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고, 다시 찾기
햇살이 가장 날카롭게 내리 꽂히는 오후, 나는 소나무숲으로 향한다. 조용히, 숨소리까지 조심스러워지는 걸음으로 숲 속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세상의 소란은 마치 먼 타지의 풍경처럼 사라진다.
빛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조심스레 흘러내리며, 마치 오랜 친구의 속삭임처럼 등과 어깨를 따뜻하게 두드린다. 잎의 가장자리를 투명하게 감싸는 햇살은 마치 작은 보석처럼 빛나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림자들마저 제법 품위 있다.
소나무는 묵직하면서도 유연하게,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척하며 나를 맞아준다. 그들의 키는 하늘을 닮았고, 향은 땅을 닮았다. 나는 그들 사이를 걷는다. 뿌리부터 시작된 생의 이야기들이 줄기를 따라 위로 솟고, 그 끝에서 빛과 맞닿는 것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너무 작고 순간적인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풀벌레 소리, 잊힌 듯한 새소리, 그리고 내 발끝이 흙과 속삭이는 마찰음. 모두가 내 존재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듯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이 숲 한가운데서 모든 것이 된다. 따가운 햇살은 고통이 아닌 살아있다는 확신으로 피부를 감싸고, 그 확신은 마음을 단단하게 다듬는다.
소나무숲의 오후는 나를 완전히 잠식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천천히 품어주고, 조금씩 침투하며 내 안의 불안과 소음을 씻어낸다. 때로는 빛이 아니라 그림자가 위로가 될 때도 있기에, 나는 밝음과 어둠 사이를 오가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오늘도 나는 이 숲에서 나를 잊고, 다시 나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