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 아래

해변에 누워

by 산들강바람

아침부터 햇살은 바다에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또렷하게 닿는다.
모래사장은 이미 온기 가득한 태양 아래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그 위에 펼쳐진 작은 그늘막 하나—바람에 가볍게 펄럭이는 그 천이 오늘 나를 감싼다.


새찬 바람이 밀려온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존재감이 뚜렷하다.
바닷가 나뭇잎을 흔들고, 가방 속 손수건 끝을 들고 날리며, 내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간다.
그 바람은 마치 파도에게 말을 걸듯 연신 몸을 기울이고,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대답한다.
툭툭 치는 파도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리듬이 아니라,
내 안의 복잡한 마음을 하나씩 정리해 주는 마법의 음표 같다.


그늘막 아래 누워 있으면 세상은 멀고, 나는 가까워진다.
내 호흡, 내 생각,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바다의 박자에 맞춰 정돈되는 느낌.
사람들 웃음소리도, 아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도, 파라솔 아래 책을 읽는 할머니도—
그 모든 순간이 풍경처럼 눈앞에 흐르지만, 나는 조용히 그늘막 속에 앉아
내 마음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어느새 발끝은 모래 속에 파묻히고, 손끝은 따뜻한 햇살을 느낀다.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오고, 되돌아간다.
그 되돌아감이 반복되면서도 매 순간 다르고,
나는 그 움직임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
변화는 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규칙적인 흐름은 오히려 안정을 준다.


바닷바람은 어제의 고민을 묻어가고, 파도는 오늘의 감정을 부드럽게 덮는다.
모래는 나의 발을 포근히 감싸며 움직임을 멈추게 하고,
그늘막은 세상의 복잡함으로부터 나를 잠시 숨겨준다.
그 안에서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바깥에서는 자연이 나를 바라봐준다.


이곳은 단지 휴양지가 아니다.
이곳은 내면의 도서관이고, 감성의 정원이며, 치유의 병원이다.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이 시간은,
살아온 모든 계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마음을 만드는 시간이다.


파도는 다시 나를 부른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늘막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음에 올 때는, 이 풍경을 나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꽃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