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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an 02. 2024

다시 불러본다! 동고야! 친구야!

중년에 다시 뭉친 찐 사나이들_나의 보물 상자

“동고야”라는 이름의 카톡방에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모여있다. 이 방에는 미술작가 및 작품소개, 인생 명언들, 벗들의 일상 얘기와 사진들, 투박한 음식의 맛과 얘기, 지방 곳곳에 숨은 명품 장소, 즐거운 주제와 거침없는 댓글들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벗들 모임의 이모저모 등 다양함과 깊이가 있는 내용들이 쌓여있다. 



카톡방 이름 “동고야”는 부산동래고등학교의 축구부, 야구부를 응원하는 응원가 첫머리에서 따왔다. 고등학교를 같이 입학하여 다녔던 10명의 고등학생 친구들이 다시 모여 즐기고, 놀고, 대화하는 놀이터다. 기자 출신으로 미술에 조예가 깊고 서울 DDP운영을 맡았던 다작 작가 철호, 여의도 금융가를 주름잡던 금융맨 상철, 대기업 부사장으로 언론, 홍보, 인사를 넘나 들었던 마당발 SS맨 형규, 일찍부터 개인사업으로 내공이 깊은 사업가 승철, 수자원공사의 고급 공무원으로 대학시절의 민주화의식이 남아있는 전투적 공무원 종수, 굴지 유통 그룹의 CFO 민철, 조선일보 중견 기자 상훈, 일본동경대학 교수 용상, 대학시절 반정부 활동으로 인해 미국산타페로 도피해서 터를 잡고 지금도 한자로 소통하는 사상가 상용, 그리고 모스크바 한국기업에서 근무 중인 나까지 10명이 이방의 좌충우돌 멤버들이다.



"태백산과 동해수의 젊은 정기 망월대에 모인 세기의 왕자 /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매일 아침, 이 카톡방 문을 열면 메아리치는 후배들의 우렁찬 외침, 응원가의 함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당시엔 교가보다 더 자주 불렸던 것이 응원가이다. 교내 행사가 있거나 수련회, 수학여행, 수능응원등에서 다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부르는 노래이다. 노래라고 하긴 뭐 하지만 아무튼 많이 불렀고 지금도 많이 불린다. 고등학교 입학 전 OT에서 교가와 함께 반드시 외워야 할 정도로 동고야는 학교는 물론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다.



이 카톡방을 클릭할 때는 마치 보물상자를 여는 느낌이다. 

그냥 카톡에 있는 여러 대화방 중의 하나인데, 

이 카톡방에서만 느껴지는 이 감정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나는 모스크바에서 생활하기에 한국과의 시차가 6시간이고 모스크바 아침이면 한국은 이미 정오를 지나는 시간이다. 밤 사이 한국, 일본,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나눈 대화가 쌓여 있기에 메일 오전에 이 박스의 문을 여는 순간 살짝 긴장된다. 로또 번호를 맞춰보는 기분이랄까.. 



한국 산천과 절의 아름다움을 담은 사진들이 꼭 있다. 이 사진들은 매주 산에 오르는 승철의 작품인데 이미 전문 사진작가 수준이라고 다들 칭찬이다. 가장 최근에는 무의도 자연휴양림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속에 있는 듯 상쾌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형규는 약방의 감초처럼 매일 아침에 “굿모닝” 인사를 하고 등장한다. 그리고 저녁엔 술상 사진을 올리며 “인생 뭐 있어”를 외친다. “형규는 참 일관성 있다”라고 다들 댓글을 단다. 아침에 형규의 “굿모닝” 인사가 없으면 다들 걱정이다. “이 자슥, 어제 또 많이 마셨나?” 종수는 틈날 때마다 도시 구석구석의 맛집을 찾아다닌다. 식당과 음식에 대해선 허영만 선생 수준의 식견이 있다.



벗들이 다작 작가 철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쌀쌀맞다. “니는 책을 좀 쉽게 쓰라. 니 책은 읽기가 어려워.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구독자들이 알기 쉽게 써야 한다.” 상철이가 한마디 거든다. “철호야, 이번 준비 중인 책은 편한 톤으로 써봐라.” 자긍심이 강한 철호도 이 방에서는 순해진다. “벗들의 조언을 듣고 이번에 쉽게 썼다. 곧 퇴고하는데 미리 보여줄 터니 함 봐도^^” 


 

쌓여 있는 표현 한마디, 사진 한 장마다에는 즐거움, 해학, 고민, 심상이 녹아 있다. 벗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들로 성숙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이어가려고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고 3 시절, 매일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를 벗어나 중국집으로 출근했던 형규와 상용, 틈날 때마다 책을 읽던 승철, 묵묵히 공부에 열중이었던 상철과 용상, 마당발이었던 상훈, 기타 연주에 빠져있던 민철, 어디에든 등장했던 철호, 그리고 남다른 존재감을 보였던 종수였다. 지금도 그때의 모습들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멋지고 중후한 청년들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벗들에게 비친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떨까? 

