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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Feb 08. 2024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세대,
그러나 다른 두팀

by 도전자들의 얘기 IV

최근, 우리가 120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60년 동안의 치열했던 삶을 한 번 더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한 두려움도 공유했다. 오늘은 이 12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같은 세대, 그러나 다른 두 팀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우리가 같이 생각해야 할 부분을 얘기하고자 한다.  



판교 Tech 1 건물의 한 중국 식당에서 친구들과의 중식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갔다. 이 지역의 특성이 그런지 모든 테이블에는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활기찬 분위기와 대화 소리로 분주했고 주변의 소음이 높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입사 동기들이라, 조금은 변했을 거라 일견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흰머리 가득, 머리숱은 송송, 차림은 꼰대 스타일 콤비 재킷에 카디건 셔츠,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들을 코너 테이블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약 10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고, 나머지 두 사람과도 오랜만의 재회였기에 모두 반가웠다. 이렇게 넷이서 중식을 함께 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만난 현우, 현재 부사장 직을 맡고 있는 그는 머리가 온통 흰머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보며 "얼굴이 그대로네. 아니, 더 젊어 보인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상투적인 칭찬인지는 몰라도,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 모임에서 유일하게 아직 현직에 있는 현우에게, 우리는 머리를 염색하라거나 이마의 주름을 펴야 한다는 등, 퇴임 자들의 부러움이 담긴 직설적인 농담을 건넸다. 아마도 퇴임한 우리의 얼굴은 윤기가 나는 반면, 현우의 얼굴은 다소 건조해 보였을 것이다. 현우 역시 우리에 대해 반대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점심의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그간의 시간들에 대해 여러 얘기들이 오고 갔다. 대학시절, 군대 시절, 입사 시절, 신입사원 시절, 그리고 임원시절까지 과거의 행적들을 스크린 해 버렸다. 역시나 공감대가 45,000% 형성된 라테 얘기들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그렇게 순수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자랑할 것도 아닌 군대 시절 얘기는 뭐가 그리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것인지, 검증도 안 되는 얘기를 마치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쏟아냈다. 참고로 우리 모두는 장교로 최전방 철책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였다.    



   

대화 주제를 돌리고 분위기를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퇴임 후의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들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냐?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점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냐?"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주제는 깊은 생각을 유도하고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모두가 남은 60년의 시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우려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은 의외로 간결했고, 이 주제에 대해 사전에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인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시기, 열정적으로 일하는 시기,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시기로."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중동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병우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얼마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을 위해 그 시간을 사용할 것이라고 확고히 말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을 할 거다."라고 그는 반복하며 다른 이들의 공감을 구했다. 퇴임 후에도 계속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표현했다. 다른 두 친구도 같은 생각을 나누며, 퇴임 이후에는 자신의 관심사와 취미를 추구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15년 동안만 수령하겠다고 하며, 70세 이후에는 움직임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평생 연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실용적인 관점을 공유했다.


친구들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50세까지는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아내도 가정을 지키며 힘들게 지냈기에, 60대는 부부가 함께 즐겨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70대가 되면 부부 중 한 사람이 건강 문제로 고생할 시기가 되고, 80대는 부부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에, 60대를 제외하고는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여겼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지금 120세 시대의 한가운데 서 있다. 현대의 의료 발전과 생활양식의 변화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90세를 넘어서도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60에 은퇴하고 남은 30년을 무료하게 사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과 같은 19세기의 담론 대로 살아서 되겠는가?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무조건 그들보다 오래 산다. 그렇다면 그들처럼 무료한 30년을 보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겠나?


나는 이러한 관점을 친구들과 공유했고, 늘어난 수명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필요하며, 배움에는 한계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적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쌓아온 경험, 지식, 지혜를 활용하여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 나아가, 우리가 70대가 되어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아내와 함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이는 더 길어진 수명을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즐기고 가치 있는 활동으로 채우자는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의 재회는 매우 기뻤지만, 퇴임 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60대를 단순히 소비의 시간으로 보내기보다는, 생산과 기여를 중심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기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그날 오후 정자동의 한 카페에서 선배 3명과의 약속이 있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던 카페는 조용하고 대화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가죽 재킷, 체크무늬 스타일리시 재킷, 캐주얼 점퍼를 입은 선배들은 웃음을 나누며 활기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점심에 만난 동기들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선배들은 이미 사업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오늘의 모임 역시 사업 기회에 관한 것이었다.


