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남편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니.
벌써 며칠 째냐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해 봐.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이렇게 사람 피를 말리고 어디서 뭘 하느라 연락도 없니.
재윤이 재민이 걱정도 안 돼? ‘
나는 또 대답도 없는 카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읽지 않은 톡이 벌써 200여 개를 채워가고 있다.
'아니 아니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자기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그냥 바람 쐬다 오는 거지.
너무 힘들면 회사도 그만둬 내가 돈 벌게 ‘
나는 협박과 회유와 사과와 애걸과 걱정을 번갈아가면서 하루에도 수십 통 씩 메시지를 보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경찰에선 정황상 단순 가출일 수도 있고 실종으로 확정하기 어려우니 일단 신고해 놓고 기다려보란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서에 한번 출두해서 신고와 진술을 하고 한번 담당 형사가 집에 와서 이것저것 형식적인 조사를 하고는 그만이다. 경비 아저씨와 관리 소장과 형식적인 탐문 조사와 cctv 등을 조사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별다른 수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필 우리 동 입구에 설치된 cctv 몇 대가 고장 중이라 남편이 나가는 영상은 찾을 수가 없었다는 연락만 왔다.
며칠 전 남편은 아무런 연락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막내 아이가 아직 나한테서 독립을 못한 데다가 기상과 수면시간이 달라 남편은 몇 달 전부터 작은 방에서 혼자 자는 때가 많았다. 그날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혼자 출근을 했거니 생각했다. 직장에서 회식이 있을 때도 있지만 10시를 넘기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것도 전화 한 통 없이. 전화를 해봤지만 신호는 이미 꺼져 있었다. 회사로 전화해 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고 그제야 나는 그의 회사동료 누구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결국 밤을 홀딱 새운 채 기다리다 이틑 날 남편의 전화기 전원이 여전히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남편의 회사로 찾아갔다. 회사에선 휴가를 내고 어제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한편 안심이 되었다. 어떤 사고라기보다 분명 남편은 계획이 있었던 거니까. 뭔가 찜찜했던지 후배 직장 동료라는 사람이 회사를 힘겹게 걸어 나오는 나를 뒤따라 나섰다.
“ 이 과장님이 요즘 좀 통 말씀도 없으시고 좀 평소와 다른 사람 같기는 했었는데 아 그렇다고 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사모님한테도 말씀 안 드리고 휴가를 내신 거 보니까. 어디 혼자 여행하시는 거 아닐까요. 요즘 뭐 등산 장비 그런 거 구입하고 그러시던데.. 너무 걱정 마세요. 연락 오실 거예요….”
그러면서 명함 한 장을 내밀고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내 연락처도 받아갔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최근 조금 이상했다. 연애시절부터 그는 운동이나 아웃도어 같은 활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어 달 전 아이들이 조르는 통에 글램핑을 다녀온 뒤로 갑자기 캠핑과 등산 백패킹, 자전거 여행 등등 여러 아웃도어 활동들을 이리저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하루가 멀다 하게 현관 앞에는 택배가 쌓여갔다. 배낭, 텐트, 침낭, 등산화 그리고 여러 알 수 없는 장비들이 잇달아 배달되어 왔다. 처음엔 평소 항상 밖에 나갈 줄 모르는 그가 답답했기에 이런 관심을 가지는 게 왠지 반가웠다. 거실 안에 배달된 텐트를 펼쳐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등산 용품들을 커다란 배낭에 차곡차곡 담아보기도 하면서 남편은 전에 없던 생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는 가출 전까지 아직 한 번도 그 짐들을 짊어지고 어딜 가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산 텐트며 배낭이며 침낭 같은 것을 보면서 우리 언제 캠핑 또 가냐고 들떠 있었지만 남편은 아이들에게 그래 어디든 가자라고 말만 하고 언제 갈지 기약도 없는 사람 같았다. 그저 거실에서 몇 번 텐트를 펼쳐보았는데. 텐트는 너무 작아서 두 사람이 겨우 살을 맞대고 들어가 누울 정도였다.
‘ 왜 이렇게 작은 텐트를 샀어. 우리 4 가족이 들어가려면 훨씬 커야 할거 같은데”
“이건 나 혼자 쓰려고 산 거야. 가족용은 안 샀어”
“ 머야 당신 혼자 캠핑가게”
“ 캠핑을 하려는 게 아니야.”
