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계곡의 속삭임
깊은숨을 들이쉬며 산길을 걷는다. 발끝에 스치는 흙의 부드러움과 풀잎 사이로 흘러나오는 바람의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매번 다르게 느껴진다. 구름이 낮게 깔리는 날은 마치 거대한 존재가 나를 품고 있는 듯하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는 조용한 친구처럼 곁에 있다.
바람은 산의 언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은 능선을 타고 흐르며,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 속삭인다. 때로는 격렬하게 몸을 흔들지만, 대부분은 조심스럽게 마음을 흔든다. 바람은 이곳을 지나며 기억을 남기고 사라진다. 아주 먼 곳에서 온 듯하지만, 늘 익숙한 숨결을 품고 있다.
계곡은 바람보다 묵직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 소리는 오래된 책을 펼치는 듯하고, 그 고요함 속에는 세월의 깊이가 깃들어 있다. 계곡은 산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거센 바람과 세찬 비를 견디며 깎이고 다듬어진 골짜기는, 그 인내의 흔적을 흐르는 물에 담아낸다. 물은 흘러가면서도 늘 그 자리에 있다. 마치 우리의 시간처럼.
산들 사이에서 바람을 맞고, 계곡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나라는 존재가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작음은 겸손이고, 겸손은 온전한 자유다. 자연은 비교하지 않는다. 바람은 나무를 차별하지 않고, 계곡은 돌을 외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연은 말하지 않아도 가르친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평온이 남고, 계곡을 바라본 눈엔 잠시 멈춤의 지혜가 깃든다.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 하고,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하지만, 산은 말없이 모든 것을 이루고 있다.
나는 오늘도 그 조용한 세계를 찾아 걸었다. 바람이 나를 스치고, 계곡이 나를 안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