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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23. 2024

모스크비치카 vs. 모스크비치,
이들은 누구인가

아이러브 모스크바 Part III : 사람

*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이미지에 가려진 보물 같은 도시에서 살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리얼하게 적는다.

( 다부작으로 진행 : 계절, 여성, 사람, 문화, 거리 등)


터키의 푸른 하늘 아래,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으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이제 곧 대기업의 러시아 법인 책임자로 또 출발을 하게 될 텐데, 과연 모스크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설레지만, 때로는 도전적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라는 이름에 붙어 있는 이미지와 언어의 투박함, 무뚝뚝한 모습, 보드카가 만든 왜곡된 강한 이미지. 나에게 러시아인은 그런 이미지였다.


'그들은 정말 불곰 같고, 무뚝뚝하며,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들일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감정은 감춘 채 겉으로만 표현하는 투박한 사람들일까?'

'각진 말투와 걸음걸이를 걷는 이들일까?'

내 마음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스크바로 가는 첫걸음부터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빨강 유니폼이 강렬한, 영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여승무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좌석 옆에 무릎을 굽히고 내게 상냥하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나탈리아입니다. 당신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러시아 여성은 미소를 짓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는가? 발령이 나자마자 검색한 포털사이트에서 그리 말해 진짜 그런 줄 알았는데 웬걸! 나탈리아의 미소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녀의 따뜻한 말투와 밝은 미소는 내가 가진 선입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순간,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내 첫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4시간 반 가량의 비행 동안, 비행기 안에 가득 찬 러시아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이태리나 다른 나라 비행기 안과는 달리, 모스크바행 비행기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사람들은 옆 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예상과는 달리 시끄럽지 않았다. 남자들의 거친 말, 높은 톤의 우악스러운 목소리는 전혀 감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직원의 반가운 인사를 받았다. 


"도보로 포잘로 바: Welcome, Daniel." 


그의 겉모습, 얼굴선이 굵고 무뚝뚝한 느낌이었으나, 인사말과 함께 보여준 가벼운 미소는 매우 부드럽고 순수했다. 그의 움직임에는 활력이 넘쳤고, 그 순간 '오늘은 좋은 일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외모는 크고 거칠어 보였지만 사나움은커녕 청년의 경쾌함이 가득했다. 말수는 적으나 묵직한 느낌에 편안했고 어수선하지도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깔끔했다. 


첫 출근. 또 나의 인식이 깨졌다.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영화배우 방불케 하는 9등신 미녀들과 운동으로 단련된 매력적인 남성들이 대다수, 아니 전부가 그랬다. 배 나오고, 목이 짧고 조폭헤어스타일을 한 러시아 남자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여성들은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남성들은 강인하고 건강해 보였다.


비록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승무원, 기내탑승객들, 마중 나온 직원, 사무실 직원까지..

물론, 이들을 러시아의 보편적 성향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일단 러시아에 정착할 나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러시아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 아주 굿!이었다! 아니, 그들의 매력에 조금은 빠진 것도 같았다.




파리에는 파리지엔과 파리지엔느가 있고, 뉴욕에는 뉴요커가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가 있다.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진정한 러시아의 영혼은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 도시의 삶 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높아진 관심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느낌으로 뭔가에 이끌리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한 실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한 가지 일화를 얘기하자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문제로 인해 나는 이들의 격 있는 생활태도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윗집_펜트하우스_에는 남자아이 3명을 키우는 가족이 산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매주 금요일 저녁과 새벽의 평온함을 파괴하기에 충분했다. 이 고통을 알려주는 게 좋을 듯하여 소음이 발생하는 순간에 윗집으로 올라가서 그동안 겪었고 인내했던 내용들을 얘기하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표정이었지만 얘기를 듣고 난 후, 이들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Mr. Kim, 우리의 행동이 이렇게 큰 불편을 줬음에 깊이 사과합니다. 아이들에게 매너, 에티켓 교육을 꾸준히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아.. 인정하고 사과하고 부족한 점을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탓하고 핑계 대고 영혼 없는 사과만 하는 (대한민국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익숙한 장면과는 많이 달랐다. 


