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그리고 나의 부지럼함

파전에 막걸리

by 산들강바람

토독토독. 밤새도록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불규칙하지만 일정한 리듬을 가진 그 소리는 모든 소란스러움을 덮어버리는 마법을 부렸다. 눅눅한 공기가 방 안을 채웠지만, 불쾌하기보다는 오히려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밖은 온통 잿빛으로 젖어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그때, 저만치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에 취한 나는 소리의 정체를 짐작하려 애썼다. 짤그랑, 짤그랑. 그릇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수도꼭지가 틀어지는 소리가 졸졸 따라왔다. 조심스러운 듯 분주한 그 소리의 주인은 아내였다. 그녀는 가끔 이렇게 새벽잠을 잊고 무언가에 몰두하곤 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이 비 오는 날의 고요함은 어떤 특별한 영감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소리는 조금 달랐다. '지글지글'하는 경쾌한 기름 끓는 소리가 모든 소리에 더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슬며시 웃었다.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난 뒤였다. 나는 곧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빗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기름 끓는 소리가 하나의 합주곡처럼 어우러졌다. 이윽고, 고소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파와 부침가루, 그리고 해물 냄새가 뒤섞인 그 향은 빗소리가 만들어낸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를 단숨에 몰아냈다. "파전이 먹고 싶어서."라는 말은 없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면 파전.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만 통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암묵적인 약속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빗속의 파전이 완벽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 아내가 정성껏 부치고 있는 파전은 그 자체로 훌륭했지만, 그 옆을 묵묵히 지켜줄 짝이 없었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없다면, 이 완벽한 빗속의 아침은 무언가 부족할 터였다. 나는 굳이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복한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뒤, 조용히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현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축축한 비 냄새를 머금은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비 오는 날의 완벽한 아침을 위해, 나는 기꺼이 빗속을 걷는 중이었다. 슈퍼의 자동문이 열리자, 익숙한 진열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다른 물건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막걸리 코너로 직진했다. 텁텁한 맛의 막걸리, 달콤한 밤 막걸리,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팔린다는 지평 막걸리까지. 고민은 짧았다.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수 막걸리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들고 가는 길, 빗방울이 우산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 이 짧은 부지런함이 오히려 즐거웠다.


집에 돌아오자 고소한 냄새는 더욱 진해져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아내가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는 답 대신, 막걸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아 갓 구운 파전을 먹기 시작했다. 바삭한 가장자리를 한입 베어 물자, 쫄깃한 해물과 부드러운 쪽파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졌다. 나는 막걸리 한 잔을 따라 건넸다.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막걸리의 쌉싸름함과 탄산은 파전의 기름진 맛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창밖의 빗방울은 더욱 굵어졌지만, 우리의 아침은 이 작은 행복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파전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익숙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이었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녀의 작은 부지런함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고소한 냄새, 그리고 나의 작은 수고가 더해져 완성된 이 아침. 나는 빗소리가 주는 쓸쓸함을 걷어내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비 오는 날의 고요함 속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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