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노아 Dec 28. 2023

단순한 하루살이가 되어야겠다!

퇴직자가 아니다. 새 인생의 개척자이다.

나란 사람.. 참 둔하다. 아내가 뭐라뭐라 잔소리하는 와중에도 머리만 닿으면 자는, 그리고 10시에 자면 6시까지는 세상 모르고 자는, 흔한 표현대로 '업어가도 모를'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왤까? 벌써 5달째 나에게는 잠이 짐이 되었다. 3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깨기 일쑤이며 누워도 여러가지 잡생각이 내 잠을 방해한다. 



니체(주)는 '잠을 잔다는 것'이 결코 하잘것 없는 기술이 아니라며 단잠을 자기 위해 깨어있으라 한다. 낮동안 열번 자기를 극복하고 화해하고 진리를 찾아 유쾌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밤이, 잠이 자신을 괴롭힐 거라고. 내가 그런 상태였다. 낮에 고민이, 잡념이 많아 진정 깨어있지 못했고 잠이 내게 오는 것을 내가 막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밤 깊은 시간에는 생각, 특히 잡생각은 피하는게 좋다는 의견들이 많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라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주체가 아닌 것이다. 갑자기, 불현듯, 느닷없이 출몰하는 것이 '생각'의 정체이기에 내 통제 밖에서 나에게 진입 내지 침입하는 존재다. 이렇게 생각에 내 정신이 저당 잡힌 듯하다. 온 세포가 잠식당한 듯 분명 신체와 정신이 잠을 원하는데도 온갖 생각으로 인해 잠을 설친다. 생각이란 이 놈.. 생각보다 강하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마음만 급하다. 왜 이리 시간만 빨리 가지? 오랜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복귀하는데 준비가 안되어 있다. 연말에 은퇴하면 당장 뭘 하지? 일을 안하면 답답할 터인데.. 앞으로 40년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나는 준비가 잘되어 있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걱정'이자 '불안'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내가 지배당한 느낌이다. 지금껏 나는 나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다 여겼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는데 나는 지금 무언가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이 날 지배 했나? 이를 떨치기 위해 나는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사실, 정해진 일정대로 묵묵히 살아온 지 35년. 딱히 내게 '루틴'이라는 흔한 단어가 별로 필요치 않았다. 새벽 6시 일어나면 운동하고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한다. 그리고 저녁엔 술자리에 참석하고 집에 가서 아내와 얘기하다가 잠자리에 든다. 주말엔 골프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이다.  




이런 내가 생각이란 놈에 지배당한다는 느낌으로 잠까지 설쳐 대니 나는 강제로 부정의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는 내 정신을 강하게 잡아줄 엄격한 루틴이 필요하다. 물론, 매일 실패하곤 있지만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분명 다르기에, 실패가 있더라도 '못해내는' 것을 극복하면 될 것이기에 안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6시 기상, 아침/저녁기도, 아침 운동 (40분), 아침독서 (30분), 명언 공부, 점심 후 걷기(40분), 2시간 글쓰기, 30분 확언 듣기, 저녁 책 읽기(30분)



누군가에겐 아주 쉬운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렇게 나를 다져가는 것이 생각이란 존재에게 관심 갖지 않도록 내 정신을 훈련시켜주는 것이다. 가장 높은 강도의 의지가 필요한 것은 아침운동이다. 


터키에서 근무하던 2018년부터 이어온 운동이니 꽤 오랜 기간이 되었다. Emre라는 29세 터키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는데 모스크바에서는 매주 줌으로 진행하고 있다. 터키 근무 시절에는 사무실 지하층에 MacFit이라는Gym에서 매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가량 운동을 했다. 러닝 머신 15분, 40분 스쿼트, 마무리 스트레칭5분, 1주 2번은 강사와, 5일은 혼자 운동 루틴을 유지했다.   모스크바로 근무지를 옮긴 후에는 운동시간을 아침으로 옮겨,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씩 PT와 개인 운동 사이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루틴을 제대로 하기로 맘먹고부터 사실 몸은 좀 고되지만 나에게 이런 고됨을 강제로 부여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숨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가 커지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물론, 나의 천성적인 나약함으로 인해 운동 전과 후 마음 상태가 슬그머니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없이 되는 일이 무엇이 있으랴 싶은 생각에 점점 운동을 강제화 시킨다. 성공한 사람들이 얘기하는 '즐기며 하라'는 말이 나와는 아직 거리가 먼 얘기다. 즐기기는 커녕 아직도 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는 나는 정말 나약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니 말이다.



