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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04. 2024

35년의 문을 닫고,  35년의 문을 열다!    

- 퇴임을 앞둔 마음과 준비


“여보, 왜 이리도 마음이 불편할까? “


선잠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일어나 벌써 아침 루틴을 시작하는 아내에게 던진 말이다. 사실, 이 마음 상태는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눈을 뜨면서 느낀 것이 아니다. 최근에 자면서, 일하면서, 식사하면서도 부쩍 많이 느끼는 감정상 태이다. 머리가 무겁고 안개가 자욱한 그러한 느낌… 모스크바에서 8월은 아름다움과 화창함이 절정에 이르는데 내 마음은 어둡고 춥고 매서운 12월이다.



왤까? 감정이란 느닷없이 나에게 찾아와 나를 꼼짝 못 하게 메어 놓는다. 감정도 내 인생에서 할 일이 있어서 내게로 온다는데 불편한 이 감정은 도대체 이 시기에 나에게 무엇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 온 것일까?



나의 한마디를 들은 아내는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빗다 말고 주춤하는 것 같다. 그리곤 뭔가 얘기를 하려다 만다. 아내는 최근 근심이 많아 보이고 불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불안과 불편함을 아내는 느낄 것이다. 여성이 훨씬 더 감정적으로 민감한 것도 있겠지만 감정이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에너지로 전해지는 것이니 느끼지 못할 아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침묵으로 날 지켜 봐주는 아내가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한 켠으로 그냥 물어봐 주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라도 할 텐데 딱히 묻지도 않는 아내에게 섭섭하기도 했었다.



아내는 내게 뭔가 얘기를 하려다 매번 참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나의 한마디에 불쑥 한마디를 내뱉는다.



“당신 수고한 거야. 나도 아쉬움이 많은데 당신은 오죽 더 하겠어. 불안해할 필요 없어. 찬찬히 받아들이고 다음을 생각하고 준비하면 돼”





나는 곧 35년의 여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청춘을 모두 바쳤던 여정이었다.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한국의 한 대기업과 함께 한 35년의 회사 생활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음이 허전한 것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아리기까지 한다. 대학졸업 후에 군 복무를 장교로 마치고 입사하여 오늘까지 35년이다. 참으로 긴 시간을 오로지 한 길만 걸었다. 해외영업을 지원하여 줄곧 해외영업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했고 해외영업 전문가로서 성장했다. 독일에서 주재원을 시작하여 헝가리, 그리스, 이태리, 터키, 러시아, 까작, 우즈베크,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 10여 개국에서 법인의 대표, 경영자로서 해당 국가에서의 전자 사업을 이끌었다. 35년 여정에서 20년을 해외 10개국에서 열정을 불태운 것이다.



35년.. 지나간 시간은 누구에게나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여전히 나는 30대의 청춘인 듯 젊고 열정이 넘치고 아직도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나의 이상과 현실의 시계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갭에 나의 마음 상태가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듯 체념하다가도 시원하고 머뭇 거리 다가도 맘이 급해진다. 여러 줄기로 자신을 드러낸다. 헌신도, 좌절도, 성취도 많았는데 현실은 나에게 선택을 주지 않는다. 그저 나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  



온통 나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 때문인지 꿈에서도 나는 이 생각뿐이다. 몇 번의 꿈에서는 이미 최고 경영진으로 취임하여 더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오죽 마음이 떠나기 싫으면 희망사항의 시나리오가 있는 이런 내용의 꿈을 꿀까? 이런 꿈을 꾼 뒤 깨어날 때면 마음은 더 어수선해진다. 그러면 냉수 한잔을 들이켜고 컴컴한 거실 소파에 한참을 앉아 허전한 마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젊은 친구들 말대로 나는 회사에 뼈를 묻으려 하나 회사는 내 뼈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의 주인이 아닌 이상 반드시 나의 떠날 날은 온다. 그러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져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분명 쿨하게 받아들이고 멋있게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란 사람은 감정보다는 이성이, 이상보다는 현실이 훨씬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이면이 존재하듯 이러한 '쿨'한 이면에는 같은 크기의 마음 상태가 위로를 기다리며 맞붙어 있는 것이다.  





다가올 현실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자고 얘기를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떠나야 한다면 아쉬움, 허전함을 클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단지 닥쳤을 때 스스로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마음을 다지고 있는 것이고 마음 다짐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아니, 어쩌면 마음가짐이나 감정을 너머 서서 인간 자체로서의 나를 돌아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시점이 위기의 순간이라 한다. 감정은 내가 자각하길 바라기 때문에 내 안에서 그리도 크게 외치는 것이다. 지금 이러한 마음 상태가 나에게 알려주려는 본질을 무엇일까?



떠나야 하는 현실에서 남기려 하는 것은 무엇이며

마음을 비워야 하는 현실에서 마음을 두어야 할 곳은 어디이며

문을 닫아야 하는 시점에서 다시 열어야 할 문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나는 나의 인생 전체에서 지금 이 시점을 바라보려 한다.



단지 퇴임에 대한 허전하고 아쉬운 감정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이 전해주려는 의도와 지금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이 알려주려는 미래를 과감하게 보려 한다. 아침에 상쾌하게 눈뜨지 못하는 이유는 '퇴임'때문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 전이되는 시점에서의 갭 때문인 것이다.



나는 이 갭을 메우는 첫 시작을 '글'로 해보려 한다.

나의 지난 35년의 성취와 열정, 성공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분명 이 작업은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다가 올 35년의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나의 경험이 쓰일 곳이 많을 것이다. 나의 지난 35년의 서사가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일 것이다. 이유 없이 지나간 경험은 없다. 반드시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끝은 시작과 맞물려 있으며 끝과 시작사이 연결점에 나는 서 있다. 지금 나는 '퇴임'의 끝과 '새로운 창조'라는 시작 사이에 서 있기에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세상을 향해 당당해도 되는 것이다. 



이제 다음 35년의 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미 새로운 기회를 봤다.
실행할 것들이 많기에 가슴이 뛰고 흥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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