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흐르던 비는 그날도 멈추지 않았다. 산속 깊은 계곡을 따라 나 홀로 걷고 있었다. 발밑에서 조심스레 미끄러지는 자갈들, 젖은 흙냄새,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조용히 존재를 알렸다. 이끼 낀 바위마다 빗물이 맺혔다가 투명한 구슬처럼 또르르 흘러내렸다. 물은 바위틈 사이에서 실처럼 흘러나왔고, 나를 따라 걷는 듯 속삭였다.
계곡은 고요했다. 아니, 고요함을 가장한 생명의 웅성거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방울이 바위를 두드리는 소리, 물줄기가 바닥을 파고드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떨림—모든 것이 합쳐져 자연의 낮은 심포니가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어떤 파동과 마주했다. 평소엔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들, 눌러 놓았던 기억들, 말하지 못한 말들이 이슬처럼 떠올랐다.
바위 위에 멈춰 섰을 때, 내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지만 나는 그 젖은 감각이 좋았다. 차가운 빗물이 피부를 지나 안으로 스며들 듯, 그날의 외로움도 내 안에 서서히 퍼져갔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결코 버려야 할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고요하고 짙은 감정은 나를 더 단단히 잡아줬다. 무심코 내뱉은 숨도, 젖은 신발이 무겁게 느껴졌던 순간도,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물길은 구불구불 흘러 아래로 향했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 같았다. 쉽게 오를 수 없는 바위들,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예측할 수 없는 돌연한 방향 전환. 하지만 그 속에서도 물은 흐르고, 나도 그렇게 걷고 있었다.
그날의 계곡은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무의 숨소리, 바위의 세월, 물의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대화.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지만, 그날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나는 그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