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에 머무는 여름

파도, 햇살, 그리고 바닷속의 온기

by 산들강바람

발가락 사이로 살랑 살랑이는 파도는 여름이 전하는 가장 섬세한 인사다. 첫 파도가 발끝에 닿는 순간, 우리는 계절의 품으로 스며든다. 이 작은 물결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가장 아래에서 시작되어 마음까지 전해지는, 감각의 찬란한 울림이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숨을 내쉬는 것조차 열기를 머금는다. 그러나 그 열기마저도 해변에서는 반갑다. 그건 여름이 가진 당당함이자, 존재감이다. 바다는 햇살에 반짝이고, 하늘은 단 한 점의 구름 없이 푸르르다. 세상은 유리처럼 투명해지고,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흘러간다.


조심스레 바닷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세상은 또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물속은 고요하다. 물결은 소리를 삼키고, 몸은 시원한 물살에 잠기며 안정을 되찾는다. 뜨거움과 시원함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균형을 되찾는다. 바닷물은 마치 오래전 기억처럼 낯익지만, 언제나 새롭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모래사장은 일상의 틀을 벗어나게 만든다. 알갱이 하나하나가 태양에 달궈져 있으면서도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적당한 저항감은 걸음마다 존재감을 부여한다. 해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바람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지나간다.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보다도 더 시원한 자유가 이곳에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름을 누린다. 어떤 이는 모래 위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또 어떤 이는 물장구를 치며 무심한 하늘을 향해 웃는다. 연인들은 손을 맞잡고 걷고, 혼자 온 이도 파도 앞에선 외롭지 않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오고, 누구에게나 기억 속에 특별한 자리를 남긴다.


햇살은 점점 기울고, 바다는 금빛으로 물든다. 이제 곧 여름도 막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발가락 사이로 살랑거리던 그 물결, 뜨거운 태양 아래 느낀 그 시원한 바닷속의 감각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 그것은 단지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생의 감촉이다.


여름이란, 그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와 우리를 흔드는 계절이다. 잊지 못할 순간들을 축적하는 계절.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다시 그 해변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그 물결을 발끝으로 느끼며, 살아있음을 고요하게 되새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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