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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Feb 15. 2024

'여유'란 무엇일까? 누가 갖고 있나?

20여 년 만에 모교를 찾아갔다. 귀국 후 때마침 대학에서 동문 모임 메일을 받았고 교수들께 인사드릴 겸 방문을 하였다. 많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참석을 하였다. 교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화려함과 포근함은 없지만 항상 깨끗하게 단장된 교정과 학생들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의 조용함은 세월과는 상관없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강의실, 세미나실, 독서실, 강당을 차례로 돌아보는 동안 20년 전의 기억이 소록소록 돋아났다. 


제일 먼저 떠오른 기억은 ‘그때는 낮 밤이 없었지’였다. 새벽까지 원서를 읽고 발표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그 당시는 피곤한 줄 몰랐다. 쪽 잠을 자도 강의 시간은 놓치지 않았고 밤을 새더라도 발표 자료를 준비했던 그 시절에는 뭐든 다해낼 열정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대학원 2년간 공부한 질량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때까지 공부한 모든 것에 비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열정을 받쳐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답을 얻기 위해 다른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교정 투어를 이어갔다.  


4층 강의실을 한 바퀴 돌고 3층으로 내려오면서, 당시 공부할 때 외에는 뭘 했는지 떠올려 봤다. 학업은 힘들었지만 충분히 호기심을 충족시켜 줬고 수업이 없을 땐  동기들과 인생도 논했고, 운동은 물론 여기저기 문화의 터도 찾아다녔고 좋아하는 영화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다. 


당시 나는 여. 유. 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적인 여유. 열정을 받쳐주었던 여유.  


모임을 하는 강당에 가까우니 동문들이 여기저기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르는 후배들, 처음 보는 교수들도 많아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드신 교수님들은 중후함과 관록의 기운이 충분히 강했지만, 어떤 분은 세월과 나란히 한 듯했고 어떤 분은 세월을 거슬러 간 듯했다. 


대학원 학장이 된 당시 지도 교수는 중후한 노년의 신사가 되셨다. 백발의 머리, 여러 줄의 이마 주름살, 짙은 눈썹, 매서운 눈초리, 그리고 다소의 주름이 그려진 목선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움이 풍겨졌다. 말끔한 양복 차림, 특유의 저음 목소리는 주변의 기운을 압도하였다. 나이 드신 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교육 전문인의 깊이와 관록을 겸비하고 10년 이상 젊게 보이는 중년의 찐 멋쟁이였다. 

이 멋에서 나는 인생의 여유가 느껴졌다. 넓고 깊고 넉넉한 여유가 느껴졌다. 부드러움, 깊이, 관록, 멋을 받쳐 주는 여유.   


“다니엘, 오랜만입니다. 이제 한국으로 완전히 오신 것입니까?”


내 얼굴과 해외에서 살았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테니스를 같이 즐겼던 연유로 기억을 하시는 듯했지만, 헤어 진지 20여 년 뒤에도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니 따뜻함이 느껴졌다. 


“ 다니엘, 오늘 동문 모임에 참석을 했으니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덕담을 해 주세요. 오랜 해외 경험 얘기도 후배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학장은 결정을 하신 듯 사회자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였다. 사양할 틈도 없이 결정됨으로 인해 동문 행사 시간 동안 교수, 학생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잠깐 생각해 봤다. 


한가지 단어가 즉흥적으로 떠 올랐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있는데 루저에게는 없는 것, 

긍정의 사람에게는 있는데 부정의 사람에게는 없는 것,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있는데 자의식에 갇힌 영혼에는 없는 것,

열정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데, 편안함을 찾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 

남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데 모자라서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 

나이가 들어도 젊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이에 순응 한 사람에게는 없는 것, 


이 것에 대한 해답은 즉흥적으로 나온 단어였지만 내게도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에 나도 새삼 놀랐다.   


그날의 모임이 공식적으로 시작하자 띄워진 동영상은 모두를 과거로 데려갔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서 그날에 이르기까지의 변천사에는 성공한 동문들의 모습, 산학 협업 모습, 매년 있었던 주요 행사, 강의 모습, 교수-학생의 여가 활동, 그리고 교정의 변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내가 속했던 시절의 사진도 여러 장 있었고 그 사진 속에도 활력, 기운, 열정 그리고 이들을 받쳐주는 여유가 느껴졌다. 


