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의 유언>

추리소설

by 산들강바람

제5부: 마지막 페이지의 진실


제10장: 편집자의 오탈자


1. 조서 너머의 행간


김 편집자와 최 형사가 구치소로 압송된 후, 본청 수사과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고요해졌다. 수현은 퇴근을 미룬 채, 스승 차도진의 서재에서 압수해 온 <마지막 페이지의 유언> 초고 뭉치를 다시 펼쳤다. 사건은 종결된 듯 보였지만, 베테랑 수사관의 직관은 여전히 무언가 '어긋나 있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수현은 김 편집자가 평소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교정했다던 원고의 초교본을 한 장씩 넘겼다.


'김 씨는 오탈자를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 원고에는 유독 비문(非文)이 많은 거지?'


수현은 책상 조명을 더 밝게 조절했다. 9장에서 그가 자백하며 흘린 눈물은 진심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서명하며 보였던 묘한 안도감—그것은 단순히 죄를 털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 아는 진실을 안전하게 숨겼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2. 수사관의 교정: 붉은 잉크의 역추적


수현은 붉은색 볼펜을 들고 원고 속의 오탈자들을 하나씩 동그라미 치기 시작했다.


"침묵(Silence)" 대신 "신중(Prudence)"


"기록(Record)" 대신 "기억(Memory)"


"진실(Truth)" 대신 "신뢰(Trust)"


단순한 오타라고 하기엔 너무나 의도적인 단어의 교체였다. 수현은 이 단어들의 첫 자를 따보았지만 의미 없는 나열일 뿐이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원고 하단의 페이지 번호가 들어왔다.


보통의 원고라면 1, 2, 3 순서로 매겨져야 할 페이지 번호가 제10장에 들어서며 **'10-A', '10-B', '10-C'**로 변해 있었다. 수현은 자를 대고 각 페이지에서 오탈자가 발생한 위치의 '좌표'를 확인했다.


"이건 오탈자가 아니야. 특정 문장을 가리키는 **키워드(Keyword)**다."


3. 김 편집자의 이중 장치: 아버지에 대한 배신


수현은 9장에서 압수한 김 편집자의 개인 노트북을 열어, 그가 평소 사용하던 편집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그리고 원고 속 오탈자가 발생한 좌표의 단어들을 프로그램의 '검색 필터'에 입력했다.


놀랍게도, 화면에는 숨겨진 레이어가 나타났다. 김 편집자는 겉으로는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도진을 살해했지만, 내심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저지른 또 다른 범죄—당시 실종된 목격자 노 씨에게 입막음용으로 건넸던 비자금의 흐름—을 원고의 오탈자 속에 암호화해 숨겨두었던 것이다.


"김 편집자... 당신도 결국 아버지를 믿지 않았던 거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아버지를 파멸시킬 스위치를 원고 속에 심어두다니."


수치로 환산된 비자금 계좌와 송금 내역이 모니터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20년 전의 실종 사건을 넘어, 현재 정계의 거물이 된 전직 서장의 목을 단숨에 조일 수 있는 치명적인 증거였다.


4. 잉크가 멎은 곳: 최후의 장소


원고의 가장 마지막 장, 잉크가 번져 읽기 힘들었던 부분에 수현은 특수 광원 램프를 비췄다.


거기엔 김 편집자가 직접 쓴 것이 아닌, 차도진이 죽기 직전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작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오탈자도 암호도 아니었다. 수현이 수사관 생활 내내 쫓아왔던, 연주의 유골 옆에 있던 '노란 우비'의 마지막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키는 주소였다.


"선생님, 당신은 김 편집자가 이 원고를 수정할 것을 알고, 그가 수정한 흔적 뒤에 진짜 유언을 겹쳐 쓰신 거군요."


수현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이제 사건의 모든 조각이 맞춰지려 하고 있었다. 20년 전의 비극과 현재의 살인, 그리고 한 편집자의 뒤틀린 욕망이 얽힌 이 소설의 진짜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위해, 수현은 안개가 완전히 걷힌 청평 호수로 향했다.