선배들인 켈빈, 종림, 성찬은 미국에서 약 12년을 생활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각자의 기업에서 은퇴한 뒤,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켈빈은 핀테크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를 경험한 후, 현재는 온라인 몰 사업을 운영 중이었다. 종림과 성찬 역시 개인 사업을 하며,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즐기는 루틴을 셋업 하여 일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120세 시대를 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운동, 독서, 산책 등 규칙적인 루틴을 통해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60세 이후의 삶에 모범을 제시하고 있었다. 선배들로부터 느껴지는 역동적인 에너지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된 결과였다.


한국으로 돌아왔으니 어떻게 살려고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 선배들이 궁금해하자, 나는 120세 시대를 맞이하여 설정한 사명과 목표, 일상의 루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그리고 해외 몇몇 국가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려는 계획에 대해 공유했다. 내가 설명한 이야기는 선배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사명감, 일상의 루틴, 그리고 사업 계획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서로의 경험과 의견을 나누며 약 3시간 동안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들 역시 120세 시대를 의식하고 있었고, 최소한 80세까지는 건강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켈빈은 이미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과 공유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회사들을 방문해 강의와 코칭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에인절 투자자 모임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형태로 직접 투자와 강의를 하고 있었다. 나의 온라인 플랫폼 사업 계획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심지어 직접 참여하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러한 교류는 서로에게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모두에게 120세 시대를 향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접근 방식을 실행하는 데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오늘의 두 모임은 공교롭게도 참으로 대비가 되었다. 첫 번째 모임은 같이 은퇴한 우리 동기들이며, 그들은 50대 후반에 접어들며 남은 인생을 놀면서, 쉬면서, 즐기며 보낼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두 번째 모임은 선배들로 구성되었는데, 그들은 은퇴를 새로운 시작으로 보고 자신만의 사업과 비전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결심과 실행을 하고 있었다.


두 팀 모두 은퇴한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 행동양식, 차림새, 그리고 에너지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선배들 팀에서 느껴지는 역동적 에너지는 끌어당김이 있는 매혹적인 것이었으며, 반면 동기들 팀에서의 에너지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향후 그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게 했다. 60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분명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60년 동안 바쁘게 살아온 후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으로 60년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진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를 어떻게 의미 있고 충실하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계획, 목표가 있어야 한다. 또한 노후 활동을 위한 자본의 자동화 구조, 자산 관리, 연금, 보험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재정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 19세기의 생애플랜으로 설계된 지금, 우리에게는 21세기의 플랜이 없다. 없다면 스스로 만들어야지 19세기 플랜을 믿고 가서는 안된다.


팬데믹 이후 세상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특히 플랫폼 중심으로의 트래픽과 부의 재배치를 유도하고 있다. 2040년까지는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회사 브랜드들이 사라지고 플랫폼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재편은 일부 사람들이 속한 회사들의 소멸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그들의 생활 기반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즉, 삶이 예전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이 급변하여 재편이 일어날 것이기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사업을 하거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된 젊은이들에게는 변화의 시대가 곧 기회가 될 것이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의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 세대 역시 이러한 변화의 파도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약 15년 뒤의 큰 지각변동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그때에도 우리에게는 할 일과 기여할 일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60대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충분히 쉬고, 70대에는 연금과 저축으로 살 것'이라는 계획은 성급한 결정일 수 있다. 60대에 할 수 있는 기여할 영역이 많으며, 이 시기를 단순히 쉬는 시간으로 여기기에는 이르다고 볼 수 있다. 변화를 의연하게 마주하며, 하고 싶은 것을 즐기면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60년보다 앞으로의 60년 동안 더 의미 있는 일을 해 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60대부터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과정을 통해 충분히 그리고 건강하게 쉴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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