영상에 이어진 순서에서는 새로 참석한 동문들이 소개되었다. 선배들 대다수는 기업의 대표, 혹은 기업을 운영하는 분, 언론인, VC 대표, 교수들이었다. 기업에 속해 셀러리를 받고 있던 동문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아마도 학교 특성 때문인 듯했다. ‘개미보다는 거미(주 1)’를 추구하는 기질들이 있었던 것 같다. 쫓기지 않고 위축됨이 없는 강인함을, 자기의 것을 하면서 즐기는 재미를, 응시 댐이 없는 겸손함을, 시끄럽지 않은 진중함을, 가벼운 미소 속에는 깊은 내공이, 부드러운 말투에는 예리한 카리스마를, 말끔한 차림에는 자존감이 채워져 있음이 느껴졌다. 그랬다. 이들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기어코 사회자는 내게도 마이크를 넘겨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주길 당부했다.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나의 첫마디였다. 말을 하기에 앞서 질문을 먼저 하였다. 특정한 답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후배들에게 재차 물었다. 잠시의 침묵 뒤에 곳곳에서 지혜, 성취, 성공, 부, 퍼스널브랜딩, 행복, 즐거움, 만족, 계발 등 여러 대답들이 나왔다. 오답은 없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들, 중요한 것들이었다.    


“우리에게 또 한가지 더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은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들의 대답 중에 들어 있지 않았던 ‘여유’를 끄집어냈다.  


‘여유’란 무엇인가? 남음이 있는 것이다. 모자라지도 않고 너무 남아돌지도 않는 상태이다. 적정한 남음이 항상 있는 상태를 ‘여유’라고 나는 정의한다. 모자라서 허덕이지 않고 너무 남아 나태하지 않는 것이 여유이다.


여유는 누가 갖고 있는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여유’는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자가 만들어 내거나 이들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앞 문장의 여러 질문에 ‘여유’를 대입하면 누가 가질 수 있는지 정의 할 수 있다.   

(백수에게는 여유라는 말이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사람에게 ‘여유’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진정한 여유는 정신적, 물질적 결과로

자기가 가는 길, 자기가 추구하는 길,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알고 

배우고, 행하고, 즐기고, 스스로 다스릴 때 얻어진다. 

그래서 여유는 성공한 사람에게서 보이고, 깨달은 사람에게서 보이고, 긍정적인 사람에게서 보이고, 즐기는 사람에게서 보이고, 이타를 실행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것이다.


여유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여유에서, 실패에서 성공으로 다시 설 수 있는 것도 여유에서, 힘듬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여유에서,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여유에서 가능하다. 


또한 모든 것에 여유를 대비해 보면 그 가치를 볼 수 있다. 급할 때도 여유를, 위험에도 여유를, 불안에서도 여유를, 즐거울 때도 여유를, 모자랄 때도 여유를, 실패에도 여유를, 오를 때도 여유를, 내려갈 때도 여유를, 젊음에도 여유를, 나이가 들어도 여유를, 힘이 있어도 여유를, 힘이 없을 때도 여유를 가져야 건강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루에 하늘을 한번 이상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가져보자. 우리는 여유 없는 삶에 길들여져 있다. 거대한 시각으로 세밀한 것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좌우를 돌아보고 앞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배울수록 여유를 더 가지고, 알수록 더 여유를 가지고, 가질수록 더 여유를 가져보자. 정신적 여유를 가질 때 물질적 여유는 따라 올 것이니..     

 

당신이 급하게 달려가고 있는 곳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삶에서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 모코코마 - 

가장 지혜로운 마음은 계속 무언가를 배울 여유를 가진다.
- 죠지 산타나야 - 

삶에는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
- 간디 - 

놓아야만 다시 즐거움을 얻는다.
- 에바 마테스 - 



(주 1) 개미 보다는 거미 : 

. 개미는 평생을 다니던 길로, 같은 집으로, 여왕을 모시고 일하다 죽는다. 2차원의 세계관을 가진 삶을 의미

. 거미는 높은 곳에서 살며 거미집을 짓기 위해 꽃잎, 꽃가루를 타고 건너편으로 과감히 건너가는 리스크를 선택한다. 공중에 거미집을 짓고 난뒤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즐긴다. 그 세계를 즐기다 지루하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거미줄을 치고 또 다른 세계를 즐긴다. 리스크를 선택하는 3차원의 세계관을 가진 삶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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