이들이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은, 금요일 저녁시간은 아이들에게 1주일간의 공부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하고픈 것을 맘껏 하게 한 자신들의 잘못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층간소음까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이해하도록 교육을 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직접 방문해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따지러, 시정을 요구하러 올라간 내가 오히려 머쓱한 채 괜찮다고 돌아와야 했으니... 이들의 격 있는 인간미에 적잖이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이들의 생활문화의 격은 운전할 때도 여실히 드러난다. 차량으로 끼어들기할 때 사실 나 역시 한국에서는 안 끼워주려, 또 어떻게든 끼어들려 했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끼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욕설이 오가거나 서로 앞지르기 주행을 위험하게 벌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봐왔던 터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문화가 없다. 끼어들려 하면 자리를 내주고 끼어들고 나서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주행 중인 차를 대놓고 운전자끼리 서로 싸우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볼쇼이극장에서 발레를 보거나 차이코프스키 극장에서 클래식콘서트, 오페라를 볼 때도 이들의 격조 있는 삶을 엿볼 수 있다. 멋있게 차려입고 아름답게 꾸미고 이 시간을 즐겼다. 공연의 멋있는 장면에서는 거침없는 박수와 “부라보”를 외친다. 자신들이 만족한 순간에 무대에 반응을 보였고 예술을 오감으로 즐길 줄 알았다.  


볼쇼이 극장에서 펼쳐지는 발레의 우아함, 푸시킨 미술관에서 만나는 세계적인 작품들은 모스크바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이러한 예술적 경험은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들에게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삶의 깊이를 더하고 인간적 가치를 찾는 기회를 만든다. 예술은 이들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창 이자, 다양한 인간 경험에 공감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수단인 것이다.  


푸시킨이 "예술은 지식의 저장고이다"라고 말했듯,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는 예술과 문화, 지식과 경험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진정한 부는 너의 영혼에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이 실제 내 눈앞에 펼쳐진 듯 세계 3대 독서국가답게 인구의 53%가 3개월 평균 5권의 책을 읽는다.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 서 있는 사람조차도. 가히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러시아 3대 문호의 후손 다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나아가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들은 물질적 성공을 넘어서, 인간적,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독특한 경제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부의 축적이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복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즉, 돈을 벌었다면 그것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성공한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들은 문화, 예술, 교육 및 사회 복지 프로젝트에 투자를 많이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부자들도 있었으니까. 




내가 경험한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는 부드럽고 솔직하고 친절하고 지적이고 멋이 있다. 이들에겐 타고난 여유와 생활 속에서 배운 규범이 태도에 자리 잡혀 있고 사회에서의 에티켓, 매너의 중요함은 내면의 자존감으로 채워져 있다. 유사한 제국의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 사람들, 이태리 사람들이 보여주는 에티켓과는 수준이 다른 격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모스크바의 풍부한 문화는 그들의 격조마저 한층 더 높여준다. 


보편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카는 졸부, 졸부의 여자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들에게 역사, 문화, 공동체 의식, 가족 의식이 베여 있고 부를 통해 타인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식이 저변에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의식의 발현으로 이들의 생활 곳곳에서 품격과 격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3년의 모스크바 생활에서, 이들의 격조와 품격을 경험 할 수 있었다. 이들과의 교감으로 어쩌면 나의 생각과 의식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사업을 같이 하면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발레를 같이 보면서, 여행을 같이 다니면서, 행사에 같이 참여하면서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이들의 생각과 의식을 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들이 가진 품격과 격조는 나에게 다가왔고 내 삶의 질적 변화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기업가로서 여유로운 마음과 그릇을, 멋과 지혜를 갖춤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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