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절반을 글로벌 비즈니스에 몸담았습니다. 지난 30여 년 경험과 구력이 해외 비즈니스를 계획하거나 도모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찬찬히 그간의 경험, 실용적인 얘기를 풀어내봅니다. 본 글은 9월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I. 글로벌 비즈니스의 먹이사슬에 대해 : 1편
생태계에는 먹이사슬(food chain)이 존재한다. 먹고 먹히는 관계. 1차 생산자부터 최상위육식자(top predator)까지 나름의 선형적인 연쇄고리로 이어져 거대 생태계가 움직이며 진화한다. 먹이사슬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를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잔인과 포악과 수많은 난폭함으로 보이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생존'이 기본인 생태계에서의 배려와 희생은 죽음, 더 나아가 멸종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비즈니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경쟁과 타협, 비리와 배신, 자원과 자본,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비선형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는 진화한다. 각 국가별, 기업별, 업종별로 먹이사슬은 구조화되어 있다. 미국, 중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CIS(주 1),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이 모든 대륙의 최상위포식자는 어느 나라일까? 그리고 우리 한국은 어디에 위치할까? 이러한 먹이사슬에 의해 글로벌 생태계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 사회적 관습, 기업의 관행, 음주문화, 사업가의 마인드 등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살펴보자. 물론 이론화되어 있지도 않고 이 질서를 위배하고 역행하는 천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해외비즈니스 30년 경험을 토대로 볼 때 분명 먹이사슬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비즈니스에 맞춰 대륙을 구분 지어 보자면, 북미, 중남미, 유럽, 호주를 포함한 동남아, 인도를 포함한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 CIS, 중국, 한국과 일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가운데 거대 먹이사슬의 3대 축은 북미, 유럽, 중국이다. 북미대륙을 정점으로 한 중국, 동남아, 유럽, 서남아, 한국과 일본, 중남미가, 유럽을 정점으로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한국, 일본이, 중국을 정점으로 유럽, 동남아, CIS, 인도, 한국, 일본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먹이사슬의 기준은 시장의 규모와 바잉파워(주 2),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경제적 규모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관계이다. 가령, 중국은 북미의 견제에 따라 먹이사슬의 위치가 흔들리기도 하고 반면, 북미는 중국이 견제를 강화하면 할수록 더 강한 먹이사슬의 정점을 다진다. 또한, 북미와 중국이 상호 호혜적인 경우 전 세계 비즈니스 먹이사슬은 더 선명하게 정리가 되기도 한다. 북미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CIS와 유럽의 경우도 북미와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글로벌비즈니스 먹이사슬의 최정점은 북미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 또는 기업가가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상위포식자에는 어떤 나라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 우선 한국과 미국 간의 비즈니스를 보자. 사실 시장의 규모나 의존도, 두 나라 간의 역학적인 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이 한국보다 상위에 있다는 답은 내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가장 많이 팔 수 있는 시장이 미국시장이다. 그러니 여러 나라가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줄 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 한국의 경제구조는 미국과의 비즈니스 상관관계를 단순화시켜 미국시장이 원하는 최적의 조건, 그러니까 고품질,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맞춰 상품을 공급하고, 대신 양으로 사업규모를 키워 이익을 확보하는 구조로 한국은 먹이사슬의 최정점인 미국시장에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 동일한 제품이라도 미국시장 가격이 한국시장 가격보다 저렴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기업 또는 기업가가 미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 환경을 제공받는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더라도 양으로 승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별 먹이사슬 얘기를 할 때 좋은 예가 되는 국가가 의외로 먹이사슬의 강점을 가진 투르키에 (주 3)와 전통의 큰 시장 중국이다. 먼저 한국과 터키의 관계를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터키, 특히 이스탄불은 동서양을 잇는 교역의 도시였다. 아시아의 일본, 중국으로부터 유럽의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까지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 자리하며 오랜 시간 축적된 상거래 기술과 경험이 농축되어 있다. 특히 한국과는 터키의 교과서에도 소개된 바대로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이며 한국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터키의 오래된 상업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터키와의 거래에는 '상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단어가 주는 느낌처럼 뭔가 개운치 않다. 실제 터키 상인들과 거래할 때마다 받는 느낌은 이들의 상술에 당한 것도 같고 왠지 잘해주는 데도 속는 기분이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터키와 사업하며 필자가 경험한 사실에 근거하여 터기의 상술을 조금 읊어보자면, 처음 터키기업과 사업을 시작할 때는 '피를 나눈 형제'와 다름없이 모든 것을 내어줄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한다. 집으로 초대하여 만찬도 베풀어주고 자신들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사업에 있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신뢰를 쌓았다고 만족하는 순간, 이들의 검은 속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고 터키 기업의 역할이 명확해지면 이들은 절대적으로 사업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장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건건이 시비를 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응당 해야 할 절차상의 의무를 미루면서 속을 태우게 하고 이런 면은 생산법인, 판매법인, 디스트리뷰터(주 4, Distributor, 이하 디스티) 구조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유사하게 드러난다.
특히 디스티와의 계약서는 종종 문제를 발생시킨다. 한국 기업이 법인영업으로 전환할 때, 이들은 계약서에 서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판매권을 넘겨주지도 않을뿐더러 당초 합의된 권리금을 지불한다 해도 양도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 관계를 틀 때 소개했던 모든 인맥을 동원시켜 소송을 진행하면서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영국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때 계약에 의해 주저 없이 반환했다. 계약이란 그런 것이다.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지켜야 할 기준과 룰이 담긴 것이 계약이며 계약을 따르는 것은 국내든 국제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당연한 처사인데 터키 디스티 거래선에게는 국제관행이라든가 계약이행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고 무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대로 처리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들 디스티의 무모하면서도 황당한 요구는 법의 판결에도 굴복하지 않고 상급 법원에 항소하면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사업에 대미지를 입힌다. 의도적으로 그리 하는 것이다. 상급법원에서 동일한 판결이 나면 조폭으로 돌변하여 법인의 직원, 주재원에 대한 협박과 물리적 공격까지 감행한다. 이러한 과정이 관행처럼 지배적인 나라가 터키이기에 터키에서는 거래가 깔끔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이 사슬에서 강점을 가진 터키가 주도권을 잡고 있으면 엮여 있는 나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억울한 피지배자의 처지를 감당해야 한다.
2편, 3편은 계속 이어집니다.
*** 본 내용은 투르키에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두고자 한다. 터키에서 비즈니스 할 때 어려운 점들이 있기에 그 부분에 대해 공유하여 터키 진출을 계획하는 기업들이 탄탄히 준비함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필자는 터키에서 오래 살았기에 감성적으로 무척 교감이 된다. 역사가 있고 제국의 기운이 있고, 한국 전쟁 시 자발적인 참전으로 도왔던 나라이기에 좋아한다. ***
주 1) 독립 국가 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1991년까지 소련 연방의 일원이던 독립 국가들
주 2) Buying Power :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업의 구매력
주 3) 투르키에 (Turkiye) : 당초 국명이 터키(Turkey)였으나, 이름을 2022년 Turkiye로 변경함
주 4) 한국법인이 터키에 진출할 때 초기에는 터키의 디스티를 통해 제품 판매를 하다가 매출 규모가 커지면 법인이 진출하여 한국기업이 직접 영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염두에 두고 디스티 거래를 시작할 때, 나중에 법인 영업을 하게 될 때는 모든 거래선 및 판매 내력을 넘겨야 함을 계약서에 작성한다. 사업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디스티도 나중을 생각하기보다는 당장의 사업 시작이 중요하기에 계약서 내용에 대해 대부분 동의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