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바람이 창가에 걸린 커튼을 흔든다. 커튼은 마치 한낮의 무용수처럼 조용히, 그러나 느릿하게 허공을 그린다. 그 움직임 하나에 시간은 잠시 멈춘 듯, 방 안은 바람의 리듬에 맞춰 호흡을 고른다. 소리 없는 교향곡이 집 안을 감싸고, 나는 그 조율된 평온 속에서 나직한 안도를 느낀다.
늦은 아침의 햇빛은 서두르지 않는다. 성급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그 빛은 방 안의 오랜 침묵을 조용히 깨운다. 따사롭고 부드러운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바닥의 그림자들을 부드럽게 쓸고 간다. 어젯밤의 흔적들이 은은하게 드러나고, 그것들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고요하게 자리를 지킨다. 잊혔던 책 한 권, 아무렇게나 접어놓은 이불 끝, 반쯤 마신 찻잔. 그 모든 것이 빛 아래에서 조용한 의미를 얻는다.
이 시간 속의 나는 더 이상 할 일을 고민하지 않는다. 해야 할 것보다, 느껴야 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라난 사소한 생각들이 천천히 풀어져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커튼의 흔들림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흔들림은 내 안의 복잡한 생각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햇빛은 나에게 말을 건다. 잔잔하게, 그러나 확신에 차서. "괜찮아. 오늘도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천천히, 그러나 깊이 스며든다. 햇살 한 줄기에도 위로가 있다는 것을 이 아침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흐름이 마치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다. 나는 달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다는 것. 따뜻한 바람, 흔들리는 커튼, 그리고 빛 아래의 정적을 느끼며 존재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향해 묻는다. ‘너는 누구니?’ ‘너는 어떤 사람이니?’ 하지만 늦은 아침의 햇빛은 그렇게 묻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싸 안는다. 부족함도, 어제의 실수도, 오늘의 막막함도 아무렇지 않게 품어주는 듯한 그 따스함에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