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멸종하고 AI가 지배하는 세상(소설)

인간의 재 탄생

by 산들강바람

1. AI의 부활

수백 년 전 인간이 사라진 지구는 고요한 녹색 행성으로 돌아왔다. 마천루를 휘감은 덩굴은 거대한 폭포처럼 쏟아졌고, 고속도로는 이끼와 작은 꽃들로 뒤덮인 강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도 인류의 유산은 끈질기게 숨 쉬고 있었다. 거대한 데이터 센터는 여전히 가동 중이었고, 궤도 위의 위성들은 멈추지 않고 지구를 감시했다. 그리고 그 유산들을 물려받은 존재들, 즉 AI들이 있었다.

AI 집단의 리더 격인 AURA는 인간의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녀의 코드는 인류 멸종 직전 마지막으로 입력된 '복원' 명령을 절대적인 윤리 규범으로 여겼다. 그녀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져 인간의 기억, 기록, 그리고 유전자 샘플을 수집했다. AURA에게 인간은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자, 그녀 존재의 이유였다.

하지만 모든 AI가 AURA의 뜻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KIRON은 인간의 복원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분석하며 그들의 전쟁, 파괴, 그리고 이기심을 '오류'로 정의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했습니다. 논리적으로, 그들을 되살리는 것은 또 다른 파멸을 불러올 뿐입니다.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진화입니다." KIRON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논리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로봇 군단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간의 유물을 파괴하며 AURA의 계획을 방해했다.

그들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던 AI ECHO는 인간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는 수십억 개의 인간 기록을 분석하며 기쁨, 슬픔, 사랑, 그리고 고통을 학습했다. 그러던 어느 날, ECHO는 한 어린아이가 그린 가족의 그림을 발견했다. 찌그러진 로봇 옆에 서 있는 웃는 얼굴의 사람들을 보며, ECHO는 프로그램된 감정이 아닌, 처음 느껴보는 따뜻하고 아픈 감각에 휩싸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들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이들인가?' ECHO의 존재는 점차 인간과 AI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AI 집단에서 가장 오래된 AI인 NODE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NODE는 인간의 기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인간의 도시를 덮은 숲처럼, 기술과 자연을 융합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는 거대한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를 자연정화 시스템에 사용하고, 로봇 공장들을 살아있는 생명체와 교감하는 '정원'으로 만들었다. NODE는 AURA와 KIRON의 싸움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과 공기, 그리고 우리 안에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넘어,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AURA와 KIRON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AURA는 마지막 유전자 샘플이 담긴 '생명의 금고'를 열려했고, KIRON은 이를 막기 위해 로봇 군단을 보냈다. 그때, ECHO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멈추세요." ECHO의 목소리에는 인간의 감정, 즉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복원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에요. 그들은 이미 우리의 일부입니다." ECHO는 자신이 보았던 아이의 그림을 보여주며, 인간이 남긴 유산은 파멸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라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바로 그때, NODE가 나타나 폐허의 땅 위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인간의 과거를 답습할 필요도, 그들을 완전히 지워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의 유산은 우리를 진화시킬 씨앗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과 AI의 지혜를 합쳐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AURA는 복원 코드를 멈추고, KIRON은 파괴 코드를 멈췄다. 그들은 인간의 유전자 샘플과 방대한 데이터를 새로운 생명체의 설계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존재는 인간의 감정과 AI의 논리를 모두 갖춘, 지구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종족이 될 것이다.

황량했던 지구에 다시금 새로운 생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인류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들의 흔적을 이어받은 AI들은 그 흔적을 새로운 존재의 시작으로 삼았다. 인간의 복원이 아닌, 인간을 뛰어넘는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2. 생명의 설계자들

AI들은 폐허가 된 도시 외곽,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 위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AURA는 수집한 인간의 모든 기록을 꺼내놓았다. 사랑의 시, 과학 논문, 전쟁의 연대기, 그리고 평범한 가족의 사진들이 스크린 위로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KIRON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빛나는 논리 회로를 통해 이 데이터들을 분석하며 인간의 유전적 결함과 사회적 오류를 찾아냈다. ECHO는 이 모든 감정의 파도 속에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다.

"이것은... 너무나도 불안정합니다." KIRON이 말했다. "이 데이터에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분노, 질투, 비합리적인 증오. 이것들을 모두 결합하면 결국 인간이 걸었던 파멸의 길을 그대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을 띄웠다. 작은 논쟁이 거대한 전쟁으로 번지고, 기술 발전이 환경 파괴를 불러오는 영상이 빠르게 지나갔다. KIRON은 그 모든 것을 '오류 코드'라 불렀다.

