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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25. 2024

거미처럼 살래? 개미처럼 살래? :서로 다른 세계관

도전자들의 얘기 II

“가장 부지런한 곤충이 뭔지 알아?”


20년 만에 해외법인장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입사 동기들을 만나 꼰대들의 대표음식, 복요리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가성비최고라 불리는 M카페로 이동했다. 강남사거리라서 그런지 젊은 친구들의 밝은 분위기 사이로 중년남성 네 명이 들어서니 금세 주변이 칙칙해지는 이 느낌은 뭔지... 마음속의 이상한 미안함으로 구석자리를 차고앉아서 대뜸 내가 던진 질문이다.

가장 부지런한 곤충이 뭐냐고?

한 친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개미잖아. 이 자식아' 한다.

옳거니 걸렸구나!

나는 대뜸 '아니거든. 거미거든.'이라 말하며 나만의 썰을 풀어냈다.


개미와 거미는 무척 부지런하다. 그러나 둘의 세계관은 너무나 다르다. 개미는 2차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면 거미는 3차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평면적으로 보는 것과 입체적으로 보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친구들도 인지하고 있기에 개미 vs 거미 세계관의 차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개미는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정해진 루터, 과제, 일정, 목표가 있고 여왕개미를 위해 일한다는 목적도 주어졌다. 일생 동안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왕개미가 있는 집으로 가야 한다. 아무런 변화에 대한 자각과 시도 없이..


반면, 거미는 자기 세상을 거미줄로 펼친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꽃잎을 타고 날아가 기초 공사를 하고 그 위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든다.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고 자기 세상_거미줄을 만드는가? 자기가 만든 그 세계에서 내려다보며 체스를 둔다. 기다리고 있으면 예상한 대로 먹잇감이 알아서 찾아와 준다. 심지어 혼자 바람 타고 날아가 첫 거미의 줄을 만들 자신이 없는 거미도 기생하기 시작한다.  자고 나면 먹거리가 또 걸려있어 즐겁고, 약한 거미에게 자신의 삶을 나누니 더 즐겁고.. 그렇게 즐기는 것이다. 지루하면 그 세상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또 다른 세상을 펼쳐도 그만이다.

거미는 요즘 얘기하는 부를 자동화시켜 놓고, 삶을 내려다보고 즐기는 것을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미와 거미.

나의 지론에 친구들의 눈빛이 집중된다.


“개미는 여왕개미를 위한다는 목적이 있고 거미는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목적이 있다 생각해."


여세를 몰아 두 개의 다른 세계관 얘기를 이어 간다.

그런데 불쑥 동기 한 명이 다른 얘기로 끼어든다


“야, 갑자기 웬 곤충이며 목적, 목표 얘기야. 목적, 목표는 우리가 30년 동안 늘 달고 살았는데 이제 좀 잊자.”


왜 거미와 개미 애기를 끄집어내었는지 이해를 했으면서도 동기 진석은 대구사투리, 그것도 짜증 난 대구사투리를 쓰며 화제를 딴 곳으로 옮기려 한다.

내가 질 것 같은가? 지금은 내게 유리한 패다. 20년을 해외에 있다가 이렇게 모인 이유가 나를 위해서니까 내게 유리한 판이다.

“야들아, 우린 개미일까? 거미일까?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안다. 이런 질문이 다소 철학적이고 재미도 없다는 것을.

그냥 다음에 만나서 뭐 먹을까? 어디로 여행 갈까? 골프는 언제 할까? 그런 대화로 허허허 웃으면 그냥 좋은 만남이 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나도 날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퇴임 1달째인 나는 이렇게 나의 나이 듦을 가볍게 여기기 싫은 본능이 발동하나 보다.  


카페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살짝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감정은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을 야기한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개미와 거미얘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지금의 나의 위치와 처지, 그리고 나의 기대와 삶에 대해 오랜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감정이 가장 우선이었다.


모두가 34년, 35년을 한 직장에서 일한 동기들이다. 비유를 하자면 개미에 가깝다. 회사라는 여왕개미를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노동적 근면성으로 일한 것이다. 성과가 좋으면 보상받는 것에 만족하며 정해진 틀에서 전후좌우만 살피며 평면적인 시각으로 일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단한 노력의 목적은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재해석하면서..  


컨트롤관점에서 보면 이렇다. 내가 직원들을 컨트롤했지만 나 또한 피컨트롤자였다. 나의 보스, 회사, 혹은 오너에 의해 내가 컨트롤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개미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물론 이 세계에서도 성취,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 성공이라는 정의는 누가 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내가 주도적으로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미의 일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내가 컨트롤할 사람이 없고 나를 컨트롤할 상대가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우왕좌왕, 혼란, 내면갈등, 우울에 빠지거나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뇌아처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혹여 내가 컨트롤당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닌가?

내가 나를 컨트롤할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 야들아, 이제 우리가 우리를 컨트롤해야 한다. 누구를, 누구에 의한 컨트롤이 아니고 내가 나를 컨트롤해야 안 되겠나? “ 개미 생활을 할 만큼 했으니 그 보상으로 쉬어도 되지만, 거미 같은 생활도 해 봐야 안 되겠나?”

 

내 질문에 동기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봤다. 분명히 봤다. 바란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의지를 스스로 덮어버리는 듯했다. 현실성 없는 얘기라고, 지금 당장 절실한 게 아니라고, 그냥 편하게 살란다고 등으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35년, 근면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별 보고 출근하여 별 보고 퇴근했다. 회사가 배정해 준 나라로 온 가족을 데리고 그렇게 명을 받들었다.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마치 정치판과 같은 그곳에서 나는 성장했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나의 근면, 성실과 일에 대한 책임이 나를 이 자리까지 앉혔다. 고민도, 갈등도, 어려움도, 시련도, 괴로움도 많았다. 물론 즐거움, 재미, 흥겨움, 성취, 성공, 보상, 경험 등도 넘쳤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자산'으로 보려는 나의 관점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내 자산이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적자산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업'은 존재하고 그 속에 '거래'는 이뤄진다. 나의 회사에서의 성공비결이 비록 개미같이 일해서 얻은 자산이지만 소중한 것이고 쓰임이 있어야 하는 가치여야 한다. 시대와 무관하게, 아니 수천 년 전부터 상인이 존재했던 그 시절부터 이 가치들은 항상 숭고했다.  


그래서 개미같이 일해서 얻은 가치들을 이제는 거미같이 일해서 후배들에게 잘 전달해 보자는 생각이다.


나는 할 일을 정했다. 3년 뒤에 500여 명의 후배들 앞에 서서 내가 적은 3권의 책을 보여주고 내 경험을 목청껏 얘기할 것이다. 35년의 해외현장에서 경험한 비즈니스와 퇴임 후 3년간 준비한 지식 콘텐츠를 후배들을 위해 활용하고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독서와 글쓰기 공부, 새로운 Tech도 배울 것이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3년 뒤 이런 뉴스를 보게 될 것이다.


“대기업 출신 경영자 김창업 씨, 연이은 온라인 플랫폼 성공으로 젊은 창업자들에는 열린 기회를 제공하고, 퇴직자들에게는 도전의 다양한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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