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인(歸鄕印) : 잃어버린 대륙의 기억> 소설

by 산들강바람


[제2문단 전반부: 뒤틀린 물리(物理)와 성역(聖域)의 경고]


탕—! 좁은 비도 내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총성이 고막을 마비시켰다. 화약 냄새가 습한 공기와 뒤섞여 코끝을 찔렀고, 최 과장이 쏜 탄환의 궤적은 분명 파수꾼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다음 순간 벌어진 일은 강 박사가 그간 살아온 모든 날 동안 쌓아온 상식과 이성(理性)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경악(驚愕) 그 자체였다. 탄환은 파수꾼의 몸에 닿기 직전,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옥빛의 장막에 부딪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속도가 줄어들더니, 기이한 각도로 굴절되어 어두운 천장으로 튕겨 나갔다. 금속이 암석에 부딪히며 내는 비명 같은 소음이 동굴 안에 **잔향(殘響)**으로 남았고, 뒤이어 찾아온 것은 소름 끼칠 정도의 **정적(靜寂)**이었다.


강 박사는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청동거울과 맞닿은 낙인은 이제 단순히 뜨거운 수준을 넘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강렬한 진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거울의 표면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눈동자처럼 파수꾼이 쥔 청동검의 빛깔을 흡수하고 있었고, 그 둘 사이를 잇는 보이지 않는 **기류(氣流)**는 주변의 비바람조차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직감했다. 지금 이 공간은 더 이상 북한의 차가운 지하 동굴이 아니었다. 이천 년의 세월 동안 잊혔던 대륙의 주인이 허락한, 오직 선택받은 혈맥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성역(聖域)**으로 변모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내 눈앞에서 탄환이 꺾였어!"


최 과장의 목소리는 이제 지휘관의 위엄을 잃은 채 처절한 **공포(恐怖)**에 젖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현대식 무기가 고대의 고철 덩어리라 생각했던 유물 앞에서 무력화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극심한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에 빠졌다. 서윤 역시 차가운 바닥을 기어 강 박사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가 지나온 모든 세월 동안 연구해 온 고고학 서적 어디에도 이런 기적(奇蹟)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상황은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신화적 **재앙(災殃)**에 가까웠다.


하지만 강 박사는 달랐다. 거울을 통해 전달되는 파수꾼의 기운은 차가웠지만, 동시에 지독하리만큼 명징(明澄)했다. 그는 파수꾼의 눈동자 속에서 **살기(殺氣)**가 아닌, 깊은 **비애(悲哀)**와 무거운 **사명(使命)**을 읽어냈다. 사내는 말이 없었으나, 그가 쥔 청동검의 떨림은 강 박사에게 수만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너는 누구인가? 너의 혈맥 속에 흐르는 것은 찬란한 제국의 긍지인가, 아니면 비겁한 도망자의 피인가?'


강 박사는 그간 살아온 모든 세월 동안 자신을 정의했던 '박사'라는 직함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남쪽에서 누렸던 화려한 강단과 박수갈채는 이곳의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이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멸망한 왕국의 마지막 후예로서 이 가혹한 **시험(試驗)**대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거울이 내뿜는 옥빛은 이제 그의 망막을 넘어 영혼의 깊은 곳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거울 속에는 북한의 삭막한 풍경도, 자신들을 뒤쫓는 수색대의 모습도 없었다. 오직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기마병들의 함성과, 이름 모를 선조들이 흘린 피의 **궤적(軌跡)**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파수꾼은 천천히 청동검을 고쳐 쥐었다. 그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바닥의 물웅덩이가 기이한 파문을 일으키며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것은 명백한 **선전포고(宣戰布告)**였다. 만약 강 박사가 이 신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파수꾼의 검은 거울과 함께 그의 영혼을 영원한 **심연(深淵)**으로 밀어 넣을 것이었다. 최 과장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총구를 겨누려 했지만, 강 박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두십시오, 최 과장님. 이건 당신의 총탄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강 박사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명징(明澄)**했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 낙인을 거울의 중앙에 강하게 밀착시켰다. 그러자 거울의 가장자리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며 파수꾼의 검에서 뿜어지는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싸움은 육체적인 충돌을 넘어선, 이천 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영적(靈的)인 조응(照應)**으로 화하고 있었다. 강 박사는 지나온 모든 날 동안 자신을 옥죄었던 세속의 고뇌를 떨쳐내고, 오직 이 거울이 보여주는 진실의 끝을 향해 자신의 모든 생명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 혈맥(血脈)의 공명(共鳴)과 파수꾼의 진의(眞意)]


