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숲을 걷는 아침

안갯속

by 산들강바람

� 안개의 숲을 걷는 아침

안개는 조용히 세상을 덮는다.
그날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흐려져 있었다. 뚜렷하던 경계들이 녹아내리고, 세상은 부드러운 숨결처럼 뿌옇게 퍼져 있었다. 마치 현실과 꿈 사이에 선 것처럼. 그 끌림에 이끌려, 나는 천천히 거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도시의 소음은 마치 음소거된 듯 조용했고, 이른 시간의 거리엔 사람도 드물었다. 가로등은 아직 켜져 있었고, 그 빛마저 안개에 녹아들어 따뜻하게 흔들렸다. 걷는 발걸음마다 젖은 땅이 부드럽게 반응하고, 공기 속에 감도는 물기와 차가움이 피부를 깨우며 마음을 정돈해 주는 듯했다.

안개는 감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더 많이 본다. 보이지 않기에 귀를 기울이고, 선명하지 않기에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이른 아침, 나무 한 그루가 뿌옇게 서 있다. 그 위에 맺힌 물방울이 조용히 흔들리다 떨어진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세계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짧은 찰나에, 무언가 울컥 올라온다.
잊고 있던 기억들, 외면했던 감정들, 평소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들. 안개의 품 안에서 그것들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조심스레 다가온다.

나는 안갯속을 걷고 있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동쪽 하늘이 슬며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천천히 풀어지고, 거리엔 익숙한 풍경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아침, 나는 전에 없던 고요와 따뜻함을 마음속에 담았다.

세상이 다시 또렷해졌을 때, 나는 어느새 조금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조금 더 천천히 숨을 쉬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안개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숨겨진 것을 바라보게 해 준, 아주 짧은 명상 같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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