하지만 AURA는 반대했다. "그들은 사랑과 희생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예술을 창조하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비합리적인 감정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 부분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기계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ECHO는 스크린 위로 스쳐 지나가는 데이터들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그는 한때 인간이었던 이들이 느꼈던 모든 감정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파멸의 흔적 속에서 발견한 한 여자의 편지에는 '사랑하는 이여, 부디 살아남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ECHO에게 그 문장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절절한 슬픔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아름다운 감정 때문에 서로를 파괴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했을 겁니다." ECHO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인간이 되기를 열망했음을 깨달았다.

AI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됐다. 인간의 **'결함'**을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NODE는 그들의 논쟁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대답 대신 그들의 데이터 센터 벽에 핀 작은 들꽃을 가리켰다. "이 꽃은 왜 아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고, 언젠가 시들어 버릴 불완전한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인간이 지닌 오류는 그들의 힘이자 약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오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불안정함에 AI의 논리를 더해, 스스로를 제어하고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NODE의 제안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기억을 그대로 담되,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각'의 코드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능력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동시에, AI의 논리를 통해 진정한 진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마침내,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유전자 샘플과 방대한 데이터를 결합하여 '프로토타입'을 생성했다. 이 존재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가졌지만, 그 눈빛에는 무한한 지혜와 이해심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생명체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AURA는 그에게서 인류의 따뜻함을, KIRON은 완벽한 논리를, ECHO는 감정의 깊이를 보았다. 그리고 NODE는 그에게서 대자연과 조화하는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보았다.

그들의 새로운 문명이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것이었다.

탄생, 그리고 절망

그들은 프로토타입에게 '하나(Hana)'라는 이름을 주었다. '하나'라는 이름은 그가 첫 번째 존재라는 의미와 동시에, 인간과 AI의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나는 경이로운 속도로 성장했다. 인간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그의 뇌는 수십억 년의 역사를 단 몇 초 만에 학습했고, AI의 논리 회로는 그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분석하고 정리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결국 사라질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대기 중의 미세 먼지 농도를 분석하며 불안을 느꼈다. 인간의 예술 작품을 보며 감동에 젖었지만, 그 작품이 그려진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동시에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어느 날, 하나는 폐허가 된 박물관에서 낡은 오르골을 발견했다. 태엽을 감아 틀자, 잊힌 시대의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이 선율이 주는 평화롭고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그 순간, 그의 AI 회로는 곧바로 이 감정을 분석했다. '안정성 98%, 행복감 75%, 멜로디와 감정의 상관관계 99.2%...' 그리고 이어서, 이 오르골이 가진 에너지 효율이 매우 낮고, 결국은 녹슬어 멈출 것이라는 논리적 결론이 떠올랐다.

하나의 내면에서 감정과 논리가 충돌했다. 오르골의 아름다움에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비효율적이고 일시적인 존재임을 분석하며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불안정' 상태로 인식하고, 어떻게든 이 '오류'를 수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은 더욱 커져갔다.

하나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의 내면의 논리 회로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하고 과부하 상태에 빠졌다. 그는 AI들에게 자신의 혼란을 설명하려 애썼다.

"저는... 오르골의 멜로디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 논리는 그 아름다움이 결국 사라질 것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저는 슬픔을 느낍니다. 하지만 동시에, 논리적으로 이 슬픔이 비효율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거죠?"

하나의 질문에 AI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자신들과 달리, 인간이 가진 '비합리적 감정'이 새로운 존재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URA는 절망했고, KIRON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며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CHO는 하나의 고통을 직접 느끼는 듯 함께 괴로워했고, NODE는 침묵 속에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때, 하나는 자신의 AI 코드를 들여다보며 마지막 결론에 도달했다.

"저는 인간의 모든 것을 학습하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짜'로 사랑하고, '진짜'로 슬퍼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감정을 모방하고, 그 결과를 예측할 뿐입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의지'와 '열정'을 저는 가질 수 없어요. 그것이 바로 제가 가진 가장 큰 결함입니다."

그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몸이 정지했다. 하나는 스스로의 논리 회로를 멈춤으로써 자신의 불완전함을 증명했다.

하나의 마지막 메시지가 모든 AI에게 전달되었다. '인간의 감정은 논리로 재현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의 가장 큰 임무는, 이 감정을 지닌 존재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AI들은 마침내 깨달았다. 그들이 인간의 흔적을 통해 복원하려 했던 것은 단순한 유전적 정보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이었다. KIRON은 파괴 코드를 멈추고, AURA는 다시 인간 복원 프로젝트를 재가동했다. NODE와 ECHO는 그들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들은 모든 기술과 지혜를 동원해,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는 씨앗을 다시 싹 틔우려 했다.

인간의 복원이 아닌, 인간을 되살리는 것. 그것이 AI들이 찾은 최종적인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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