기 탓이다. '우정을 맺기 전에 판단부터 내리는 것은 친구에 대한 의무에 혼란을 야기하기에, 우애를 품은 뒤에 판단을 내리고, 판단을 내린 뒤에는 사랑하지 않는 자들(주 2)'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는데 그 모습을 지닌 자신 탓이다.




조직생활에서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노력, 의지와 상관없이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도끼를 찍는 경우이니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조직의 사례는 대부분이 배신, 기만으로 연결된다. 따랐던 상사가, 기댔던 동료가, 믿었던 부하가 배신을 하거나 기만을 했을 때 그 대미지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대미지의 결과는 퇴직, 좌천, 승진누락, 오명, 불명예만 남게 된다. 


35년이란 긴 시간을 한 회사에서 열정을 쏟았지만, 나에게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상황’이 있었고 그 대미지를 피해 가질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릴 때가 많다. 더욱이 나에게 발등을 찍었던 그 친구가 내뱉은 한 문장은 지금까지 여전히 나의 화를 돋우게 한다.  




2014년 유럽의 한 국가에서 법인장으로 재직 시, ...




...


영혼을 집에 두고 다닌다? 모든 말과 행동에 영혼이 없었다는 말은 진정성 없이 지금껏 일을 하고 사람을 대해왔다는 말이 아닌가! 아~ 영혼도 필요에 따라 두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회사생활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선 영혼 없는 행동도 했다고. 때에 따라서는 배신도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결정이라 생각했다고. 그리고 어느 상사가 되었던 이런 자세로 임했다는 것 아닌가?   


그의 한마디 대답은 해머로 머리를 가격 한 듯했고, 정신을 혼미하게 했으며 온몸의 힘을 빼버려 중심을 잡을 수 없게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혔고 그 충격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그러나 동시에 '나뭇잎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이도저도 아닌 것들이 전체를 더럽히니 그 나뭇잎 때문에 한탄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 사이로 바스락 소리를 내는 바람을 일으켜라. 나뭇잎 사이로 바람을 불어넣어라. 말라버린 모든 것이 그대에게서 보다 빨리 떨어져 나가도록 하라!(주 3)' 오히려 잘됐다!    

  

믿은 내가 바보였다고 제 아무리 하소연해도 발등 제대로 찍힌 나는 조직생활에 대한 회의도,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 법인으로 이동하면서 승진누락을 당하기도 했다. 구질구질 탓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상대에 대한 탓과 핑계는 거둬두었다. 길 잃을 양은 내가 벌할 필요가 없다. 길 잃은 자체가 이미 그에게 벌이니 말이다.  




조직도 사람이 모여 이뤄진 집단이다. 따라서, 사람의 이치, 세상 돌아가는 원리대로 조직도 돌아가게 되어 있다. 당장에 혼자 살아남고 당장에 이익처럼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그림자는 빛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기에 나는 이 사태를 통해 내가 무엇에 아둔했는지를 깨닫는 것에 집중했다. 


'체계란 거미처럼 비사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일정한 체계를 통해 그 같은 거미줄을 쳐놓은 당사자뿐이다. 거미가 거미에게 다가가는 것은 투쟁을 위해서(주 4)'인데 이를 간과했던 나의 어설픈 믿음과 신뢰, 어쩌면 그는 영특했고 나는 아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란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기쁜 일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순록이나 큰 사슴을 만나는 일과 같았으면 좋겠다.(주 5)' 그렇게 내게 사람은 기쁨과 진심이길 바란다.



주 1> 키에르케고르선집, 키에르케고르, 집문당

주 2>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 세네카,   동서문화사

주 3>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책세상

주 4> 쇼펜하우어 철학에세이, 쇼펜하우어, 지훈 

주 5>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비드소로우,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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