“ 그럼 뭘 하는 건데?”
“ 내 공간을 찾는 도구들이야 “
생각해 보면 그때 그의 대답이 수상했다는 걸 나는 눈치챘어야 했다.
“그래, 당신도 좀 밖에 나가서 등산이던 낚시던 해봐. 매일 집에서 핸드폰만 쳐다보지 말고 “. 나는 그냥 주말에 그가 애들을 가끔씩 데리고 야영이든 캠핑이든 탐험이든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면 나 혼자 좀 집에서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며 책이라도 읽는 주말을 가질 수 있게.”
그가 사라지기 며칠 전 새벽에는 거실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갔다가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거실에는 싸다 만 건지 싸고 남은 짐들인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남편이 거실밖을 미동도 않고 서서 내다보고 있었다.
“ 뭐 하는 짓이야. 밤에 잠 안 자고. 도둑인 줄 알았잖아”
“ 응. 미안. 근데 잠이 안 왔어. 어떤 걸 넣어야 할지. 가장 좋은 배합으로 배낭을 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당장 짐을 싸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았어.”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저 수학여행 가기 전 날 마음 설레고 그랬던 거랑 비슷한 거겠지 하며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 그러니까 생존에 필요한 가장 미니멀한 구성을 찾아보고 있어. 근데 어쩔 때는 이것도 저것도 욕심이 나고 또 어쩔 때는 이런 건 없어도 되진 않나 싶고. 잘 결정이 안되네”
“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어디 캠핑장이든 요즘 뭐라더라 비박이라나 머 그런 거든 일단 좀 나가봐 밤에 소란스럽게 이러지 말고. 캠핑을 글로 배웠어요쟎아 이건 “.
남편은 고지식한 데가 있었다. 또 조심성이 많았고 그래서 돌다리가 아니라 금문교도 두드려보고 건널 사람이었다. 난 그가 이런저런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준비를 철저히 하는 거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의 실전이 영원한 가출이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나가라고 한 말을 백번 고쳐 거두고 싶었다. 식비와 교통비를 제외하고는 자신을 위한 지출이 거의 없을 만큼 검소한 그가 저런 장비들을 아낌없이 구입할 때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의 불찰이 원망스러웠다.
경찰에서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 핸드폰 위치 추적을a 했는데 마지막 신호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잡혔다고 했다. 신용 카드 사용도 전무해서 생활 반응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지금 전국 국공립공원에 남편의 신원을 보내 확인 협조를 취하고 있는 중이니 좀 더 기다려 보라는 사무적인 말투로 담당 형사의 대답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뉴스를 보기가 겁났다. 혹시라도 산에서 조난을 당한 사람들이나 실족사한 사람들의 기사가 나오면 어쩌나 겁이 덜컥 났다. 언젠가 야산에서 출몰한 멧돼지의 기사나 심지어 큰 국립공원에서는 곰이 나타났다는 기사도 종종 지나쳐 본 것 같았다. 다행히 차를 가지고 가진 않았으니 혹여나 번개탄 같은 걸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벌이진 않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가 가출한 지 4일쯤 지나 어머니가 올라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처음 가출 소식을 전화로 전했을 때 어머니는 의외로 너무 담담했다.
‘어린애도 아니고 어디 머리 좀 식히러 갔겠지. 좀 만 더 기다려 보거라. 내가 아는 한 엉뚱한 짓 할 놈은 아니니까. 곧 연락 오겠지. 내 여기 일 정리되면 한번 올라가마.’
