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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18. 2024

백수가 과로사하는 이유는 ?

도전자들의 얘기 1


며칠 전, 폭설인 날, 나는 이태리식당에 있었다. 외국에서 온 나를 환영해 주기 위해 동기들이 집합되었고 토종국밥을 선호하는 이들이었지만 이 날은 날 위해 이태리식당으로 모인 것이다! 4일 만에 보는 친구도, 20년 만에 보는 친구도 있지만 언제 봤냐는 것은 상관없다. 여전히 최고 경영자 레벨급의 수준 있는 절친들이지만 마치 예비군훈련 가면 똑같은 아저씨들끼리 빵 가지고 시기 질투하듯 우리는 입사 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 우리가 만나서 하는 얘기가 병 얘기 밖에는 없네, 하하하 ”



실제 그랬다. 이 얘기하다가도 건강얘기로, 저 얘기하다가도 건강얘기로. 나이 때문인지 실제 얼굴이 변한 몇몇 동기 때문인지 계속 건강 쪽으로만 대화가 이어졌다. 누구는 탁구를 치다가 발목 인대를 다쳐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 하고 또 다른 누구는 근골격문제와 오십견이 겹쳐 상당기간 고생 중이라 하고 또 누구는 오른쪽 팔꿈치에 엘보가 왔다고 하고...



그러다가 우리에 비해 다소 일찍 퇴직을 한 나성이라는 동기 녀석이 갑자기 과로사얘기를 꺼냈다. 아성이는 사업할 생각도, 재취업할 생각도 없는 자발적 백수생활을 지금 몇 년째 이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과로사'라니. 의외였다. 지난달 퇴직 후 한국에 온 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모순된 '백수의 과로사'를 깨닫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곧 나에게 닥칠 인생의 계획인가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나는 절대 저렇게 나이 들어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했고.




간략히 말하면 이런 것이다. 사실 고위급 퇴직자들은 경제적인 나름의 안도감을 지니고 있어서 제2의 인생에 대한 도전에 썩 적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매일매일 산을 오를 수도, 골프를 칠수도, 딱히 할일없이 다람쥐쳇바퀴 돌듯하는 삶에 지치면서도 더 바쁘게 자신을 몰아간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1. 해외 일정


- 매월 골프 투워  4박 5일 : 최근 일본 투어가 비용이 제일 적게 든다

- 분기별 문화 탐방 6박 7일 : 5~6명 규모로 팀이 짜여 세계 곳곳의 문화 명소를 방문한다

- 한 달 살기 : 동남아 국가 중심으로 두 커플 혹은 부부가 실행한다


2. 국내 일정


- PGA 프로그램 : 평일 골프 어소시에션으로 1주일에 2번 ~ 4번 나간다

- 점심 프로그램 : 속해 있는 소모임에서 월 1회 진행한다

- 저녁 프로그램 : 속해 있는 소모임애서 격월 1회 진행한다

- 문화 코스 탐방 : 속해 있는 소모임에서 월 1회 진행한다

- 와인 테스팅 프로그램 : 와인 모임에서 월 1회 진행한다

- 교육 프로그램 : 개인별로 선택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석한다

- 벙개 프로그램 : 눈, 비가 올 때, 낙엽이 질 때, 여름 더운 밤에 벙개가 소집된다


3. 특수 일정


- 석사 학위 과정 : 퇴임자 일부는 석사 학위 과정에 참석한다

- 박사 학위 과정 : 퇴임자 일부는 박사 학위 과정에 참석한다


4. 수시 일정


- 경조사 : 수시로 발생하는 경조사에 의무감을 가지고 참석한다




여기에 개별 모임의 종류를 들여다보면 이 또한 창의적이다. 임원으로 퇴임한 경우의 대다수는 조직장, 법인장, 지역 총수 등을 맡았기에 이끌었던 조직 중심, 소속이 되었던 조직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진다.


- xx법인 모임 : 미국 법인 모임(법인장별 주관), 영국 법인 모임 등

- xx 팀 모임 : 예, 가전 마케팅 모임, 리테일 모임, 백색 개발실 모임 등등

- 임원 모임

- 경영자 모임

- 해외영업 모임

- 가전 세일즈 & 마케팅 모임

- 가전 제조팀 모임

- 국내 판매 총괄 모임 등



물론 이런 예가 전체를 결코 대변할 수는 없지만 개연성에서 배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 이 많은 모임이 만들어져 있고 또 새롭게 계속 만들어지면서 한 달, 분기, 격달, 반기, 엄청난 스케줄인 것이다. 사실 나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가전사업, 통신사업, 판매/마케팅, 6개 법인, 3대 지역, 지역 총수, 임원, 고문, 경영자 등을 역임했기에 참석해야 할 모임과 내가 만들 모임들을 고려하면 아. 일할 때보다 더 바빠질 듯하기도 하다.


 

모임의 명분은 그럴싸하다. 오랜 기간 조직에서 생활하게 되면 회사를 벗어나서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는 얘기 주제, 내용, 톤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동창회에 가면 나누는 대화가 어색하고 그 대화의 주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임 후에도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와 내용이 같은 퇴임자들과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모임이 이렇게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하는 순간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된다. 월간 점심, 저녁 모임에는 빠질 수 있지만 해외일정, PGA 일정의 경우는 빠지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고 그 대체된 사람이 다음 일정 잡을 때 참여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멤버 교체가 일어난다. 그러니 모임에서 빠지는 것이 부담스럽고 찝찝해진다. 모임은 이렇게 일정 기간 동안 계속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참석해야 할 모임이 많은 것이다.  



거의 1주일에 5~6일은 모임의 연속이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나의 생각을 여실 없이 표현해 봤다.



“ 야들아, 새로운 것 배워 볼래? 배워서 지식 창업 한번 해보자! “ 독서도 같이하고, 글쓰기도 배우고, 책도 출간해서... 우리가 세계적으로 경험한 거... 아깝잖아. 그걸로 강의지식 만들고! MZ세대들에게 풀어보자! 교육 Platform 어때? 의미 있고 좋지 않을까? 우리 같은 고급인력이 말이야! 그냥 이렇게 나이 들지 말고 말이야!.”



순간 모임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자, 백수의 과로사가 옳은 길일까?

일을 찾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게 옳은 길일까?



==> 다음 편에 나의 느닷없는 제안에 대한 모임분위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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