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한여름의 새벽, 창밖은 이미 물기를 머금고 있다. 깊은 밤과 낮 사이의 틈, 시간을 잊은 듯한 그 순간엔 세상이 조용히 호흡한다.
이슬비는 소리 없이 내린다. 우산 끝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땅에 닿을 때까지, 아무도 깨지 않는 꿈처럼 조용히. 거리는 물기를 머금고 어둡게 반짝인다. 가로등은 그렇게 고요한 어둠 속에 빛을 번진다. 노란빛이 빗물에 퍼지며 바닥을 살짝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가끔씩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 대신, 새벽의 공기 속을 걷는 사람들. 어쩌면 잠이 오지 않아서, 어쩌면 무언가를 잊기 위해, 어쩌면 단순히 그 순간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를 조심스레 딛고, 마치 이 세계에 틈입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하다.
나는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본다. 바쁜 하루의 틀 안에서 늘 놓치고 지나쳤던 그 순간. 이슬비가 내리는 새벽의 거리에는 화려함도, 복잡함도 없다. 대신에 ‘멈춤’이 있고, ‘비움’이 있다. 그리고 그 비움 속에 오히려 가득 차 있는 감정들이 있다.
물기 찬 거리의 냄새는 기억을 불러온다. 오래전 여름날의 첫사랑, 익숙했던 동네 골목,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울었던 밤의 공기. 이 시간, 이 풍경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사이를 잇는 조용한 통로가 된다.
한여름 새벽비는 사람을 센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감성은 결코 슬프기만 하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다. 느리게 걷는 사람들과 가로등빛 아래의 비는 세상이 잠시 멈추었다는 걸 알려준다. 잠시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사소한 감정을 꺼내 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
그리고 그 조용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그 자체가 삶 속의 작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