어머니한테만 무슨 연락을 하고 어딜 간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연애시절까지 합치면 15년을 넘게 알고 지냈는데도 어머니는 좀처럼 가까워지기가 힘들었다. 홀몸으로 작은 음식점을 해오며 아들을 키워오신 어머니는 강하고 투박한 생활인의 모습이 배어 있었다.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친절하고 붙임성 있게 손님들을 대할 때와는 달리 아들인 남편이나 내게는 필요한 말씀 만을 제외하곤 언제나 무뚝뚝하신 편이었다. 나는 대학 때 엄마를 일찍 여의어서인지 시어머니인 당신을 정말 친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살갑게 대해 보려 했지만 정작 당신은 아들 집에 오는 것조차 이상하리만큼 꺼리셨다. 남편도 고향에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명절이나 생신 외에는 잘 찾지 않았고 2주에 한번 정도 의무적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가끔 손주들이 보고 싶으시면 김치나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는 핑계로 주말에 한번 다녀가라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애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대체로 택배로 보내고 마시는 편이었다. 남편이나 시어머니 모두 돌아가신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으며 사실 극도로 피하는 눈치였다. 연애시절에 남편에게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면 그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피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더 캐묻자 버럭 화를 냈던 적이 있어 나도 그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으리란 짐작만 하고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는 상경하셔서 문득 시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머니가 전한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시아버지는 전문 산악인이셨다. 지금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등반 대장도 그의 후배였다고 한다. 젊은 시절 1년에 한두 번은 해외의 유명한 봉우리들을 탐험했었고 국내에 있는 동안에도 산악회원들과 수시로 산에 머물렀다. 결혼 후 남편을 낳으면서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약초를 캐서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정착생활을 하는 듯싶었다. 물론 약초를 캐느라 1년에 반은 산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다. 어머니는 등산로 입구에서 조그만 음식점을 차렸고 넉넉하진 않아도 모자람 없이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높고 험한 산에도 자주 올랐다고 했다.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라난 남편은 자신도 언제가 아버지가 갔던 산과 오지들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되리라고 늘 떠들고 다니며 시아버님을 잘 따랐다고 했다. 그러나 시아버지에게 집은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결국 그러한 정착이 아버님의 방랑벽을 잠들게 하진 못했다. 남편이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만류하는 어머님을 뿌리치고 아버님은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를 탐험하는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설원에서 부하대원을 구하려다 함께 그대로 실종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남편은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좋아하던 등산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당신도 시아버님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감추느라 내색하지 않았지만 아들인 남편의 태도는 사춘기의 아이라기에는 뭔가 너무 절제되고 의뭉스러웠다. 그리고 그 이후론 그 시골 학교에서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치는 일 없이 공부만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1년 후부터 아버님 기일을 전후로 며칠씩 가출을 하곤 했다고 했다. 아무런 연락도 남기지 않고 그냥 학교도 빠지고 집에도 오지 않고 있다가 1주일 정도 지나면 노숙자의 행색을 하고는 조용히 집으로 들어와 또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한 모범생으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했다. 직장을 갖기 전까지 그런 그의 실종 아닌 실종은 그렇게 여러 번 반복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마 그 병이 다시 도진 것 같다고 하셨다. 문득문득 제 아버지를 닮아 산엘 가겠다고 할까 봐 두려우셨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유랑’이란 이름 대신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까지 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의 그 외출인지 가출로 조용히 정착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의 연례적인 실종에 어머니는 일부러 더 캐묻지 않으셨다고 했다. 더구나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리고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기에 혹시라도 당신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고향집에 오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어머닌 내가 너무 걱정할까 봐 이런 말들로 안심시켜 주시려고 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니 그래도 좀 불안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은 의심이 남아 있었다. 늦은 점심 한 끼를 함께 드시곤 하루라도 주무시고 가라는 나의 권유를 뿌리친 채 어머닌 곧바로 다시 지리산으로 내려가셨다. 가시면서 어머닌 작은 앨범 하나를 내게 주셨다. 거기엔 필름카메라로 찍힌 빛바랜 사진들이 비닐 커버 사이사이에 가지런히 꽂아져 있었다. 대부분 10대 초반의 남편과 시아버님이 어딘가 산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검게 그을린 남편의 모습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순박한 장난기와 건강한 웃음이 가득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깨동무를 하거나 허리에 올라탄 사진들에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동경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무리 어릴 때라고 하지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남편과는 사뭇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왠지 사진 속의 아이가 그대로 자랐다면 그는 지금의 남편처럼 꼬박꼬박 직장에 출근을 하고 주말엔 온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이나 보다 꾸벅꾸벅 조는 삶을 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쩐지 그가 돌아온다 해도 나는 그가 너무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그가 낯선 사람이 되어 나타나는 게 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될까 무서웠다.
