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잠긴 고요

시골집에서의 하루

by 산들강바람

장대 같은 비가 하늘에서 쏟아지듯 내려온다. 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들이 하나둘 모여 흙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 소리는 마치 대지를 쓰다듬는 손길 같다. 시골집에 앉아 고요히 그 흐름을 바라보는 오늘, 나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삶의 복잡함과 소음은 이곳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오직 빗소리만이 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다.

처마 아래에 앉으면, 세상이 천천히 멈추는 느낌이 든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 위에 앉아, 오래된 담요를 무릎에 덮고, 따끈한 보리차를 들이키며 나는 비의 박자에 마음을 맞춘다. 뚝, 뚝, 뚝—단조로운 리듬 속에 내 생각들도 차분해진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빗줄기를 따라 흙냄새가 올라온다. 물기를 머금은 흙과 나무 냄새, 그것은 도시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다. 그 향에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며든다. 고무신을 신은 채 마당을 뛰어다니던 나, 작은 손에 우산을 들고 장화 속에 물이 들어와도 웃던 나. 비가 오면 항상 마당에 나가 놀았고, 할머니는 처마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실내로 들어서면, 비에 젖은 공기가 창호지를 통해 느릿하게 스며든다. 벽 한쪽에는 오래된 달력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엔 짐작할 수 없는 낡은 라디오가 놓여 있다. 켜보면 잡음 가득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지만, 그조차도 이곳에선 풍경이다. 나는 이 고요함 속에서 숨을 고른다. 나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순간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외부의 사건이 아니다. 나는 이제 그 비 속에서 살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마음속 불안과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다.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존재했던 두꺼운 벽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마치 바늘이 아닌 물방울로 흘러가는 것 같다. 나는 쓴 에세이 한 줄을 다시 읽는다. “오늘, 나는 빗소리에 묻혀 있었다.” 그 문장은 단지 하루의 기록이 아니라, 나를 감싸는 온기이자 기억의 한 조각이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나는 비에 젖은 마음을 꾹꾹 눌러 접어 넣는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시끄럽겠지만, 이 고요했던 시골집의 하루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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