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과 호박죽

- 익숙해지기엔 아직 부족한

by 소개화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사실은 사회적거리두기를 1단계로 내릴 때가 아니었는데도 무리하게 내렸던 탓에 코로나가 더 심각해 진 것이리라. 그래도 코로나 덕에 한 달짜리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동안 코로나 하루 500명대로 더욱 심각해져서, 사무실 사람들과 가족을 위해 시댁에 12월 한 달간 가지 않기로 했다. 겨우 한 달 안가는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겠지만, 거의 매 주 가던 입장에서는 오랜시간 못보게 되는 것이다. 어머님과 아버님도 그래오냐 라며 다 이해해주셨다.


코로나로 한동안 못 올 시댁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요리는 무엇이 될까 궁금해 부엌을 기웃거렸다. 커다란 솥이 가스렌지 위에 올라가서 대기하고 있다. 내가 알짱거리자 어머님께서 솥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슬쩍 보여주셨다. 솥에는 숭덩숭덩 썰어 넣은 샛노란 호박조각과 호박이 잠기고도 남을 만큼 낙낙히 부은 물이 담겨있었다. 어머님은 호박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호박이 어느정도 끓어 어머님께서 팥을 한 대접 넣으셨다. 미리 삶아둔 거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미리 재료를 다 손질하고 삶고 쪄서 냉동실에 넣어두시는 걸 잘 하신다. 꼭 우리 엄마처럼. 호박이 끓으며 나는 은근한 냄새가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 엄마와 만들어 먹던 호박죽도 생각 났다.


부엌이 추워 방으로 들어와 뜨끈한 이불밑을 파고들었다. 사실 못 견딜 추위는 아니지만 어머님과 호박죽이 완성될 동안 끊이지 않고 대화 할 자신이 없었다. 어머님은 이런 시어머니가 세상에 어디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잘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아직은 엄마와의 관계처럼 대화의 공백이 자연스러운 관계는 아니다. 이게 지금 나와 어머님과의 한계인것 같다. 어머님도 간혹 내가 별일 없이 부엌에 알짱 거릴때면 부담스러우신지 어여 방에 들어가보라고 하실때가 많으니까. 결혼 8년차인데도 그냥 말없이 있으면 어색한게 고부간의 사이라는건가? 하지만 난 어머님이 좋다. 언젠가는 둘이 말 없이 앉아있어도 자연스러운 날이 오겠지.


이불밑에서 남편과 꼬마가 노는 모습을 보며 몸을 지지고 누워있노라니 어느새 호박죽이 완성되었는지. 어머님께서 온 가족들을 부르신다. 거실에 내 온 나무 밥상에는 호박죽 그릇이 6개. 노오란 호박죽에는 밥알과 팥이 들어있다. 아, 이런 어머님. 어머님과 저, 맞지 않는 것을 하나 더 찾았어요. 어머님은 호박죽에 밥알, 팥죽에는 칼국수가 들어간 걸 좋아하시지. 나는 호박죽은 쌀가루로 쑨 것을 더 좋아하고, '팥죽에는 새알심이지!' 라고 생각한다. 팥죽에는 새알심 아닌가? 나는 시집오기 전까지는 호박죽에 쌀을 넣고, 팥죽에 칼국수를 넣은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 티비로 본적은 있어도 나의 내면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호박죽에 밥알이 있어서 걸리적 거릴 터라 망설이던 나는 시댁 식구들 앞에서 싫은 티를 낼 수 없어서 그대로 한 입 먹어보았다. 달다, 엄청 달다. 약간 슴슴한 맛에 먹었던 어릴 적 호박죽과는 조금 달랐다. 원래 호박죽, 팥죽 먹을때는 반찬을 잘 안먹는데, 단맛을 상쇄시키기위해 무김치를 수저에 올려서 죽과 함께 먹었다. 무김치는 농사지은 무로 어머님이 담그셨는데, 올 해 가물어서 무가 매운맛이 강하다고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익은 무김치는 아삭아삭 시원하니 아주 맛있었다. 무김치와 함께 먹으니 단맛이 강한 쌀알가득 호박죽도 꽤 괜찮은 맛이다. 연신 무김치를 올려서 한그릇을 뚝딱 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몇 년을 먹다보면 나도 밥알 들어간 다디 단 호박죽이 익숙해 지려나. 결혼 7년이 이났지만 나에겐 어머님과 호박죽은 아직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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