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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30. 2024

분절 아닌 연결, 단절 아닌 통합

아이러브 모스크바 Part IV : 문화

* 본 글은 모스크바에서 한국기업 법인장으로 3년 살면서 느낀 ‘아이 러브 모스크바’ 시리즈입니다. 

  오늘은 4편, 모스크바의 문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프랑스에는 패션, 일본에는 음식, 이태리에는 장인.


각 나라는 오랜 역사가 입혀놓은 코드가 있는 것 같다. 모스크바에도 분명한 문화 코드가 있다. 발레, 클래식 음악, 오페라, 뮤지컬, 미술, 책, 글의 등. 분야마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 코드가 넘쳐난다. 모스코비치와 모스코비치카의 삶에는 이러한 코드가 이미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선지 이들의 자태, 멋, 느낌, 매력이라 불리는 모든 것에 문화의 남다른 기품이 담겨 있는 것이 부럽기까지 할 정도다. 


오랜 역사가 지닌 깊이 있는 메시지.


과거의 정신이 현재로 이어지고 현재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일상에서 미래를 예견하게 만드는 연결과 공유.

    

모스크바의 문화코드를 조금 깊이 들여다보자. 


I.  문학으로 뿌리내린 삶 – 의식 있는 정서 수준


모스크바는 러시아 문학의 중심지로서, 그 역사적 깊이와 문화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 푸쉬킨과 같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이 남긴 깊이 있는 사연들과 정신이 모스크바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의 삶과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모스크바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광대한 서사시이자 모스크바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작품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 사유를 얘기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러시아 문학의 섬세한 감성을 드러낸, 아버지의 여자를 사랑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러시아 3대 문호의 대표작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스크바의 문학적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며, 세대를 넘어서 문학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려준다.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러한 고전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삶과 정체성을 되돌아보며, 러시아 문학의 깊이 있는 정서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세대를 넘어 전달한다.


그래선지 도심 속 자유로운 젊은이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아닌, 책이 들려 있다.




 II. 책, 지식과 토론이 함께하는 도시, 그리고 젊은이들의 일상


모스크비치와 모스크비치가에게 책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서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공원과 광장에서는 햇살 좋은 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하고 대중교통 내에서도 앉아있든 서있든 책 읽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책은 이들에게 분주하고 찌뿌둥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가 되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할 소재거리를 양산하기도 하고 이들의 삶 속에 밥 먹듯 젖어든 일상이기도 한 듯하다. 


이들은 러시아 고전 문학부터 현대의 베스트셀러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에 몰두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문학의 세계를 탐험한다. 게다가 이러한 탐험이 개인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 카페 곳곳에서 책을 주제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곤 한다. 살짝 옆에서 들리는 대화내용만으로도 고전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대화는 꽤나 수준이 높다.   

이러한 독서, 토론 모임들은 톨스토이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래선지 젊은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대화의 내용만으로도 뿌리 깊게 스며든 굳건한 인문학의 뿌리를 느낄 수가 있다. 사실, 쇼핑, 브랜드, 부(富) 등을 거론하며 모두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젊은 층과는 대조적이라 슬며시 부럽기도 하다. 


이들의 책이 일상이 되어 거기서부터 깊어진 인문학적 깊이와 스스럼없이 자신의 사고를 드러내는 토론문화는 다른 예술과도 연계된다. 




 III. 예술( 미술, 음악, 발레) :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


모스크바는 미술이 풍부하다. 트레티야코프 갤러리는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이고 러시아 미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갤러리에는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와 같은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레핀의 '볼가에서 노 젓는 사공들'은 러시아 미술의 상징적인 작품이다. 


