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항구 너머로 흐르는 삶의 숨결

작은 항구

by 산들강바람

작은 항구는 오늘도 조용히 숨을 쉰다. 바람은 바다 냄새를 머금고 해안가를 스치며 지나가고, 항구는 그 바람을 받아 들숨처럼 천천히 들이마신다. 마치 바다와 항구가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듯하다.

조그마한 항구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는 끝이 없는 푸른 캔버스다. 그 위엔 오늘이라는 색이 조심스레 그려지고 있다. 때로는 잿빛 구름으로, 때로는 햇살의 잔광으로 덧칠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가 물결 위에 흔적으로 남는다.

그 고요함 속에도 이곳엔 분명히 시간의 흐름이 있다. 누구도 소리 내어 시간을 세지 않지만, 모래 위의 발자국, 나뭇잎 흔들리는 속도, 저 멀리 떠 있는 갈매기의 궤적이 천천히 하루를 흘려보낸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 자연스러움이 이곳을 숨 쉬게 한다.

그리고 해변은 활기를 띠며 잠에서 깨어난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바구니를 들고 모래사장에서 작은 성을 짓는다. 모래 사이로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성벽이 무너질까 봐 손끝마저 얌전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얹혀 퍼지고, 그 옆을 걷는 사람들의 나직한 대화는 마치 조용한 노래처럼 들린다.

바다가 화음을 만든다. 파도와 웃음소리, 바람과 발자국, 모두가 섞여 따뜻한 풍경을 연주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웃는 이들의 눈빛 속에는 아직 다 닳지 않은 희망이 있다. 흐리지만 투명하고, 묵묵하지만 살아 있는 그런 감정.

그런 평화로운 풍경 한가운데, 먼바다를 누비던 배들이 한 척, 두 척 천천히 항구 안으로 들어온다. 선체는 하루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고, 갑판 위에는 고요한 피로가 내려앉아 있다. 새벽부터 짙은 물결 속을 갈라온 어부들은 거친 손길로 그물을 끌어올린다. 그물 끝에는 햇살 속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생명들이, 말없이 고마움을 전하듯 움직인다.

그 고기를 내리는 순간,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환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엔 분명한 경의가 있다. 날마다 같은 바다, 같은 시간 속에서, 한 줌의 희망을 건져 올리는 그들. 바람에 단단해진 얼굴엔 시간의 결이 새겨져 있고, 그물 끝의 물기는 아직 살아 있다는 듯 빛난다.

이 작은 항구엔 삶이 있다. 찬란하거나 극적인 장면은 없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진짜 삶의 모습이 이곳에서 천천히 숨 쉬고 있다. 누구도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하루를 살고, 자기 삶을 다져간다.

어쩌면 이 항구는 거대한 세상의 축소판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와 달리, 이곳은 '멈춤'이 아니라 '느림'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삶의 리듬을 다시 듣게 된다—바람이 스치는 소리, 조개껍데기 부서지는 소리, 아이의 웃음이 파도에 녹아 사라지는 그 찰나까지.

작은 항구 너머에는 늘 그렇게, 조용한 하루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은 말없이, 하지만 단단하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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