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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파 Nov 15. 2024

단편소설: 층간소음

단편소설

층간 소음


처음엔 위층의 소음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층간 소음은 발생할 수 있고  나도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래층에 아무런 소음을 만들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 의식된 소리는 망치발소리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분명했다.   특히 저녁 7-9시 사이에 좀 심해졌다. 대체로 아이들이 학원 다녀오고 저녁 먹고 숙제 끝내면 약간의 자유시간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때  좀 뛰어노는 것이겠지.  초등학생인 우리 애들도  주의를 주지 않으면 가끔  그렇게 쿵쿵 뛰어다닐 때도 있으니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그 정도는  이해해야지 하고 넘어갔었다.  또  이래저래 집안일하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시청하고 그밖에 무언가 집중하다 보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며칠 동안 도배며 간단한 인테리어를 한다고  우리도 소음을 낸 터이라  새로운 이웃들과 얼굴을  붉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번 트인 귀는  무뎌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작된 코로나는  그것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지난  가을  이 아파트에 이사 올 때 까지만 해도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은 장사가 꽤 잘 되었다.  주인인 전세금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바람에  차라리 잘됐다 싶어 식당에 좀 더 가까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전세 자금 대출은 이미 다 상환했고. 가게를 얻을 때  받은 대출도 2-3 년이면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전세금에 조금 더 보태 진짜 우리 집을 살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매출은  마치 반감기를 지닌 동위원소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운영난을 메꾸기 위해  알바생을  두 명 자를 수밖에 없었고 대신 내가 가게 일을 도왔다.   남편은 결혼할 때 내게 가게 일만은 시키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요식업에 뛰어들어 홀서빙부터  설거지며  주방 보조며 닥치는 대로 궂은일을 했다.  자신의 가게를 열고 안정화시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식당일의 고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와이프한테까지  그걸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그의 듬직함에 반해 결혼을 했고 10여 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조금씩 조금씩 생활의 기반을 확장해 왔었다. 나는 일을 안 하는 대신  사내아이 둘의 양육에 전력을 다했고  남편이 집에 와서 쾌적한 환경에서 쉴 수 있게  집안일을 야무지게 하며 내조를 해왔다.   그런 내게  먼저 가게일을 좀 도와줄 것을  말하는 게 남편으로는  쉽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짐작하고 내가 먼저  가게에 나가겠다 말을 했고  남편은 미안해하면서도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남편은 8시가 되면 출근을 하고 나도 아이들 아침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10시까지 식당으로  나가 일을 돕고 저녁 6시쯤 돌아와 아이들을 챙기는 식이었다.  손님이 좀 많은 날은 주방보조 한 명과 서빙 알바생 한 명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  아들 둘을  식당으로 불러 저녁밥을  먹이고  밤늦게 같이 귀가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다행히  이 동네로 가게를 옮기면서  배달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온 터라  배달 매출이 그나마 받쳐주어  판데믹에도 월세를 조금 웃도는 매출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생활비는 전처럼 넉넉하게 남지 않았고  저축해 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축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은 손님이 줄면서  실질적으로 일이 줄어들었지만  그에 비례해 체중도 줄어들었고 압박감 때문에  탈모증상도 나타났다. 나는 나대로  변화된 일상의 패턴에 적응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사내놈 둘은 쫓아다니면서  청소를 해도 태가 안 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기에  아침나절  잠시 집안일을 해도 저녁에 오면 엉망진창이 되어 있기 일쑤였다.  나 역시 식당일을 하다 보니 피곤이 누적되면서  빨래나 청소를 뒤로 미루게 되는 경우가 차츰 빈번해지고 집은 서서히 어수선한 상태가 되어갔다.  그래도  그동안 남편이 이 식당을 꾸려오며 힘들었을 생각을 하면 그동안 내가  철없이  남편의 속을 긁었던 일들도 모두 후회가 되고  나름 우리 가족의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위층의 소음이 점점 신경을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저녁에 들어와 애들 저녁을 챙기고는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어린아이들이 뛰어 돌아다니는 소리였다.  내가 예민해져서 그랬는지 윗집 아이들이 더 심하게 발을 구르고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리는 게 분명했다. 그 집엔 유치원과 초등학생 남매가 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항상 밝게 인사를  했기에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들이었다.  이상한 것은 항상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나 아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주의를 주는데도 자기 손주들이 너무 뛰어다녀 아무래도 폐를 끼치지는 것 같다고 공손히 사과를 하시곤 했기에 사실  불만과 불편을 호소하기도 좀 애매하긴 했다.  말했듯이 처음엔 그렇게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제  윗 층 소음은 더 자주 더 크게 그리고 더 다양한 소리로 바뀌어 갔다.  의자나 탁자를  끄는 것 같은 소리를 비롯해서  뭔가 일정한 리듬의 진동이 반복되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 듣다 보니 그것은 안마 의자나  안마 침대의 진동음일 듯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았다.  한 번 소리에 귀가 트이자 점점 더 예민한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핸드폰 진동음이 계속 울리는 것이 감지되기도 했다.  설마 그런 소리까지 들릴 리가 있나.   내가 예민한 것인가 싶었지만 남편도 그 소리에 대해 언급하자  들린다고 하니 분명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손주들  돌보느라  힘드셔서  안마를 자주 하시나 보다,  핸드폰 진동으로  해놓고 그냥 잠이 드셨나 본데  귀가 어두워 잘 안 들리시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의식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켜지는 안마 진동은  그중 가장 참기 힘든 소음이었다.  웬만하면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잠이 들던 남편도. 코로나 시국이 계속되면서 예민해지면서 그 소리가 거슬리는 눈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은  조심스레 불만을 이야기했다.