또한, 뉴 트레티야코프 갤러리는 현대 러시아 미술에 초점을 맞춘 곳으로, 20세기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을 대표하는 칸딘스키, 말레비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의 전시는 전통적인 러시아 미술과 현대 예술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보여준다. 모스크바 미술관들은 러시아 고유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정체성이 강하게 반영된 점이 특징이고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는 다른 점이다.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유산은 러시아 음악계를 세계적인 레벨로 올려놓았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 특히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같은 발레 음악은 볼쇼이 발레의 공연을 통해 가치를 더 높인다. 라흐마니노프의 감성적이고 깊이 있는 피아노 협주곡들 역시 러시아 음악의 깊이를 보여준다. 최근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 군의 피아노 연주곡이 라흐마니코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볼쇼이 극장과 마린스키 발레단은 러시아 발레의 자존심으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프리마돈나, 즉 주역 발레리나들은 단연, 세계 최 정상급이다. 발레리나를 선발할 때는 그 집안 여성  3세대의 몸의 골격을 검증한다. 즉, 지원자, 지원자 어머니, 지원자 할머니까지의 몸의 균형 상태를 살펴본다. 이 얼마나 엄격한 선발기준인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최 선호 작품으로 이태리 라 스칼라 오페라 공연, 비엔나 국립 오페라 공연과 함께 세계 3대 연말 공연으로 칭송되고 있다.


"러시아의 음악과 발레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예술의 결정체이며,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다"라는 말처럼, 러시아 음악과 발레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을 한다. 러시아 음악과 발레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의 형태로,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담고 있다.


음악, 미술, 무용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기 위해 새로운 교차점에 있다고 한다면 영화 연극등과 같은 예술분야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지어 공감을 이끄는 지점에 있는 듯하다.




IV. 영화와 연극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유명한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예술적 가치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영화는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라 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시간과 기억, 영혼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거울'과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연극 분야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작품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체호프의 '갈매기', '바냐 삼촌', '세 자매', '벚꽃 동산'과 같은 고전 작품들은 모스크바의 연극 무대에서 현대적 해석으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체호프의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관계,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통찰을 얘기한다.


모스크바의 영화와 연극은 러시아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소재로 한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예술의 장으로써 이들 작품들을 통해 모스크바의 문화적 정체성을 관객은 느낄 수 있다.  


모스크바의 밤, 이 도시의 클럽과 바들은 젊은이들에게 끝없는 즐거움과 활기를 선사한다. 특히 레드 옥토버 지구는 모스크바의 밤 문화를 상징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곳에 위치한 클럽들은 전통 러시아 음악부터 현대적인 EDM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쏟아낸다. 전통적인 러시아 음악은 러시아의 깊은 문화적 뿌리와 역사를 반영하여 러시아의 영혼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반면, 현대적인 EDM 음악은 모스크바의 젊은 세대도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의 진수와 화려한 젊은이들의 열정이 발산되는 도시.


문학의 깊이와 현대의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도시.


역사적 정체성과 젊은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이 연결되는 도시.


이곳에서의 하루는 그저 그런 도시의 일상을 너머 러시아의 깊은 역사와 풍부한 전통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예술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도시의 문화는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감상을 넘어서, 러시아의 영혼과 그들의 정신을 온감각으로 체화하게 한다. 


모든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그러한 흐름을 거친다 하더라도 어떤 깊이와 폭을 지닌 사회인지에 따라 과거의 정체가 현재에 흡수되기도, 현재의 퇴보가 미래로 가는 시간을 잡아당기기도, 과거의 오류가 미래에 다시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가 역사라고 부를 때 올바른 역사란 과거에서 걸려야 할 부분이 제대로 걸러진 현재, 남겨야 할 것들이 제대로 이어진 미래를 후손에게 선사하는 것이 우리가 '계승'이라 부를 수 있는 역사가 아닐까. 


나는 모스크바에서 전통 즉 과거에서 단절이나 퇴보가 아닌 이어진 현재를 느꼈다. 톨스토이를 거론하는 카페 속 젊은이들에게서, 차이코프스키를 느끼려는 관객들의 눈빛에서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과 영혼에 감사하는지를 여과 없이 전해받았다.  


과거의 정신이 현대의 물질에 그대로 이질감 없이 녹아든, 그렇게 세대가 이어지고 그것이 뿌리에 양분이 되어 젊은 세대들이 시대에 맞는 놀이문화를 일상으로 즐기면서도 오히려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교육의 터가 그들에겐 '일상'이 되어 있었다. 


내가 본 모스크바 문화 코드는 과거의 정신을 현재로 이어주는 뿌리이고 이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일상 속에 미래를 보여주는 힘이다. 세상이 급변하고 정치적으로 요동쳐도 허둥지둥 흔들리지 않고, 근간은 깊은 문화 뿌리의 힘, 모루의 단단함으로 도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분절되어 있는 듯한 현실, 막막해 보이는 미래, 그래서 신음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 모습이 왜 안타깝게 떠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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