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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26)

by 천산산인

동방의 향기:

한시(韓詩)로 읽는 역사와 인물 (26)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 遣懷 (견회) >

-- “회포를 풀다”

倏忽百年半 (숙홀백년반)

홀홀 지나간 반 백 년 세월

蒼黃東海隅 (창황동해우)

허둥대며 동해 한구석에서 지내었도다

吾生元跼蹐 (오생원국척)

우리의 삶이 본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世路亦崎嶇 (세로역기구)

세상 길 또한 험난하였네

白髮或時有 (백발혹시유)

때가 되면 혹여 백발도 생기겠지만

青山何處無 (청산하처무)

내가 돌아 갈 청산이야 어딘들 없으랴

微吟意不盡 (미음의부진)

나직이 읊조리니 생각 끊임없어

兀坐似枯株 (올좌사고주)

마른 나무 등걸처럼 오뚝이 앉아 있도다.


어느덧 반백년 인생을 살아왔다. 광활한 중국 땅을 두고 동해 변방의 고국 고려에 와서 내 뜻을 펼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돌이켜 보니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는지... 인생이란 것이 본시 살얼음 위를 걷는 것이라지만, 내가 걸어온 세상길은 더욱 험난하게 느껴짐은 어쩐 일인가? 이제 흰 머리칼도 하나 둘 올라오는데 아직도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그냥 떠나 버려도 어디엔들 내가 돌아 갈 청산이 없을쏘냐? 빈 방에 홀로 앉아서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리자니 온갖 생각이 끝없이 떠오른다. 망상(妄想)이로다. 자세를 똑바로 앉아 보지만, 어쩌랴 꾸부러진 내 모양새가 마치 늙은 나무 등걸 같구나.


이 시는 고려 말기의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며 지은 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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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협의를 위해 본 시화(詩話)의 컨텐츠를

별도 보관한 베타 버전(Beta Version)으로 만들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은

저자의 이메일(solonga21@gmail.com)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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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의 서술처럼 그는 푸른 산을 선창에 가득 담고 조각배에 홀로 앉아 푸른 물결을 따라 저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갔다.

선창 가득 푸른 산을 담고
저 피안의 세상으로 떠나간 시인




글씨: 허봉(虛峰) 길재성(吉在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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