7일째 되던 날 오전 내게 명함을 주었던 남편의 직장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 연락이 없냐고. 실은 열흘 휴가를 내셨어서 기한 내에 안 돌아오시면 어쩌나 자기도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다고. 그러면서 잠시 뵙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집 근처로 찾아왔다. 집 근처 상가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내가 알지 못한 남편의 회사생활과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 이 과장님이 실은 6개월 전쯤인가 거래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셨어요. 사실 일 만큼은 정말 깔끔하게 하시는 분이시라 저희 부장님 상무님 다 이 과장님을 신임하셨거든요. 회식이다 뭐다 술 한잔을 안 드시니까 좀 재미는 없으셨지만. 어쨌든 근데 그게 사실 뭐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순 있는 거잖아요. 근데 사실 제가 좀 경솔했습니다. 그냥 농담처럼 이참에 직장을 옮겨 볼까. 연봉도 더 챙겨준다던데 하면서 저한테 지나가는 말로 하신 건데 제가 술자리에서 다른 동료 한데 말하는 바람에 오해가 좀 생겼어요. 아, 물론 과장님은 직장을 옮기거나 그럴 생각이 전혀 없으셨어요. 근데 이상하게 소문이 나서 그게 부장님 상무님 귀에 들어가면서 좀 일이 꼬였거든요. 원래 과장님 주 업무가 그 거래 회사와이 일인데 부장님이 그 일에서 과장님을 제외시키고 저를 박아 넣으셨어요. 물론 부장님 하고 과장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자꾸 접촉하는 게 껄끄러우셨던 모양이에요.
과장님도 서운하셨을 텐데 그냥 넘기시고 그렇게 잊혔는데, 이번 일로 회사에선 아무래도 과장님이 이직을 준비하는 게 아니냐고들 또 수군대고 그러네요,. 그래서 사실 좀 연락이 빨리 닿았음 하는데…”
“ 잠깐만요. 그러니까 지금 생사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두고 그냥 회사 배신했다 뭐 그런 건가요 “
나는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 다짜고짜 따져 묻고 싶은 생각만이 앞섰다. 나의 정색에 그도 적지 않게 당황을 하는 눈치였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저는 혹시라도 과장님이 그냥 어떤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라면 회사사정이 이러니… “
“이보세요. 지금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고요. 지금 이게 여기 와서 할 말인가요. 걱정도 안 되세요. “
“ 저, 저는 다만. 과장님이 회사에 계속 남아 주셨음 하는 마음에.
“글쎄 연락이 돼야 뭘 말하든 말든 하죠 “
“근데 정말 연락이 안 닿는 거예요 혹시 정말 이직을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이 사람이 정말 ‘ 하려다 꾹 참고 내가 단호히 말했다,
“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런 말을 내게 한 적도 없고 직장을 옮길 일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휴가가 끝나기 전에 돌아올 것이라고 절대 무책임하게 가족을 남겨두고 헛 짓 할 사람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고 싶었다. 그저 연례적인 실종일 뿐일 것이라고.