“보통 노인네 들은  초저녁 잠이 많다던데 윗집 할아버지는 아닌가 보네” 남편은 돌려서 불평을 했다.

“ 그래봐야 70이 됐을까 말까 이제  정년퇴직한 지 얼마 안 된 분들 인 것 같은데  노인네라 하기에는 좀 그렇지.  신경 많이 쓰이지?”

 “그러게 오늘은 유난히 소리가 잘 들리네. 내일 당신이 한번  윗집에  이야기해보는 건 어때?”   

“내가?”

“ 왜 좀 말하기 그런가?  그럼 내가 얘기해볼까”

“ 아, 아니야. 당신 신경 쓸 일도 많은데. 내가 아침에 한번 이야기해 볼게 “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괜히 이웃간에 분란이 일어날까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며칠 전 윗집 사정에 대해  502호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 집 아들이  바로 앞 동에 살고 있는데  이혼을 하는 바람에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거의 도맡아 키우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엄마 없이 자라는 애들 기죽지 말라고 오냐오냐 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애들 좀  조용히 시켜달라 말하기가  좀 그랬다.  하지만 사실 애들 소리보다 그 안마기 소리가 더  문제긴 했다.   기분 상하지 않고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잘 떠오르진 않았다.


그다음 날 아침에 식당에 나가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윗집 할아버지 부부가  타고 있었다.  나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잠시 머뭇거리다 ‘저..” 하고 말을 꺼내려는데  바로 다음 층 문이 열리고 아랫집 여자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바람에  말할 타이밍을 잃고 나는 다시 주춤 뒤로 물러서 엘리베이터 구석에 기대었다.  

“무슨 말씀하시려던 거 아니었나요” 윗집  할머니가  물어왔다.  나는 당황해서 기대었던 등을 벽에서 떼고  살짝 앞으로 고개를 내밀어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에요’  하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때  아랫집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1502호 맞으시죠?”.

“ 아 네  맞아요’

“저기 죄송한데 , 위에  발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요  아이들이 뛰어다니나 보던데.  제가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보니 좀 예민해서요 “.  아래층 여자는  혹시라도 마스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을까 최대한 말을 또박또박하게 했는데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아  죄송합니다.  애들이 저 없을 때 그랬나 보네요. 주의시킬게요  “ 나는 반사적으로 등을 굽히며 말했다.

