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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09. 2024

야누스의 계절

아이러브 모스크바 1 : 계절편

* 이 글은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이미지에 가려진 보물 같은 도시에서 살며 리얼하게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내용이다. ( 다부작으로 진행 : 계절, 여성, 문화, 거리, 보드카 등 ) 


모스크바의 5월~9월까지, 도시는 마치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처럼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다 여름이고 가을이다 다시 봄이 되는, 아침에는 부드러운 분홍빛의 소녀로 깨어나, 한낮에는 열정적인 운동가로 활기를 띠고, 저녁에는 귀티 나는 젊은 남성 앞의 수줍은 처녀로 변신한다.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한다.



이 도시는 흑백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단순하게 표현될 수도 있다. 밝은 오월부터 구월까지는 모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지만, 추운 시월부터 사월까지는 어둡고 차가운 동화 속 악역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오로라 공주에게 부여된 두 가지 운명과 같다. 한편으로는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16살이 되는 생일, 해가 지기 전 물레 바늘에 찔려 죽을 운명이 공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같은 도시지만 전혀 다른 두 얼굴을 가진 모스크바는 마치 백설공주가 진정한 사랑의 눈물로 잠에서 깨어나듯, 그 화려하고 밝은 다섯 달을 갈망하며, 춥고 어두운 일곱 달을 참고 견뎌낸다.




나는 2021년 1월, 한국 기업의 책임자로 이곳에 왔다. 첫 해에는 여름과 겨울의 아름다운 단면에 놀랐고, 이듬해에는 사람들의 깊은 감성과 지성에 감탄했다. 세 번째 해에는 모스크바의 숨겨진 격조와 품격에 매료되었다. 내 삼 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모스크바라는 도시와 그 속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도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위험하고, 거칠고, 호전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모스크바는 풍미와 멋, 품격과 격조가 넘치는 도시이다. 예를 들어, 이 도시는 벤츠 자동차가 세계 어느 대도시보다도 많다. 모스크바의 품격과 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예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곳에서 느끼고, 보고, 경험한 것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쓴다.




눈 덮인 겨울이 지나고 도시는 잠에서 깨어나 듯 변화한다. 건물들은 마치 면도를 하고 온몸을 깨끗하게 씻은 것처럼 변모하고, 길거리의 차들은 색색의 옷을 갈아입고 활기찬 거리로 나온다. 인도를 메우던 먹물 같은 눈덩이들은 햇볕에 녹아 흘러내리고, 그 자리는 화사한 야외 카페로 변신한다. 숲은 먼지를 털어내고, 모스크바 강은 반짝이는 물결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도시에 싱그러움을 더한다.



도시의 주인들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고, 밝고 화사한 파스텔 톤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활기찬 워킹을 하며, 새벽부터 자정까지 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일몰이 되면 도시는 놀이터로 변하고, 모스크바의 에너지는 절정에 달한다. 이는 마치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른 새벽, 사람들은 호수, 공원, 모스크바 강변으로 나온다. 조깅, 자전거 타기, 스포츠로 도시는 아침부터 생동감 넘친다. 저녁에는 가족, 연인, 청년, 아이들의 수다로 하루가 채워진다. 이 강렬한 다섯 달의 에너지에 모두가 빨려 들어간다.



하늘은 미세먼지 없이 청명하고, 거리는 깨끗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청소하는 거리는 세계 어느 대도시보다 깨끗하다. 깨끗한 땅과 맑은 하늘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모습은 선명하고 아름답다. 사람들은 말한다. 러시아에는 3대 자랑거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 여름이다.[주 1]



화창한 다섯 달의 아름다움과 품격 있는 도시의 자태, 격조 있는 모스크바 사람들의 자유로움의 조화는 정말 일품이다.




10월이 되면, 차가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눈이 내린다. 어두운 7개월의 시작이다. 거리의 카페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회색으로 바뀐다. 하지만 품격과 격조의 도시, 모스크바는 이 사나운 계절에도 그 기품을 유지한다. 거리의 어둠은 화려한 조명으로 밝혀지고 [주 2], 건물과 교각은 밤에 더욱 뚜렷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으로 덮인 공원은 마치 닥터 지바고 속 유리의 고향인 바리키노 마을이 연상된다.


계절이 만든 긴 밤은 사람들을 문화의 세계로 이끈다. 발레, 클래식, 뮤지컬, 문학회, 독서회 등이 매일 열려 모스크바 사람들의 예술적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이들의 여유로움은 거센 어둠과 추위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다.



모스크바의 계절은 마치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최고의 청명함, 맑음, 깨끗함, 화려함의 다섯 달이고, 다른 하나는 깊은 어둠, 매서움, 차가움의 일곱 달입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언제나 격조와 품격, 자태가 있는 도시이다.



다음 글들에서는 모스크바의 여성, 문화, 거리, 보드카 등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나머지 둘은 여성과 보드카인데 여성과 보드카는 다음 편에 이어 글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2] 러시아는 가스, 오일을 생산하기에 전기료가 쌉니다. 겨울 내내 조명으로 도시를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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