파수꾼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강 박사의 코앞이었다. 그가 쥔 청동검의 서늘한 검기가 강 박사의 뺨을 스쳤고, 그 찰나의 **풍압(風壓)**만으로도 살갗이 찢길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최 과장은 탄환이 굴절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금 방아쇠를 당기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지만, 강 박사가 거울을 쥔 채 내뿜는 옥빛의 **장벽(障壁)**은 이미 그들 사이의 공간을 물리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성역(聖域)**으로 고착시킨 뒤였다. 강 박사는 지나온 모든 세월 동안 자신을 지탱해 온 논리와 학문이라는 껍데기가 이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바스러지는지 목격했다.


"물러서지 마라, 이천 년의 혈맥을 잇는 자여."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거울을 통해 전달된 고대의 **사념(思念)**이었을까. 파수꾼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강 박사의 뇌리에는 천둥과도 같은 울림이 박혔다. 사내의 청동검이 천천히 위로 치켜들려 졌고, 그와 동시에 강 박사의 가슴팍에 붙은 거울이 격렬하게 비명(悲鳴)을 지르며 **공명(共鳴)**하기 시작했다. 거울의 표면에 비친 것은 이제 좁고 습한 북한의 지하 동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져가는 고구려의 성벽이었고, 그 위에서 마지막까지 거울과 칼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던 이름 모를 선조들의 **단군(斷軍)**된 절규였다.


강 박사는 손바닥의 낙인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그 참혹한 **기억(記憶)**의 홍수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살아온 모든 날 동안 그는 단지 책장 너머의 활자로만 역사를 읽어왔을 뿐, 그 역사가 품고 있는 피 냄새와 흙먼지의 무게를 체감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거울은 그에게 단순한 유물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단된 땅의 어둠 속에 매몰된 채 잊혀가던 민족의 **정수(精髓)**를 자신의 생명력으로 다시 깨워내라는 가혹한 **명령(命令)**이었다.


"강 박사! 정신 차려! 저놈이 칼을 휘두르려 하잖아!"


최 과장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강 박사에게 그 목소리는 마치 먼 심해(深海)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파수꾼의 검이 마침내 강 박사의 정수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서윤의 비명이 동굴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고, 최 과장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선혈의 **낭자(狼藉)**는 일어나지 않았다. 파수꾼의 청동검은 강 박사의 머리 위 한 뼘 허공에서 멈춰 섰고,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옥빛 광채가 검신(劍身)을 타고 거꾸로 흘러 올라가 사내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것은 공격이 아니었다. 사내는 검을 통해 강 박사의 영혼 속에 깃든 **자격(資格)**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수꾼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이던 살기가 서서히 걷히고, 그 자리에 이천 년을 홀로 견뎌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경의(敬意)**와 **회한(悔恨)**이 서려났다. 사내는 천천히 검을 내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투박한 손이 거울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고, 그 순간 비도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구려의 신수(神獸)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강 박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지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지나온 모든 날 동안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피로감이 전신을 덮쳤지만, 그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明澄)**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뒤쫓아오는 북한군 수색대나, 눈앞의 파수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비겁(卑怯)**과 **타협(妥協)**이었음을. 거울은 비로소 깨진 조각을 맞추듯 강 박사의 흩어진 의지를 하나로 묶어주었고, 그가 가야 할 길은 이제 지도가 아닌 자신의 **숙명(宿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파수꾼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길은 열렸으나,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영광이 아닌 **희생(犧牲)**일 것이니." 그 말과 함께 파수꾼의 형상은 안개처럼 흐릿해지며 벽면의 부조 속으로 스며들었다. 최 과장은 권총을 내리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고, 서윤은 강 박사의 옷자락을 붙잡고 부르르 떨었다. 이제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지독한 어둠이 아니라, 거울의 빛이 닿는 곳마다 붉게 타오르는 **혈맥(血脈)**의 비도였다. 강 박사는 품 안의 거울을 다시 한번 고쳐 쥐었다. 살아온 모든 세월의 무게가 이 작은 청동판 하나에 담겨 있었고, 그는 이제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대륙의 심장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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