그 순간 윗집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는데  할아버지도 멋쩍은 지 시선을  돌려  엘리베이터에 박힌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나는 예상치 못한  제삼자의 등장과 피해자에서 갑자기 가해자로 둔갑한 내 상황이 당황스러워  1층에서 두 집 사람들이 내릴 때까지 정신이 혼미했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차에  타고 나서야  뱃속에서부터 이상한 부화가 몰려왔다.   내 기억엔 층간 소음을 일으킬 만큼  주의 없이 행동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컴플레인을 받을 만큼은 분명 아니라 생각했다.  아들 녀석들한테도 평소 그런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녀석들도 분명 그렇게 큰 소란을 피우진 않으리라 믿었다.   아니지. 요즘은 내가 일하는 바람에  학교 다녀오면  저희들끼리만 있다가 학원에 가거나 집에서 놀 테니 그때 시끄럽게 하며 놀았나 보군. 하지만 그래도 면전에서 그렇게 또박또박 불만을 듣고 나니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층간소음의 피해자인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 , 왜 나만 가해자가 된 것처럼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나도 윗집 부부에게  안마기 사용을 밤에만 이라도 자제해 달라 이야기했으면  좀 나았으려나..   생각해 보니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 자체를 못 할 상황이 돼버린 것 같았다.  윗집 부부 눈에는 나 역시 층간 소음의 주범자로 보일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윗집에 뭐라 이야기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생각 할 것 아닌가 말이다. 뭔가 상황이 고약하게 꼬여버린 것만 같았다.  불똥은 애먼 아들놈들에게로  튀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며 꾸짖고  층간소음에 대한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코로나는 끈질기게 이어졌고 식당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으며 윗집의 소음은 그칠 줄 모르고 점점 더 신경을 자극했다.  가게의 매출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졌고 저축한 돈도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잠자리에서 문득 남편은 내 차에 대해 물었다.

“ 차를 쓸 일이 많이 있나?”

 남편이 말하는 것은  내 명의로 재작년에 새로 산 차였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남편 차 말고 하나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넌지시  남편에게 말했는데  1주일 후에 바로 나를 자동차 매장으로 데려갔다.  식당이 잘 되는 것도 다 내 내조 덕분이라고 안 그래도 차를 하나 뽑아줄 생각이었다고 했다.  사실 나는 결혼 전에도 뚜벅이 생활을 했기에 내 명의로 된 나의 자동차를 처음 가져 보는 것이었다. 먼지라도 묻을 새라  조심조심  애지중지  사용해 오던 애마였다.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사실 식당 근처로 이사 온 이후로는 남편도 출퇴근 때 특별히 집에서 짐을 실어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자전거를 이용했고  나도 식당일을 돕다 보니 특별히 차를 써야 할 일은 없었다.  할부도 그 당시 상황으론 부담이 되었기에  지출을 줄이자면 처분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왠지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왜?  차  팔까?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

“ 괜찮겠어?”

“….’

“아니야,  어차피 중고로 팔면 그 돈으로 남은 할부금 갚으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 그냥 두자”

“ 그 할부금이라도 안 나가는 게 어디야.  자기가 한번 알아봐 난 잘 모르니까”   말하면서도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공백을 어김없이 윗집의 안마의자인지 침대인지 모를  진동소리가  메꾸었다.

“ 그때  얘기 했나. 윗집?”

“ 어… 응… “. 나는 그날의 사정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얼버무렸다.  윗집 소음은  자동차의 엔진음처럼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아랫집 여자를 다시 마주쳤다.  사실 전에 층간소음에 대한 지적 이후 왠지  아래층을 마주칠까  엘리베이터 타기가 좀 껄끄러웠다.   간단히 목례를 하고 혹시라도 또 항의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숨죽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 저 혹시 지난번 말씀드린 것 기억 나시죠.   사실 어제도 또  쿵쿵거리는 소리가 좀 많이 들려서요  “

순간적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내가 집에 있는 동안 그렇게 소음을 만든 적이 없는데 이 여자는 왜 자꾸 이러지. 애들한테도  그렇게까지 강조해서 말했는데 설마 또 그랬을려구.  게다가  아들놈들도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간이 있어서. 오후 내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 저기, 그런데 어떤 소리가 주로 몇 시쯤에 들리는 데요?  저희가 집에 그렇게 오래 있지 않아서..” 나는  일부러 좀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 글쎄요  오후 2시에서 6시 정도에 좀 심한 것 같아요. 제가 그 시간에 거실에서 글 쓰는 일을 좀 하거든요   근데 그때마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요 “

“그럴 리가 없는데.  저희 애들이 그 시간에 있을 때도 있지만  학원에 갈 때도 있고 해서… 네, 뭐.  어쨌든  다시 주의를 줄게요 “

“ 네 좀 부탁드려요. “ 여자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듯 당당했다.

