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 위에 서서, 산과 계곡을 보다

산행

by 산들강바람

나는 오늘도 산을 향해 걷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가고 싶어졌다. 삶이 때때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내 발걸음도 설명 없이 산으로 향한다. 산은 언제나 거기 있다. 내가 찾지 않아도, 누군가 기억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존재, 그것이 산이다.


오랜 시간 풍화된 능선을 따라 바람이 흐른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를 드러낸다. 나뭇잎이 뒤척이고, 작은 벌레들이 숨고, 내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 바람은 그 존재를 살며시 알려준다. 그리고 그 바람은 단순히 공기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그곳에 스며든 시간이다. 지나온 계절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풀꽃의 향기와 땅속의 기억이 얽혀 하나의 숨결이 되어 흐른다.


산속을 걷다 보면, 계곡을 만난다. 계곡은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고요한 듯하면서도 강렬하다. 수천 년의 세월을 품고 흘러가는 그 소리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시간이다. 물은 바위를 깎고, 그 깎인 흔적은 계곡이 된다. 그리고 그 흔적은 우리 삶과 닮아 있다. 사람도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깎이고, 때로는 부서지면서 새로운 모양을 갖는다. 계곡은 고통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이 다시 나를 감싼다. 산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계곡과 함께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자연은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속에 나는 작고도 큰 존재다. 인간은 종종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라 말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지극히 작은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그 작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이다. 내 삶도, 내 고민도, 바람 앞에서는 가벼워진다. 계곡의 흐름을 바라보며, 내가 안고 있던 감정들도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말보다 깊은 침묵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들—가만히 있는 법, 자연을 듣는 법, 존재를 느끼는 법—이곳에서는 모두 되살아난다. 바람은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지금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계곡은 나에게 들려준다. "흘러가는 것조차 멈출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산의 저편에서 해가 천천히 기울어간다. 빛은 바위에 스며들고, 물에 반사되어 다시 하늘로 되돌아간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하나의 점이 된다. 그러나 그 점은, 이 세계 안에서 꼭 필요한 조각이다. 바람과 산과 계곡이 만들어낸 거대한 그림 속에서, 나는 고유한 자리를 가진 존재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한참을 걸었다. 바람과 함께, 산과 함께, 계곡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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