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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산우옹 Feb 22. 2023

시 한 수 남겨두고
다시 오길 기약하노라

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10)

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10)


시 한 수 남겨두고 다시 오길 기약하노라

< 金山寺 (금산사) > 

     --  “금산사에서

      

 巉岩怪石疊成山 (첨암괴석첩성산)  

  깎아지른 봉우리, 괴이한 바위 첩첩이 산을 이루었는데

 上有蓮房水四環 (상유연방수사환)  

  그 위에 놓인 가람, 사방으로 물이 둘렀구나

 塔影倒江蟠浪底 (탑영도강반랑저)  

  거꾸로 비친 탑 그림자 강물 아래 드리웠는데

 磬聲搖月落雲間 (경성요월낙운간)  

  편경 소리 달 흔들어 구름 사이로 떨어진다. 

    

 門前客棹洪波急 (문전객도홍파급)  

  산문 앞 사공은 거센 물결 속에서 급히 노 젓는데

 竹下僧棊白日閒 (죽하승기백일한)  

  대숲 아래 스님은 환한 대낮에 한가로이 바둑 두고 있구나

 一奉皇華堪惜別 (일봉황화감석별)  

  황궁으로 가는 사신 바쁜 걸음 떠나기 아쉬워

 更留詩句約重還 (갱류시귀약중환)  

  시 한 수 남겨 두고 다시 오길 기약하노라 

    


    고려 문종 25년(1071) 북송(北宋) 사행길을 떠났다. 개경에서 예성강을 따라 내려가서 서해를 가로질러 등주(登州, 오늘날 산둥성 펑라이시(蓬萊市)에 기착한 후,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저장(浙江)에서 장강(長江)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400여년 전 수양제가 완공한 운하인 통제거(通濟渠)를 따라 북상하는 머나먼 항로다. 가는 길만 두어 달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그래도 비록 길은 멀지만 거센 물결이 항행을 힘들게 하는 황하(黃河) 항로보다는 평탄한 여정이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황성과 황궁은 사신들의 여독을 녹여낼 만큼 화려하고 장엄하였다. 카이펑(開封)에서의 일정은 바빴다. 우선 신종(神宗) 황제를 알현하여 국서를 올렸다. 다행히 고려의 외교적 노력이 받아드려졌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성에 체류하는 동안 송나라의 이름난 학자들과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소중한 기회를 나누었다. 이제 다시 두 달여를 항해해서 귀국해야 된다. 장강 하류에 있는 진강(鎭江)과 합류하는 진산(金山)에 도착하였다. 이 곳에서 몇 날 머물며 큰 바다를 건널 마지막 채비를 하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 신종 황제의 축수재(祝壽齋)를 올리기 위해  금산사를 찾았다. 깎아지른 기암괴석 아래로 강줄기가 휘감아 돌아가고 있다. 절벽 위에 우뚝 선 불탑의 그림자가 강물에 거꾸로 드리워져 있다. 산사의 편경 소리가 저 하늘의 달까지 다다르는 듯 구름 사이로 멀리 울려 퍼진다. 사공은 물돌이를 헤쳐 나가느라 부지런히 노를 젓고 있지만, 산사의 스님은 대 숲에서 태평스럽게 바둑을 두고 있다. 참으로 한적하고도 멋진 경치다. 금산사는 동진(東晉, 317년-420년) 때 창건된 선종(禪宗) 불교의 고찰이란다. 700여년 전인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동진에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에 의해 삼한 땅에 최초로 불교가 전파되었다고 하더니 이 절이 바로 그 시기에 지어진 절이라니 그 더욱 감회가 무량하다. 사행길만 아니라면 여러 날 쉬어 가고 싶건만, 맡은 임무가 막중하니 사사로이 감흥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시 한수로 다시 올 기약을 삼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간다.


  이 시는 고려 문종 시기 박인량(朴寅亮, ?-1096)이 송나라로 사신행차를 떠났던 1071년 중국 진강의 금산에 올라 지은 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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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협의를 위해 본 시화(詩話)의 컨텐츠를 

별도 보관한 베타 버전(Beta Version)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저자의 이메일(solonga21@gmail.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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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중국인들이 천고(千古)의 명시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장계(張繼, ?-779)의 「풍교야박(楓橋夜泊)」, 서호(西湖)에 정박한 배에서 한산사의 밤 종소리를 듣는 나그네의 회포를 연상시키는 절창이다.      




가을바람에 나그네는 시름에 겨운데
달이 진 동정호에 물결이 인다


글씨: 허봉(虛峰) 길재성(吉在成)

표지 그림: 홍푸르메 <빛이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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