그때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아랫집 여자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얼굴을 붉히고 따질 뻔했다.

설사 아이들이 좀 뛰어다녔더라도 그게 솔직히 얼마나 시끄럽다고... 툭하면 앉아 게임이나 하는 아이들인데 무슨    소음을 만들 일이 있다고 … 이웃 간에 그 정도도  이해 못 하나.  왠지  아무런 항변을 못하고 그냥 듣고만 있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위층의 소음을 참고 있는 것도 호구재비가 된 것 같아 분했다.

그렇게 마음을 삭히기도 전에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를 보자마자 나는 괜한 부아가 끓어올랐다.  나는 왜 윗집에 항의를 못하고 있는 거지.  나는  원격으로 열었던 차문을  키를 꾹 눌러 다시 닫고는  엘리베이터로 되돌아왔다.  그 길로 위층에 가서  그놈의  안마기 소리 좀  취침시간에 안 들리게 해달로  말할 요량이어 었다.    그새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16층에 멈춰 섰다가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지하에서 멈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윗집 할아버지 내외가 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구부정하게 허리를 부여잡고 있고  할머니가 부축을 하고 있었다.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물으며  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높은 게이지로  상승한 전투력을 일거에 상실한 채  다시 백기를 드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 양반이 어제 애들하고 놀다 허리를 삐끗한 모양인데 아침에 일어나니 더 심해졌나 봐요.  병원에 가보려고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두 양반이 천천히 엘리베이터 내리는 것을 도왔다. 그렇게 아무 소득 없이 두 노인들을 보내고 괜히 다시 집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오는 바람에  가게에만 늦게 도착했다.


며칠 뒤 남편은  한가한 오후 시간에 나에게 가게를 맡겨 두고  내 차를 끌고  중고차 매장으로 갔다.  괜찮다고 말할 땐 그래도 내심 차를 안 팔 수도 있으려나 하는 일말의 기대가 없지 않았나 보다.   남편에게  차키를 건네고  차 안에 있던 몇 가지 개인용품들을  챙겨 가게로 올라오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쓰고 있던 마스크가 유난히 답답하게 숨을 막았다.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게 되어버린 이 시국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나는 신혼여행도 못 가고 결혼 5년 차에  동남아 휴양지에  한번 다녀온 이후로는 해외여행도 한번 못 다녀왔는데 이따위 병을 옮기면서 이리저리 여행하고 돌아다닌 모든 사람들이 미워졌다. 곧 여름이 올 텐데 이 마스크를 끼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 벌써부터  무더운 짜증이 밀려왔다. 그날 차를 처분하고 돌아온  남편과 나는  별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고 집에 와서도 침묵을 일관했다.  나도 그도 그냥 어떤 상실감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침묵의 시간을 여전히 윗집의 진동소리가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우리들의 침묵은 그날의 사건으로 폭발하게 되었다.


차를 판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다.  식당에서 일하는 중인데  전화벨이 울려서 보니 첫째 아이 핸드폰 번호가 찍혀있었다.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아들놈은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다짜고짜 집에 좀 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다그치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낯선 남자가 전화를  넘겨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1502호 주인이신가요?    여기 신고가 들어와서요. 지구대 경찰입니다, ”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찰은  층간소음으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다.   

“ 가능하시면  잠시 오셔서  경위서를 좀 작성하셔야 되는데  여기 자녀분들만 있어서 “

허둥지둥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놀란 가슴은  짜증과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일부는  부주의한 아이들에게 화난 것도 있었지만 사실 아랫집 여자가 너무하다 싶었다.

