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새벽, 숲은 아직 깊은숨을 쉬고 있었다. 햇살이 산 너머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며 계곡을 깨웠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바람은 잔잔하게 숲의 결을 따라 흐르며 나무들의 속삭임을 전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길은 계곡으로 향했다. 바위와 나무뿌리로 울퉁불퉁한 흙길엔 전날 내린 비의 흔적이 조용히 스며 있었고, 내 발걸음은 그것을 조심스레 되짚으며 자연의 품으로 들어갔다.
계곡은 생각보다 더 깊고 더 푸르렀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은 맑고 투명하여 바닥의 자갈까지 또렷하게 보였고, 그 사이를 누비는 작은 물고기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반짝였다. 물고기들은 강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바위 뒤에 몸을 숨기거나, 잠시 멈춰 선 듯 유영하며 냇물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바위에는 이끼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그 위에 떨어진 나뭇잎들은 마치 누군가 정성스럽게 배치한 듯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은 폭포가 있는 곳에선 물이 바위 위에서 떨어지며 은은한 소리를 냈다. 단순한 물소리 같지만, 그 안에는 삶의 깊이와 시간의 흐름이 담겨 있는 듯했다. 폭포 아래의 물안개는 햇살과 만나 무지개 빛으로 번져나갔고, 그 순간만큼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계곡 주변의 나무들은 굳게 서 있었지만 바람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를 새들이 날았고,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선율처럼 흐르며 마음을 어루만졌다. 들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절을 품은 듯 피어나 있었고, 이름 모를 꽃들도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 햇빛을 맞았다.
나는 그곳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단지 숨 쉬고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곳. 자연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고,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써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고기의 작은 떨림, 나뭇잎의 그림자, 빛의 흔적, 바위의 시간이 전부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걸었다.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계곡의 풍경을 마음에 새겼다.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진한 감정으로, 피부에 닿았던 공기와 귀를 감싸던 소리까지 고스란히 담아 돌아왔다. 그리고 그 풍경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울릴 것이다. 삶이 복잡해지고 숨이 벅찰 때면, 나는 다시 그 계곡을 떠올릴 것이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괜찮아"라 말해주는 그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