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앞에서

연못에서

by 산들강바람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늦은 오후, 나는 포항의 조용한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물결을 어루만지고, 그 위에 연꽃들이 은은하게 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두 송이—하얀빛으로 피어난 연꽃과 붉은빛으로 활짝 피어난 연꽃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하얀 연꽃은 말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듯했다.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순수함, 아무런 잡음도 없이 존재 자체로 빛나는 모습에 나는 저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그 하얀빛은 슬픔과 기쁨, 사랑과 외로움마저도 모두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붉은 연꽃은 숨겨진 열망을 드러내는 듯했다. 생의 에너지가 꽃잎 끝까지 스며들어 타오르는 듯한 그 색감은 마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처럼 강렬했다. 뜨겁고 선명하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묘하게 뛴다. 이 붉음은 살아 있다는 증표처럼 느껴졌다—아파도 좋으니 진짜의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외침 같았다.


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내 삶을 들여다보았다. 때로는 하얀 연꽃처럼 살고 싶었고, 때로는 붉은 연꽃처럼 뜨겁게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인간은 하얀 마음과 붉은 열정을 함께 지닌 존재가 아닐까. 세상이 요구하는 평온함과, 내 안에서 솟구치는 뜨거움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고민하곤 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그 흙탕물은 우리 인생의 상처일 수도, 어려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그리고 그 꽃은 자신이 어느 색으로 피어났든,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나는 지금 어떤 진흙 속에 있는가. 그리고 어떤 색으로 피어오르고 있는가.


연못가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은 마치 내 마음에 새로운 계절을 부르는 듯했다. 지나온 계절이 만들어낸 모든 감정이 연꽃의 색에 녹아든 듯했고, 앞으로의 계절에 대한 희망은 그 꽃이 피어오르는 움직임 속에 숨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연꽃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 있었다. 하얀빛의 고요함과 붉은빛의 열정은 말을 건네지 않아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울림을 마음에 담아, 느리지만 단단한 걸음으로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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