운동시간이 가까워올수록 나는 정신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해야한다'라는 의무감과 부담감이 엄습하고 결심한대로 핑계뒤로 숨지는 않지만 영혼없이 운동을 시작한다. 땀이 쏟아지면 잠시 희열을 느껴지다가도 남은 운동을 떠올리면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 같아 당장 멈추고 싶은 충동이 인다. 단지 1시간 하는 운동인 데도 매일 이런 나약함이 날 강타한다. 욕구, 이성, 감성이 범벅되다가 운동이 끝나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면 “그래도 했다”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성취감인지 나를 향한 기특함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이 맛에 또 내일도 운동을 하겠지 싶기도 하다. 



산만하고 혼란한 정신은 신체로 다스리라 했던가. 나는 나를 다스리는 중이다. 그래서 운동을 멈출 수가 없다. 근무지를 터키에서 모스크바로 옮긴 후 추가한 루틴은 점심식사 후 40분 걷는 것이다. 경보 루터 코스는 모스크바의 Patriarch’s pond 근처의 Malaya Bronnaya 거리인데 핫하고 트렌디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에너지가 넘치고 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신체를 운동으로 단련하는 것과 병행해서 나는 정신을 다스려야 함을 느낀다. 그래서, 4개월 전부터 다시 성당에 나가고 있다. 영적 성장은 나의 삶의 진화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생각에 침범 당한 것이 어쩌면 영적인 농도가 다소 흐려졌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일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인으로서 지속적으로 성당을 다녔었는데 지난 35년간 나는 냉담했다. 모든 교리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고 옥죄고 있다는 구속감 때문이었다. 이러했던 내가 다시 내 마음이 힘들다고 신앞에 나를 청하는 것이 왠지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죄책감도 든다. 그렇지만 신이시기에 나의 모자람까지 모두 거둬 주시지 않을까 싶은 포용력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나의 루틴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앞으로 이어진 제 2의 인생은 '나'답게, '나'여야 하는 삶을 원한다. 이를 위해 나의 정신을 무장시키는 것은 필수라 여겨 행동강령과도 같이 루틴을 만들었다. 

독서와 글쓰기, 명언, 확언명상등의 루틴은 이러한 나의 절실함이 반영된 것이다. 미숙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무서운 관성에게 당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자책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살면서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insanity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은 너무나 분명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신체를 운동으로, 정신을 종교에 의지해 다스린다면 이제 감정루틴을 추가할 차례다. 그래서 며칠 전 나는 새로운 루틴 하나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탓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다. 루틴을 하면서 루틴의 헛점이 보인다. 왜 내가 자꾸만 미루거나 포기하려 하거나 귀찮아하는 걸까? 정말 집중을 못해서일까? 정말 일이 바빠서일까? 정말 의지가 나약해서일까? 정말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습관이란 것은 변화를 전제한다. 변화는 좌충우돌, 시행착오의 과정없이 불가능하다. 한번에 짠!하고 변화되는 것은 굳이 루틴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루틴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존의 관성을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의지란 간절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결국 내 정신과 가슴에 '무엇을 위해'라는 간절함의 부족, 회피가 원인인 것이지 일이나 시간, 의지의 나약함이 근본원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즈음에 다시 나를 들여다본다. 내 삶은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는지, 그렇게 뚜벅뚜벅 걸으면 그 길의 끝에 닿음을 믿고 있는지, 그 길이 과연 진정 나로서 사는 길인지, 그렇다면 못해낼 이유가 무엇인지. 나의 욕구와 간절함이 커질수록 나의 정신도, 나의 육체 곳곳에도 근육이 붙을 것이다. 지금 루틴은 그 근육을 키우는 중이니 과정에서 자책은 금지하기로 하는 게 낫겠다. 



루틴을 세팅한 것은 나의 욕구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욕구는 '원하는 나'인 것이며 이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의지는 관성과 싸우는 것이다. 루틴들을 제대로 실행한 날이 드물지만 이에 대해 어떤 핑계도, 무엇을 탓하지도 않기로 했다. 단 하나 핑계를 댄다면 나의 간절함이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루틴을 실행하다 보면 나는 더 맑아진 영혼, 더 강해진 이성, 더 날뛰지 않는 감정으로 나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나를 다져본다. 자신을 위해 최소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했으니 의지와 근성이 나와 싸우지 않고 휴전하기로, 자책과 좌절 역시 하지 않기로, 대신 행동의 강도와 양을 늘이기 위해 더 큰 시선으로 나를 고정시키기로, 더 먼 시야에서 나를 이끌어갈 존재의 힘을 믿기로.. 그렇게 이치와 순리를 따르면 될 일이다. 단순한 하루살이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의 양이 쌓이면 분명 나는 변화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35년의 퇴직을 앞둔 중년으로서, 


새로운 일상의 루틴으로 나를 다시 단순화시킬 것이다. 


나는 퇴직자가 아니다. 새로운 인생의 개척자다. 



(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