“ 애들이 시끄럽게 하면 얼마나 한다고 정말 이 여자 너무하는 거 아니야. 신고까지 하다니 “

사정을 몰랐던 남편은 내가 흥분해서 씩씩거리자 진정하라며 자초지종을 물었고 나는 그간의 일을 대충 이야기했다.    

“ 왜 그런 걸 이제 얘기해.   이 녀석들 뭘 어떻게 하고 놀았기에 경찰까지 온 거야”

“ 아니  지금 무슨 얘기 들은 거야 당신. 그 여자가 좀 예민하고 이상하다니까”.  

나는 애들 탓 만을 하는 남편에게 큰소리로 짜증을 냈다.  

집으로 들어서 집안 꼬락서니를 보고 경찰이 밑에 층에서 녹음해 온  소음 소리를  확인할 때까지도 나는  모든 게 밑 층 여자의 유난스러운 예민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안에는  우리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2학년 둘째 아이의 친구들 몇이 더 있었다.   어찌나 뛰어다닌 건지 아이들 머리는 죄다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땀에 젖어 있었고. 식탁 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불과 수건 같은 것들이  나와서  마치 무슨 장애물이라도 만든 것처럼 의자에 걸쳐 있었다.  

경찰의 말로는 아래층에서 신고가 접수되어 출동했고  먼저 밑에 층에서 소음을 확인해 보고  올라왔다고 했다.  경찰이 넘겨준  핸드폰에는 쿵쾅대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녹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말고도  몇 차례 아래층 주인인 녹음한 파일이 있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지탈’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지옥 탈출의 줄임말이라는 것도  일종의 술래잡기인데  여러 장애물을 만들고  술래는 눈을 가리고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술래를 유인하는 놀이라는 것도 경찰에게서 처음 들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를 대신해서 남편이 경찰에게 물었다.    

“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

“ 뭐  일단 주의를 해달라는 게 아래층 요청이고  이런 경우 사과 메시지와  차후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서 같은 걸 써주시고 합의를 하시면 될 것 같아요 “

“ 지금 내려가서  사과하면 되나요”  

“ 아 아니요 그냥  저한테 사과 메시지와  재발 방지 각서를 써주시고 사인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제가 전달하면 되고요. 밑층에서도 좀 불편하신 모양이라 …”

남편이  a4 용지에 수기로  사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 두 놈을 불러놓고 다그쳤다.  

“맨날 나 없을 때 이렇게 논 거니 친구들 불러다가”

아이들은 고개만 끄덕이고 말없이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큰 애의 등짝을 내리치며 말했다

“넌 형이 돼가지고 동생이 이런 놀이하면 말릴 생각은 안 하고 같이 놀아 “

남편은 쓰던 종이를 잠시 내려두고  나를 말렸고  놀란 아이들과 친구들을 다독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잠시 뒤  함께 놀던 친구들의 엄마들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꾹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각자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이 시국에 왜 남에 집에 가서 모여 있냐면서  자기 아이들을 나무랐지만  내게 왜 자기 애들이 당신 집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방관했냐고 따지는 눈치였다.  남편은  친구 엄마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 난 왜 우리만 죄송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희들도 애들이 어디서 놀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닌가

잠시 후  아이들과 엄마들 그리고 경찰이 돌아가고  집안엔  정적이 찾아왔다.  아들 두 녀석은  코를 훌쩍이며  어지럽혀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남편은  집 정리가 끝나고 애들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어깨를 툭툭치고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나는 난생처음 경찰이 집에 찾아와서 놀라고 겁먹었을 두 아들에게 다짜고짜 화만 냈던 것이 미안해  저녁에 뭘 먹고 싶냐고  넌지시 물었다.  첫째는 그래도  눈치가 있는지 그냥 조용히 있는데 막내 녀석은 그 와중에도  금세 표정을 바꾸고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막내를 불러 안아주고 멀뚱히 서 있는 큰 애한테도  손짓을 했다.  뒤에서 쭈뼛대고 있다가 다가온 큰 애까지 이 부둥켜 앉고 잠시 아이들의 놀란 가슴을 달래 주었다.  아니 사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나의 화를 다독이기 위함이었다.  신고를 한 아래층 여자도 친구들의 엄마들도  그리고 여전히 쿵쿵거리는 손주들을 방관하고 있는 윗 층 노인들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집에 묶어두는  저 바이러스도  모두 나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남편과 아이들을 보내고 집안 정리를 마친 후 가게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계단실을 통해 윗 층 노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이대로 그들과 마주치면 나는 낯을 붉히며 소음을 줄여 달라고 외칠 것 만 같았기에 잠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머뭇거리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노부부와  낯선 30대 후반의 남자가 함께 있었다.  역시 나는 아래층 여자처럼 모질지 못했다.  그저 목례만 하고  그들 앞에 돌아서  엘리베이터 문 위의 숫자만 세면서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지금 차도 탈 만 한데 괜히 그러네”