집에 돌아오면서 차라리 직장을 옮기려고 고민 중이거나 회사하고 정리를 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이거나 그런 거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5층버튼을 누르는데 벽면에 붙은 아파트 소식지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뒤 있을 엘리베이터 점검 일정에 대한 안내문이었다. 아파트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엘리베이터 정기적인 점검을 하는데 점검시간에는 1-2호 라인과 3-4호 라인의 시간 차이를 두어 고층 주민들의 경우에는 아파트 옥상을 개방해 다른 쪽 라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옥상에서 자신의 라인 쪽으로 이동해 걸어 내려오도록 하는 편의를 제공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그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탈 일을 피했지만 나는 한번 아이를 데리고 학원에서 오는 길에 딱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3-4호 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28층까지 올라갔다가 옥상에서 다시 1-2호 라인 계단을 타고 25층인 우리 집으로 와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문득 남편의 핸드폰 마지막 발신지가 아파트라는 경찰의 추적내용과 하필 고장 나서 집을 나갔는지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했던 cctv의 판독 내용 등이 떠올랐다. 나는 25층에 머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고 지하 1층 버튼을 다시 눌렀다. 관리실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겁지겁 관리실 문을 열자마자 다짜고짜 옥상 cctv 좀 보여달라고 말했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관리실 직원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처음 경찰과 함께 조사를 할 때 나를 보았던 관리소장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게 다가와 진정하시라며 물을 한 잔 건네왔다. 관리 실장은 내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 남편이 옥상에 있을 것 같아요. cctv좀 볼 수 있나요 “
관리실장은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럴 리가요. 옥상문은 잠겨 있어서 누가 함부로 들어가고 그러지 못하는데. 그리고 옥상에 CCTV 가 있긴 하지만 옥상 내부가 아니라 아파트 외부 아래 공간을 비추고 있어서 옥상 안쪽 공간은 확인할 수가 없어요”
“ 왜 엘리베이터 점검하는 날 옥상 개방하잖아요. 그거 누가 열고 닫는 거죠’
“ 당일 근무자인 경비원이 하는데요 왜요”
“ 혹시 깜빡하고 안 잠갔을 수도 있잖아요 “
“ 그럴 린 절대 없을 거예요” 왠지 더 단호해지는 관리소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에 나는 당장 함께 옥상에 올라가 보자 종용했다. 관리소장은 열쇠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발걸음이 빨라지는 나를 뒤따랐다. 엘리베이터에 타면서도 그는 계속 그럴 리가 없다며 구시렁대었다. 25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옥상으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는데 왠지 나는 나의 직감이 옳다는 생각에 점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옥상문의 문고리는 열쇠 없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압력의 차이를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옥상으로 튀어나가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눈앞에는 텅 빈 옥상의 풍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뒤에 따라오던 관리 소장은 계속해서.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그날 근무자가 누구냐며 혼잣말을 하며 책임 소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옥상 오른쪽 3-4 라인 쪽 계단이 올라오는 구조물 뒤편에서 뭔가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그리로 단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에는 익숙한 텐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주변에는 플라스틱 생수병 몇 개와 개와 먹다 남은 음식과 그릇 몇 개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나도 모르게 욕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천천히 텐트의 지퍼가 열리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휘날리며 남편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다가 일어났는지 주섬주섬을 안경을 찾아 얼굴에 끼고는 다시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보” 그러고는 저도 멋쩍었는지 아니면 날 볼 면목이 없었는지 다시 지퍼를 내려 텐트문을 닫고 말했다.
“미안해. 곧 정리해서 내려갈게. 먼저 내려가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 ”
“뭐라고 이 자식아” 나는 지퍼를 열어 재치고 남편의 목을 잡고 죽일 듯이 흔들어 댔다. 그 바람에 제대로 지지할 때 없이 세워둔 텐트가 풀썩 주저앉았다. 뒤따라온 관리실장은 나를 말리며 남편에게서 떼어냈다. 나는 안도감인지 분노인지 배신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날 남편은 옥상에서 걷어온 짐들을 다 정리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처음엔 화가 나서 그를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나니 나 역시 그를 다그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이 잠들길 기다렸다가 나는 조용히 물었다.
“왜 연락을 안 했어. 연락은 할 수 있었잖아”
“미안해. 근데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어. 아니 그러면 안 될 거 같았어.. 그냥 이런 고립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모르겠어 “
“우리 생각은 안 했어”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잠시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아버지 얘기 했던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니 사라지셨는지 “
“ 어머니 다녀가셨었어. 당신 사라지고 며칠 있다가. 내가 걱정을 많이 하니까 안심시키느라 이야기를 해주신 거 같았어. 당신 전에도 이런 적이 많았다면서 “
그는 잠시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허공에 두고 말을 이어갔다.
“이맘 때면 항상 비슷한 꿈을 꾸곤 했어. 온통 하얀 세상인데 저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와 내 앞까지 다가와서는 다시 나를 지나쳐 멀어져 가. 방한복을 꽁꽁 싸 입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난 직감적으로 그게 아버지란 걸 알아. 그렇게 멀어져 가는 아버지를 부르는데 아무 대답 없이 아버지는 그 눈부신 설원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거야. 꿈속에서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 히말라야 어딘가 있는 설원에서 아직도 살아서 산을 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어렸을 때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아버지랑 함께 다니던 산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어. 왠지 아버지가 나한테 왜 그렇게 세상의 틀에 갇혀 살고 있냐고 빨리 이리로 오라고 부르는 것 같았어. 난 아버지처럼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현실에서 더 뿌리박고 살 방법은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만 했어. 그런데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아버지처럼 혼자 있다고 오는 게 나한텐 일종의 제사 같은 의식이 되었지. 어쩜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와의 기억을, 아니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모험가의 삶을 잠깐 되새기다 왔던 건지도 몰라."
