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이 닫히며 내뿜은 육중한 진동이 잦아들자, 비도(秘道) 내부에는 지독하리만큼 무거운 **적막(寂寞)**이 들어찼다. 강 박사는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고르며 가슴팍에 품은 청동거울을 고쳐 쥐었다. 거울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옥빛은 이제 단순한 광원(光源)을 넘어, 이 폐쇄된 공간의 **농밀(濃密)**한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고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38년 평생을 유물의 파편을 맞추며 과거를 재구성해온 그였으나, 지금 마주한 이 현실은 어떤 고고학적 데이터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질(異質)**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제 남쪽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埋葬)**된 도망자였으며, 북쪽의 서슬 퍼런 감시망 아래 발이 묶인 **낙오(落伍)**자였다.
"이게 다 저 거울 때문이야... 저 불길한 빛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라고요!"
서윤의 날 선 목소리가 젖은 벽면에 부딪혀 날카롭게 흩어졌다. 그녀는 눅눅한 바닥에 주저앉아 부어오른 발목을 감싸 쥔 채 강 박사를 쏘아보았다. 기록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망(熱望)**은 이미 육체적 한계와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비틀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청동거울은 이제 진실의 열쇠가 아니라, 자신들을 이 지옥 같은 **심연(深淵)**으로 끌어들인 저주받은 신물(神物)에 불과했다. 강 박사는 그녀의 원망 어린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며 거울 표면을 매만졌다. 거울의 차가운 감촉은 오히려 그의 흐트러진 정신을 **명징(明澄)**하게 깨우고 있었다.
"그만해! 지금 여기서 누구 탓을 해봤자 변하는 건 없어!"
최 과장이 서윤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일으키며 포효(咆哮)했다. 그의 손은 이미 권총 손잡이에 가 있었고, 눈동자는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감시자(監視者)**의 흔적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최 과장에게 있어 동료란 생존을 위한 **수단(手段)**일 뿐이었고, 강 박사가 가진 거울 역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도구(道具)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 사람 사이에 겹겹이 쌓인 **불신(不信)**은 이제 거울이 비추는 옥빛 아래 적나라한 **치부(恥部)**를 드러내며 서로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강 박사는 거울을 비추어 비도의 안쪽을 살폈다. 거울이 비추는 벽면에는 고구려의 신수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시(錯視)**를 불러일으켰으나, 그 너머로 보이는 통로는 끝을 알 수 없는 **미궁(迷宮)**처럼 뻗어 있었다. 남쪽에서 사투를 벌이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을 동료들의 **희생(犧牲)**을 생각하면 단 한 걸음도 헛되이 쓸 수 없었지만,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는 이 **균열(龜裂)**을 봉합하지 않고서는 단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음을 그는 직감했다. 강 박사는 자신의 손바닥 낙인이 거울과 공명하며 내뿜는 박동을 느끼며, 비로소 이 여정이 단순한 유물 찾기가 아닌, 각자의 비겁한 본성과 마주해야 하는 처절한 **시험(試驗)**임을 깨달았다.
[ 거울의 경고(警告)와 심판(審判)의 길]
강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들어 올려 벽면의 부조를 훑었다. 거울의 옥빛이 닿는 곳마다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고구려의 기마병들이 금방이라도 벽을 뚫고 나올 듯 **현신(現身)**하는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신비로운 광경에 취해있을 여유는 없었다. 거울의 가장자리, 매끄러운 청동 표면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를 포착한 순간 강 박사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그것은 조금 전 어둠 속에서 마주쳤던 그 사내의 잔상이었다. 그는 분명 석문 밖에서 사라졌으나, 거울은 그가 이미 이 밀폐된 통로의 어딘가에, 혹은 일행의 그림자 속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숨어 있음을 소름 끼치게 **경고(警告)**하고 있었다.
"강 박사, 왜 멍하니 서 있는 거요? 저 앞에 길이 갈라지고 있지 않소! 빨리 빛을 비추시오!"
최 과장의 다급한 윽박지름에 강 박사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과 거울이 비추는 **실체(實體)**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지도는 안온한 직선을 말하고 있었지만, 거울은 그 직선의 끝에 북한군이 설치한 부비트랩과 낡은 **갱도(坑道)**의 붕괴 위험을 붉은 혈관처럼 드러냈다. 38년 평생을 실증적 데이터에 의지해온 지식인으로서, 그는 지금 이 초자연적인 신물의 인도를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남쪽에서 가져온 정교한 지도를 따라야 하는지 지독한 **회의(懷疑)**에 빠졌다.
"최 과장님, 오른쪽입니다. 지도는 틀렸어요. 거울은 지금 저 왼쪽 길이 죽음의 **사선(死線)**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도는 조부 때부터 내려온 완벽한 기록이란 말이오! 당신 그 깨진 거울 조각 하나 맞췄다고 지금 미쳐가는 거 아니오?"
최 과장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는 강 박사의 멱살을 잡을 듯 다가왔고, 서윤은 그들 사이에서 고개를 저으며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남쪽에서 사투를 벌이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을 동료들과의 **연대(連帶)**는 이미 이 차가운 지하의 습기 속에 녹아 없어진 지 오래였다. 세 사람의 의지가 회복 불가능한 **단절(斷絶)**을 맞이한 순간, 통로 저편에서 기이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북한군 수색대의 발소리도, 단순한 바람 소리도 아니었다.
거울이 비추는 어둠 속에서, 아까 마주쳤던 그 사내가 무전기 대신 낡은 청동검 한 자루를 쥔 채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고하러 간 밀고자가 아니었다. 이 통로의 끝에서 자격 없는 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기다리던 이 천 년의 **파수꾼(把守犬)**이었던 것이다. 강 박사는 거울을 가슴에 꽉 품으며 온몸으로 전율했다. 이제 이 여정은 단순히 유물을 찾는 게임이 아니었다. 각자의 비겁한 본성을 제물로 바치고,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통째로 걸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참혹(慘酷)**한 **제례(祭禮)**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