그때와는 달리 어떠한 느낌을 줄까? 



대학 때는 추구하는 이상, 이념 차이로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도 논쟁을 많이 했었고 다들 자기 신념이 강했다. 벗들이 펼치는 주장과 논리에는 칼끝의 예리함이 있었고 급진적인 세계관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서 그런 걸까, “동고야” 대화방에서는 벗들의 문장 칼끝이 무디어졌다. 아니, 스스로 무디게 만든 것이다. 문장에서는 날카로움 보다는 지혜와 넉넉함이 있다. 주장하기보다는 들으려는 배려가 느껴진다. 벗들을 표현하는 단어에는 우러나는 따뜻함이 스며 있다. 상대방을 독려하고 존중함에 겸손함이 묻어있다. 불쑥 등장하는 아제 개그는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다듬어지고 둥글어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다.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더 생기는 것 같다.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조금씩 깨닫는 것 같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닥쳐오는 운명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긍정적으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가자”는 니체의 아모르파티 (Amor Fati: 운명애)가 떠오른다.   



대학졸업 이후, 10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인생방향으로 나아갔고 꽤 오랜 기간 동안 볼 수가 없었다. 그간 나에게는 우정이 끝난 듯한 느낌이 있었고 실제 수십 년 동안 서로 간의 살아가는 방향의 차이로 인해 소원해진 점도 인정한다. 내 탓도 네 탓도 아닌, 우리는 우정의 중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 그렇게 단절이 되었었다. 정확히 하자면, 내가 단절을 시킨 것이 맞는 표현이다. 독일, 헝가리, 그리스, 이태리, 터키, 러시아 등에서 20여 년 동안 해외에서 체류하였고 회사 조직에서의 인간관계도 충분히 얽혀 있었다. 그러기에 학창 시절 격이 없이 지내던 벗들과 연락을 긴밀히 못했다. 나의 이기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과 벗의 의미를 가벼이 한 무지의 단면이었다.      



어느 순간 공허함과 힘든 일들이 밀려올 때는 터놓고 얘기할 벗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터키법인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치열하게 사업을 하면서 지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경영자의 어깨에 주어진 무게감과 책임감에는 한계가 없기에 외로이 서서 버텨야 하지만 지칠 때는 벗이라도 있다면 위로가 되고 기댈 언덕이 되는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35년 회사 생활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가 터키에서 근무했던 5년이었다. 테러, 쿠데타, 지진, 환폭락, 물가폭등 등 사업하면서 경험할 수 없는 힘든 악재들 속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했기에 부담감과 책임감은 무척 버거웠다. 온전히 경영자가 짊어져야 할 것이기에 내게도 힘이 되어줄 벗, 얘기를 들어줄 벗이 필요했다.




전 생애의 지복을 지향해 지혜가 갖추어지게 되는 것 가운데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정의 획득[주1]이라는데 오랜 기간 동안 나 스스로 만든 이기적인 교우 관계로 인해 당장 연락할 벗이 없었다. 벗이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고 벗은 근심과 슬픔을 서로 나눠야 한다 했는데 내게는 영혼도, 근심도, 슬픔도 나눌 진정한 벗이 없었다. 



그러나 “동고야” 카톡방은 나를 세상 속으로 끌어내었고 벗들과 연결시켜 주었다. 소로우의 말대로 '하늘이 물러나 더 높은 곳에서 아치형을 이루는'[주2] 것처럼 벗들과 다시 뭉치게 되었다.

 


약 7여 년 전에 SS맨인 형규는 연락이 안 되던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의 벗들을 불러 모아 결속하는 기회를 만들었고 카카오 대화방을 개설하여 지속 이어왔다. 내게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벗들과 연결되길 바라는 간절함과 믿음이 있었다.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형규와 먼저 연결이 되었고 그를 통해 나머지 8명의 벗들과 연결되었다. 벗들은 우정으로 기꺼이 받아주었고 환영해 주었다. 이렇게 2020년에 “동고야”라는 카톡방을 통해 오랜 벗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뒤늦었지만 이 벗들을 다시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고 우정이라는 깊은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동고야” 카톡방은 나에게 우정과 벗의 결정체이다. 우정, 벗이라는 단어에서는 '친구'라는 단어보다 더욱 깊은 깊이를 느낀다. 우정이란, 하늘과 인간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호의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견해의 일치로 획득된 인연이라서 일까, 함께 하는 관계에서 서로 보호해 주며 덕 안에서 최고선을 향하지 않는다면 우정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주 3] 는데 그래서일까? 



내일은 “동고야”상자에 어떤 보물들이 있을까?   


[1] 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박문재 번역, 2022, 현대지성

[2] 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윤구상 번역, 2003, 도솔

[3] 키케로인생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김성숙 번역, 2009, 동서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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