“그거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타시던 거잖아요.  바꾸실 때 됐어요.  애들 돌봐주시는 것도 죄송하고.. “

“ 시국이 이래서 어려울 텐데, 참”

“ 말 씀 드렸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저는 외려 덕을 좀 보고 있다고”

“ 그래요  잘 나가는 아들 덕 좀 봅시다.  나도 에어컨 틀 때마다 그 냄새 좀 안 맡았음 했는데 잘됐지 뭐”

“ 지하 내려가면 바로 앞에 세워놨어요.  나가서  같이 시운전해보세요.. 아버지 “

“아 거참, 쓰읍”  할아버지는  혀를 차셨지만  목소리는 들떠 있는 게  분명했다.

 어느새 지하 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나는 깜빡 1층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 안 내리시나요 “.  노부부의 아들이 말했다.  나는 엉겁결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또 가만히 있기 뭐 해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라도 왜 다시 1층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을까. 왜 그 집 아들이 선물한 차가 무얼지 궁금해했을까.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보는 척 멈춰 섰다가 나를 앞질러 가는 노부부와 아들 뒤롤 조심스럽게 쫓아 갔다.  아들은 주차장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양복저고리에서  키를 꺼내 팔을 쭉 내밀었다.   삐릭 소리와 함께  10미터쯤  떨어진  주차라인에서 검은색 세단의 라이트가 부드럽게  주위를 밝히며 자신을 드러냈다.  커다란 삼별 엠블럼과  그릴은 은빛 광채를 내뿜고 매끈한 바디의 표면은 주차장의 불빛 들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아들은 차문을 열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각각 운전석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그러다 물끄러미 이 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시선을 돌려 이내 다른  주차라인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면  손가방을 뒤적였다.  잠깐 동안 나는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닌 내 차의 키를 찾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모는 벤츠 승용차가 내 옆을  천천히 지나 주차장 출구로 갈 때까지  나는 정말  순간적으로 차를 처분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차키를 어디 잃어버린 줄 알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 다시 아파트 지하 입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벤츠가 주차되었던  자리는 내  차를  자주 주차해 두던 자리였다.  왠지  비어있는 자리가 더 넓게 느껴졌다.  뭘 하길래 그 직업은 코로나에도 덕을 보는 걸까.    그 승용차가 그냥 흔한 국산차였더라면 좀 나았을까.  나는 왠지 상대적인 결핍감과 상실감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쓸데없이 남의 형편을 걱정해 준 오지랖이 무안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한참  그 빈자리를 바라보다 나는 씩씩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   애들 방 프린터에서 A4 지를 하난 꺼내 네임펜으로 이렇게 적었다.   


아래층입니다.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저번에도  조심해 주신다 해놓고 소음이 너무 심하네요

아이들 발소리도 그렇지만  안마의자인지 침대인지 꼭 밤에  자려고 누우면 진동이 들려서 괴롭습니다.

가끔은 핸드폰 진동소리도 들리는데  받으시든지 꺼주시든지 좀 해주세요.

얼굴 붉히는 일 없이 넘어가려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참았습니다.   

오늘 이후로는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글자를  휘갈겨 쓰면서 나는 그게   노부부에게 쓰는 건지, 아래층 여자에게 쓰는 건지 , 아니면 남편한테 쓰는 건지  아님 코로나에도 덕을 보는 윗집 아들에게 쓰는 건지  내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아마도 왜 출근을 안 하는지  묻고 있는 듯 남편의 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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