5. 비문의 좌표: 강 형사의 묘지


수현은 원고 속 오탈자가 가리키는 좌표를 구글 맵에 입력했다. 그곳은 청평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야산의 한구석, 20년 전 순직 처리되었던 **강철수 형사의 가묘(假墓)**가 있는 곳이었다.


"김 편집자... 당신은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했군. 그래서 가장 안전한 곳에 가장 위험한 칼을 숨겨둔 거야."


수현은 차가운 빗줄기를 뚫고 묘지에 도착했다. 그녀는 베테랑 수사관답게 곧바로 땅을 파헤치지 않았다. 대신 휴대용 금속 탐지기를 꺼내 비석 주변을 훑었다.


삐이—


비석 밑단, 지면과 맞닿은 부분에서 날카로운 반응이 왔다. 수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냈다. 그곳엔 방수 처리된 작은 티타늄 케이스가 묻혀 있었다. 김 편집자가 원고 속에 '오탈자'라는 암호로 숨겨두었던, 그의 아버지를 파멸시킬 최후의 보험이었다.


6. 마지막 조각: 노란 우비의 증언


케이스 안에는 USB 메모리 하나와 빛바랜 노란색 비닐 조각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20년 전 연주가 입고 있던 노란 우비의 오른쪽 소매 부분이었다.


수현은 손전등을 비춰 우비 조각을 살폈다. 7장에서 보았던 사체 곁의 우비는 낡아 헤어져 있었지만, 이 조각만큼은 밀폐된 용기 덕분에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수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우비 표면에는 누군가의 검은색 구두약 흔적과 함께, 강제로 잡아당겨진 듯한 지문 형태의 혈흔이 남아 있었다.


"이건 김 편집자의 것이 아니야. 김 씨는 그날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


수현은 제8장에서 보았던 적외선 사진을 떠올렸다. 연주를 밀친 것은 소년(김 편집자)이었지만, 물에 빠진 아이의 팔을 붙잡아 다시 물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검은 구두를 신은 성인 남성이었다. 즉, 사고를 살인으로 확정 지은 진범은 아들을 지키려 달려온 '서장' 본인이었다는 물증이었다.


7. 오탈자의 실체: 비자금의 흐름


수현은 곧바로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화면 위로 방대한 양의 엑셀 파일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전직 서장이 정계로 진출하며 세탁했던 비자금의 상세 내역서였다.


놀라운 점은 그 자금의 세탁 경로였다. 김 편집자는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아버지의 비자금을 '인세'와 '제작비' 명목으로 세탁해 왔다. 그는 원고 속에 일부러 오탈자를 남겨, 나중에 수사기관이 이 장부를 대조했을 때 어느 페이지의 어느 단어가 어느 계좌와 연결되는지 일일이 매칭해 두었던 것이다.


"당신은 아버지를 지킨 게 아니라, 아버지가 무너질 때 함께 죽지 않기 위해 밧줄을 꼬고 있었던 거군."


수현은 김 편집자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스승을 죽였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제물로 삼아 자신의 자유를 얻으려 했다.


8. 잉크의 종착역: 수현의 결단


모든 증거가 수현의 손안에 모였다. 20년 전의 실종, 강 형사의 죽음, 차도진의 속죄, 그리고 현재의 밀실 살인까지.


수현은 잠시 강 형사의 비석에 손을 얹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비석의 표면처럼, 이제 이 잔혹한 연극도 막을 내릴 때가 왔다. 그녀는 본청 감사과에 연락하는 대신, 단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은퇴하여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전직 서장(현 국회의원)**이었다.


"서장님, 한수현 경위입니다. 지금 강철수 형사님 묘 앞에 와 있습니다. 당신이 20년 전 잃어버린 '노란 우비의 조각'을 찾았거든요. 이제 당신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러 가겠습니다."


수현은 전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차도진이 남긴 만년필의 잉크는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방울은, 가장 진실한 문장을 쓰기 위해 남겨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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