“난 당신이 지금 너무 낯설어. 난 당신이 산을 좋아했다는 것도 몰랐어. 나를 만나고 사는 동안 이런 일들은 전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 내가 끼어들었다.
“ 대학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고 당신 만나고 아이들 키우면서 나는 점점 내가 생각하던 현실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가는 게 왠지 안도감을 주었어. 더 이상 아버지 꿈도 꾸지 않았고 나는 우리 가족. 내 직장. 우리 집에 너무 익숙해져서 옛날에 내가 그렇게 산을 갔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있었어. 근데 얼마 전에 다른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어. 규모가 작아도 꽤 탄탄한 회사인데 나한테 좋은 제안을 했거든. 그런데 도무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삶의 변화가 생기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 어느 순간 나는 내 일상의 루틴을 깨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정말 이런 삶의 모습을 바랐던 걸까. 그냥 아버지처럼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 쓸쓸하고 공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무서웠던 건 아닐까. 끊임없이 그런 공포로부터 도망 다닌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용기도 의욕도 동기도 찾을 수가 없었어.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월급과 꼬박꼬박 차감되어 가는 대출 이자와 생활비 교육비 등등을 쓰고 남는 약간의 여유들이 다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숫자 놀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 이상하지.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까 다시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냥 어릴 때 늘 그랬으니까 산에 좀 다녀오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막상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왠지 영영 그 산에서 길을 잃고 말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날 밤에도 망설이다가 그냥 배낭 무게를 점검해 보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다가 옥상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이 열리더라고. 그런데 옥상에서 바라본 이 아파트들이 그 나름대로 능선을 이루고 계곡을 만들고 있더라. 여기도 숲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이 숲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대로 그 자리에 텐트를 펼치고 누웠어. 그런데 그 좁은 공간이 너무 아늑했어. 1평도 안 되는 그 텐트 안 공간이 37평 우리 아파트보다 훨씬 넓고 여유롭게 느껴졌어.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거의 하루를 꼬박 잤던 거 같아. 그냥 내 인생의 마지막 일탈이 아닐까 생각했어. 온전히 사람들이 사는 공간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완벽히 차단된 그 공간이 너무 맘에 들었어. 방해받고 싶지 않더라 그 일주일을.
낯설어하지 않아도 돼. 난 변한 게 없어. 당신과 아이들 그리고 우리 가족 그리고 이 집도. 그냥 아마 이런 일도 다신 없을 거야. “
남편은 휴가기간을 정확히 다 마치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몇 주가 지났다.
‘당근’ 스마트폰에서 알림 메시지가 떴다. 전에 올렸던 상품에 누가 구매 의사를 밝히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만원만 빼주세요. 딸랑 4만 원 자리 중고 물건에 만원이나? 나는 무시하고 창을 닫으려다 잘못해서 최근 동네 상품을 보여주는 창을 열었다. 얼핏 보는데 좀 이상한 문구가 보였다. “제 아지트를 팝니다” 클릭했더니 익숙한 사진이 보였다. 남편을 찾았을 때 보았던 옥상의 텐트와 캠핑 장비들이 파란 하늘과 하얀 벽을 배경으로 찍혀 있었다. 마치 여행사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판매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디에서든 펼쳐보세요. 당신만의 장소가 탄생합니다. 단 한 번 사용한 것들입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아지트를 갖게 될 거예요. 제가 엄선한 구성이라서 일괄 판매만 합니다. 이대로 가져가시지 않는다면 그냥 제 맘 속의 공간으로 영원히 접어 두겠습니다. “
나는 닉네임을 확인해 보았다. 남편의 닉네임은 개명 전 본명인 ‘유랑'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왠지 자꾸 코 끝이 시렸다. 가을이 한참 지나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