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

by 산들강바람

[제2문단, 깨진 조각의 합일(合一)과 진실의 서광(曙光)]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강 박사 일행의 시야를 처절하게 가로막았다. 서윤은 이미 탈진하여 최 과장의 어깨에 무겁게 매달려 있었고, 최 과장의 거친 숨소리에는 동료를 향한 신뢰 대신 오로지 생존을 향한 **악의(惡意)**가 섞여 있었다. 강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품 안에서 갱도(坑道)의 파편과 미리 챙겨두었던 낡은 청동판 본체를 꺼냈다. 녹슬고 부서져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보였던 그것들이 서로의 거칠고 날카로운 단면을 마주하자, 기이한 **인력(引力)**이 발생하며 강 박사의 손바닥 낙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강 박사, 지금 뭐 하는 거요!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저 감시자(監視者) 놈들이 군대를 몰고 올 거란 말이오!"


최 과장의 포효(咆哮)에도 불구하고 강 박사는 홀린 듯 조각을 본체의 빈틈에 밀어 넣었다. 찰칵—.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온 금속의 마찰음이 정적을 찢었다. 그 순간, 지저분한 녹과 오물들이 허물처럼 벗겨지며, 조각들이 완벽하게 **합일(合一)**된 거대한 청동거울이 그 본연의 자태를 드러냈다. 거울의 표면은 빗물을 머금자마자 옥빛 광채를 내뿜으며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 그것은 단순히 사물을 비추는 도구가 아니었다. 북한의 삭막한 산등성이 위로 숨겨진 고구려의 **비도(秘道)**를 비추는, 진실의 **서광(曙光)**이었다.


강 박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너머로, 절벽의 바위틈 사이에 숨겨진 은밀한 통로를 포착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그 길은 거울의 빛이 닿는 순간, 마치 살아있는 혈맥처럼 붉게 타오르며 일행을 유혹하고 있었다. "최 과장님, 서윤 씨... 저길 보십시오. 지도가 아니라, 이 거울이 진짜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강 박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도망자의 떨림이 아니었다. 조각난 거울이 하나가 되었듯, 분열되었던 그의 의지와 학자로서의 **사명(使命)**이 비로소 강력한 **결속(結束)**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 환희의 순간도 잠시, 거울의 가장자리에는 방금 마주쳤던 그 그림자, **감시자(監視者)**의 서늘한 실루엣이 여전히 그들을 뒤쫓고 있음이 선명하게 투영되었다.


[ 환영(幻影)의 통로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도주]


거울이 뿜어내는 옥빛은 비바람에 섞여 기이한 **파동(波動)**을 일으키며 절벽의 화강암 벽면을 훑었다. 강 박사가 조각을 맞춘 거울을 높이 치켜들자, 육안으로는 매끄러운 바위벽에 불과했던 곳에 거대한 기마병의 부조가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성문을 지키는 형상이었다. 거울의 빛이 부조의 눈 부분에 닿는 순간, 육중한 바위 문이 소리 없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습하고 서늘한 **심연(深淵)**의 입구를 드러냈다.


"말도 안 돼... 이건 현대 공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기작(機作)**이야."


서윤은 고통조차 잊은 채 경외심(敬畏心) 어린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하지만 감탄을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거울의 가장자리, 매끄러운 청동 표면 위로 아까 마주쳤던 그 **감시자(監視者)**의 형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하게 비쳤다. 그는 어느새 옥수수밭을 지나 절벽 아래턱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사내의 손에는 낡은 무전기가 들려 있었고, 그 무심한 눈동자에는 포위망을 좁혀가는 사냥꾼의 **살기(殺氣)**가 번뜩였다.


"강 박사, 감탄은 나중에 해! 저놈이 신호를 보냈어. 이제 곧 인민군 수색대가 이 일대를 저인망식으로 훑을 거란 말이오!"


최 과장이 서윤을 거의 낚아채듯 끌어당기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강 박사 역시 거울을 가슴팍에 꼭 품은 채 비명 같은 숨을 몰아쉬며 비도(秘道)로 뛰어들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거울의 잔광(殘光) 너머로 감시자의 실루엣이 입구 앞에 멈춰 선 것이 보였다. 그는 안으로 따라 들어오는 대신, 마치 이 안에서 벌어질 **참극(慘劇)**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통로 내부는 지독하리만큼 고요했고, 오직 세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바닥에 고인 물을 밟는 축축한 발소리만이 고립(孤立)의 공포를 증폭시켰다. 강 박사는 거울의 빛에 의지해 전진하며, 남쪽에서 자신을 믿어주었던 동료들의 얼굴과 지금 곁에서 서로를 **불신(不信)**하며 사투를 벌이는 최 과장, 서윤의 일그러진 표정을 번갈아 보았다. 38년 평생 쌓아온 합리적 사고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조각난 거울을 통해 비치는 파편화된 진실, 그리고 이 북한이라는 거대한 **형무소(刑務所)**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처절한 **강박(强迫)**뿐이었다.


입구의 석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다시 닫히자, 완전한 암흑이 그들을 덮쳤다. 이제 되돌아갈 길은 영원히 차단되었다. 강 박사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손바닥 낙인이 거울과 공명하며 내뿜는 박동을 느꼈다. 그것은 멸망한 제국이 2,000년의 잠에서 깨어나며 내뱉는 **비가(悲歌)**이자, 낙오된 자들을 향한 서늘한 초대장이었다.




작가의 이전글<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